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월드’에 금이 간 5가지 이유 

2020.05.13

사진제공=화앤담픽쳐스

'김은숙 월드’에 균열이 가고 있다. SBS 금토극 '더 킹: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를 두고 "정말 김은숙 작가가 쓴 게 맞아?"라는 물음표가 달릴 정도다. 2004년 '파리의 연인'을 시작으로 16년간 공고히 쌓아온 탑이 이토록 삽시간에 흔들릴 수 있을까 싶다.


'더 킹'은 김 작가가 쓰고, ‘한류스타 of 한류스타’라 불리는 배우 이민호의 복귀작이다. 그래서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손익분기점을 걱정하진 않는다. 넷플릭스에 역대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팔렸고, 매회 도배되는 PPL만 봐도 경제성을 따졌을 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드라마인 덕분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김 작가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가 난다.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눈높이가 높은 만큼, 추락하는 폭도 크다. 과연 김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이야기가 헐겁다


김 작가의 주종목은 ‘판타지 로맨스’다. 남녀의 로맨스를 근간으로 삼되, 남녀의 몸이 뒤바뀌거나(시크릿가든) 도깨비와 인간이 공존하고(도깨비) 재벌 남성과 가난한 여성이 만나는 판타지가 소재다.(파리의 연인, 상속자들 등)


그럼 먼저 ‘판타지’를 살펴보자. '더 킹'은 평행세계를 다룬다. 대한민국과 대한제국,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동일하게 흐른다. 뚜껑을 열기 전 언론과 여론은 김 작가가 보여줄 새로운 세계관에 빠질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정돈되지 않으니, 평행세계는 드라마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고 만다. 대중 입장에서는 그다지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판타지에 그친 셈이다.


‘로맨스’는 더 문제다. 남녀 관계에는 예열이 필요하다.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이다. 하지만 '더 킹'은 이를 통째로 건너 뛴 느낌이다. 이곤(이민호)은 갑자기 정태을(김고은)에게 "내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말한다. "반만 미친 줄 알았더니 다 미친 이 새끼는 뭐지?"라는 정태을의 반응은 당연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정태을은 ‘나는 나를 선택한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한다’하며 이곤에게 "사랑해"라 고백하고 키스까지 나눈다.


그야말로 뜬금없다. 이를 바라보는 대중은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다. 김 작가가 전하는 판타지 로맨스의 설정은 대부분 허무맹랑했지만, 그 틀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단단하게 서사를 구성해갔기에 결국 공감을 샀다. 하지만 '더 킹'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강요’하는 격이다.


사진제공=화앤담픽쳐스



#믿을 만한 연출자의 부재


16년의 세월 동안 김 작가는 두 차례 ‘삐그덕’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더 킹'이 그 한 번이고, 나머지 한 번은 '상속자들'(2013)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연출자가 바뀐 시점이었다. '상속자들'은 김 작가와 신우철 PD의 긴 동행을 마치고, 강신효 PD가 연출한 작품이다. 그리고 김 작가는 '상속자들'의 차기작인 '태양의 후예'부터 이응복 PD와 손잡았다. 그렇게 세 작품을 마친 후 '더 킹'의 백상훈 PD에게 배턴을 넘겨줬다.


"'상속자들'은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끝은 그렇다. 하지만 시작을 봐야 한다. '상속자들'이 함께 방송되는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드라마가 있다. 유보라, 최호철 작가의 '비밀'이다. 2013년 10월9일 첫 방송된 '상속자들'은 '비밀'과 동시간대에 맞붙은 11월9일까지 내내 시청률이 뒤졌다. 15%에 머물던 '상속자들'의 시청률은 '비밀'이 떠난 직후 20%대로 껑충 뛰며 자존심을 회복했다. 당시 최약체로 꼽히던 '비밀'의 연출자가 누구였을까? 바로 이응복, 백상훈 PD다. 경쟁 관계였던 이응복 PD를 차기작부터 파트너로 영입한 것은 과연 우연으로 봐야 할까?


결과적으로 이응복 PD는 '미스터 션샤인'을 끝으로 떠났고, '비밀'에 이어 '태양의 후예'의 B팀을 맡았던 백상훈 PD가 '더 킹'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김 작가의 판타지를 구현해야 할 CG(컴퓨터 그래픽)는 조악했고, '도깨비'에서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나란히 걸어오는 투샷, '미스터 션샤인'에서 남녀 주인공이 손바닥으로 서로의 얼굴을 가리며 신분을 탐색하는 것과 같은 ‘시그니처 장면’이 사라졌다. 김 작가 작품의 특성상 PPL이 많은데, 이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더 킹'에 대한 반감을 키운 대목이다.

 

#보고 싶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없다


오해는 말자. ‘보고 싶은’ 배우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보고 싶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없다는 것이다.


김 작가가 그리는 세계는 현실이라기보다는 환상이다.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기 힘든 캐릭터들이다. 이런 캐릭터로 대중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야말로 ‘내가 도깨비다’ 혹은 ‘내가 재벌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시치미 뚝 떼고 연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신양, 이병헌, 공유, 현빈, 송중기 등은 그 어려울 걸 능히 해냈다.


반면 이민호는 어떠한가? 이민호가 그동안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변화가, 그리고 발전이 없다. '상속자들'의 김탄과 '더 킹'의 이곤은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더 킹' 속 그의 모든 연기톤이 똑같다. 대한제국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황제인데, 대한민국에 와서는 어설픈 행동을 반복하고 융통성 없이 반말로 일관하는 설정도 모호하다. 극 중 대한민국에 사는 그 누구도 대한제국의 존재를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정작 자신을 황제로 인정하고 떠받들어주길 원하는 것일까?


