트로트코인, 승차하시겠습니까?

2020.05.15

사진제공=TV CHOSUN

지난 2009년, ‘대국민 오디션’을 표방한 '슈퍼스타K'가 출항했다. 아직 지상파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이라 케이블채널에서 편성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을 보며 "되겠어?"라는 회의적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됐다". 역대 케이블채널 시청률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서인국, 허각, 존박, 버스커버스커, 로이킴 등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그러자 내심 무시하며 곁눈질하던 지상파들의 행보가 분주해졌다. MBC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을 론칭했고, SBS는 ' K팝 스타'를 부랴부랴 꾸렸다. KBS는 가수의 꿈을 안고 데뷔했지만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아이돌 가수들의 재기를 돕는 오디션 프로그램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을 제작했으나 지상파 3사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에는 TV조선 '미스터트롯'으로 스타덤에 오른 장민호도 참여했다. 그가 1세대 아이돌 그룹 유비스의 멤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딱 10년 전과 판박이다. 지난해 '미스트롯'에 이어 '미스터트롯'이 최종 시청률 35.7%(닐슨코리아 기준)으로 초대박을 내자, 유사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격으로 돋아나고 있다. 저마다 ‘차별화’를 힘주어 말하고 있지만, 이리 돌려보고 저리 째려봐도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그래서 벌써 걱정이다. 이렇게 트로트 시장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한 순간에 공멸하는 것은 아닐까?

 

#그 많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 어디로 갔을까?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방송인 김성주의 이 멘트가 국민적 유행어이던 때가 있었다. 케이블채널은 중간광고가 허용되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었다. 여지없이 채널이 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시도였다. 하지만 시청자는 기다렸다. 왜냐고? 재미있으니까!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했던, 허각과 존박이 맞붙은 '슈퍼스타K 2'의 아성은 지금의 '미스터트롯'의 인기 못지않았다.


초창기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후발주자인 'K팝 스타'가 배출한 박지민, 이하이, 악동뮤지션을 비롯해 '위대한 탄생'의 백청강과 한동근 등도 주목받았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은 눈에 띄게 하락했고, 우승을 차지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냉정하게 짚어보자면, 'K팝 스타' 시즌 5, 6의 우승자인 이수정과 보이프렌드, '슈퍼스타 K' 시즌 6, 7의 우승자인 케빈오와 김영근의 현재 위상과 활동상을 살펴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달라진 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매번 똑같은 연예인들이 짝만 바꿔가며 등장하는 ‘섞어찌개’식 예능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재기발랄한 신인들이 등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신선했다. 게다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재능만 있다면 단박에 스타가 될 수 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정점이 지나며 "나올 사람은 다 나왔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워낙 다양한 채널에서 싹싹 긁어모으다 보니 더 이상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을 재목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탈락한 이들이 이를 홍보 소재 삼아 또 다른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중은 "또 나왔어?"라며 "식상하다"고 나무랐다.


하물며 다시 불어온 오디션 열풍의 소재는 ‘트로트’로 국한된다. 장르의 한계 때문에 기존 오디션보다 지원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기존 오디션의 경우 해외 체류자나 외국인 지원자들이 많았으나, 노래의 ‘맛’을 정확히 살려야 하는 트로트의 경우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러니 완전히 신선한 얼굴보다는 기성 가수, 아이돌, 배우 등 기존 연예인 중 지원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진제공=TV CHOSUN


#트로트코인, 과연 수익낼까?


대한민국에 분 트로트 열풍은 지난해 방송된 TV조선 '미스트롯'이 촉발시켰다. 여기에 유재석의 부캐릭터인 ‘유산슬’이 아주 큼직한 디딤돌을 놨고, '미스터트롯'이 달디 단 열매를 맺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된다"는 소식과 함께 광풍이 분 비트코인에 빗대 ‘트로트코인’(트로트+비트코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결국 ‘유사품에 주의하세요’라는 격언(?)에도 아랑곳 않은 프로그램이 잇따라 론칭되고 있다. SBS '트롯신이 떴다'가 현재 방송 중이고, KBS '트롯전국체전', MBC '트로트의 민족'이 준비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MBN '보이스트롯', SBS Plus '내게 ON 트롯' 외에 또 다른 채널들도 앞다투어 트로트를 소재로 삼은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확실히 ‘원조’의 힘은 셌다. '미스터트롯'의 주역들로 꾸려지는 TV조선 예능 '사랑의 콜센타'의 시청률은 20∼22%로 현재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치를 찍고 있다. 그 중 4명을 추려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출연하는 TV조선의 또 다른 예능 '뽕숭아학당' 역시 첫 방송 시청률이 단박에 13%대를 기록했다.


게다가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신기록’이 수를 놓는다. '미스터트롯' 톱7이 출연한 5월9일자 JTBC '아는 형님'의 전국 시청률은 15.5%. 지난 2015년 이 프로그램이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결국 '아는 형님' 측은 톱7의 출연 분량을 3주에 걸쳐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MBC '라디오스타'와 '끼리끼리', JTBC '뭉쳐야 찬다'와 '77억의 사랑' 등 '미스터트롯' 멤버들이 출연한 모든 프로그램이 평소와 비교해 2배 가량의 시청률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가요계 관계자는 "대중이 언제 ‘싫증 난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미스터트롯'의 멤버를 비롯해 트로트라는 소재의 소비가 지나치게 높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채널들이 부나방처럼 트로트 시장으로 투신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5월13일에는 '트롯신이 떴다'와 '뽕숭아학당'의 겹치기 편성이 도마에 올랐다. 실제로 MC인 방송인 붐을 이 날 동시간대 두 채널에 등장했다. ‘뽕숭아학당’ 측은 "출연 예정된 주현미, 설운도, 김연자, 장윤정 등 레전드들의 출연 분량이 ‘트롯신이 떴다’와 동시간대 송출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붐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트롯신이 떴다’ 해외 촬영 일정이 변경, 지연되면서 기존의 녹화분이 남아있을 뿐, 현재 ‘트롯신이 떴다’ 녹화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비슷한 논란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트로트 예능은 점차 늘어나는데, 장르적 특성상 출연 가능한 스타들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겹치기 출연이 불가피하고, 방송사 간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시청률 수치 경쟁을 넘어 자존심 경쟁이기 때문에 명암 역시 명확히 엇갈릴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대동소이한 트로트 예능들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보다는 하향평준화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3월 4일 방송된 '트롯신이 떴다' 1회 시청률은 무려 15.9%였다. 하지만 5월13일 방송 분량의 시청률은 9.5%로, 방송 시작 이후 최저치였다.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되, 그 결과물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언제든 시청자들은 떠난다는 방증이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무섭게 치솟던 비트코인의 상승세가 멈추자 가파르게 하락했다. 결국 정점에서 비트코인을 산 사람들은 큰 손해를 면치 못했고, 그 때의 가격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며 "트로트코인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로만 ‘차별화’를 외치고 내실을 기하지 못한다면 10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이 동반 추락했던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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