물론 이 부분은 이곤이라는 캐릭터를 그린 김 작가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김 작가의 작품 세계 속 남자 주인공은 대다수가 그랬다. 백마 탄 왕자였고,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라는 마음으로 여주인공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졌다. 그럼에도 대중이 호응한 것은 주연 배우의 연기력과 매력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뭇 여성들이 '사랑의 불시착'을 보며 북한 인민국 장교에게 푹 빠진 것은, 이를 연기한 현빈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킹'의 이민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사진제공=화앤담픽쳐스


비단 이민호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고은도 매한가지다. '더 킹' 속 김고은은 1인2역까지 소화해내고 있다. 문제는, '도깨비'의 지은탁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김 작가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도드라진다는 점이었다.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도 제각각 매력을 발산하는 터라 지루할 틈이 없다. 조연과 단역마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스타덤에 오를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더 킹'에는 눈에 띄는 캐릭터를 찾기가 더 어렵다. ‘파국이’라 불렸던 '도깨비' 속 간신 같은 눈길을 사로잡는 악역도 없고, 김 작가가 매번 부리던 ‘서브 남주의 마법’도 온데간데없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


김 작가의 작품 속 남녀 주인공은 전형적이다. 남자는 돈 많지만 사랑 앞에 솔직한 ‘백마 탄 왕자’고, 여자는 가난하지만 소신있는 ‘신데렐라’다. '신사의 품격'에 등장한 주변 인물 중 청담마녀(김정난)와 같이 매우 부유한 여성 캐릭터도 있지만, 메인 주인공 남녀의 캐릭터 전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지위가 변화를 맞고, 대중이 추구하고 원하는 모습 역시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김은숙 월드’는 제자리다.


'더 킹'의 이곤은 불경스러운 이들에게 "너 참수야"라고 외칠 만큼 막강한 권력자다. 돈 한 푼 없이 대한민국에 왔지만 옷에 달린 다이아몬드로 만든 단추 몇 개 만으로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을 손쉽게 얻는다. 기존 김 작가의 작품 속 남성 캐릭터에서 한 발자국도 성장하지 못했다.


여성 캐릭터는 더욱 불만족스럽다. 대한민국의 정태을은 매우 주체적인 형사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 그가 대한제국으로 가자 아주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주위 환경이 변해 혼란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본질 자체가 바뀐 듯한 행동을 보이며 이곤에게 의존적인 인물로 한순간에 전락하는 것은 불편하다.


특히 대한제국의 총리 구서령(정은채)는 시대착오적 인물의 대표 격이다. 방송 초반 금속 탐지기에 걸리자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혀줘서요"라는 대사는 걷어냈어야 옳다. 구서령은 몸에 밀착되는 옷을 입고, 굳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 물론 그렇게 입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수식어를 얻은 인물이 일보다는 외모, 이곤과의 관계 진전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 어렵다. 그가 뷰티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터진다. 이건 로맨틱 코미디가 유발하는 웃음이 아니다. 민망한 설정에 어쩔 줄 몰라 터져 나오는 한숨과 다르지 않다.


사진제공=화앤담픽쳐스


#PPL이 지나치다


김 작가의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PPL 제안을 받는다. 또한 그동안 김 작가는 PPL을 드라마 스토리 속에 효과적으로 밀어넣는 솜씨를 보여왔다. '시크릿가든'에서 그 유명한 ‘거품 키스’ 장면 이후 이 드라마를 지원한 커피 브랜드의 카푸치노가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누구도 이 위대한 키스 장면을 보며 ‘PPL’을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더 킹'은 ‘김은숙’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PPL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너무 촘촘하게 배치돼서 도무지 안 밟고 지나갈 수 없는 지뢰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 5월9일 방송된 8회는 드라마가 아니라 1시간 짜리 광고를 보는 듯했다. 이곤은 한 커피 브랜드의 음료를 마시며 "영이(우도환)가 골라온 커피가 황실 커피랑 맛이 똑같아. 첫맛은 풍부하고 끝맛은 깔끔해"라고 말한다. 정태을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후배 형사와 잠복근무 중 브랜드가 선명히 보이는 김치 봉지를 들이밀며 "아, 시원해 장미(카엘) 김치 좀 먹을 줄 아네"라고 말한다. 다음 장면 역시 시청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정태을이 입술과 볼에 멀티밤을 바르자, 후배 형사는 "그 신문물은 뭔데 얼굴 입술 다 바르시냐"며 묻는다. 이에 정태을은 "애들 앞에서는 멀티밤도 못 바른다더니…너 가져, 이거 하나면 다 돼"라고 답한다. 보고 있노라면, 이 당당하고 노골적인 PPL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진다.


이외에도 따지자면 끝이 없다. BBQ 치킨,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애스턴 마틴, 정관장 에브리타임 등이 줄줄이 나온다. 흑당 버블티의 경우 "젓지 말고 그대로 한 입 쭉 먹고 달콤함을 느낀 후에 저어 드세요"라고 아예 먹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구서령이 이용한 뷰티 마스크는 이곤 역의 이민호가 모델인 제품이다.

 

아주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김 작가의 작품에는 항상 PPL이 많았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도 전시 상황을 보여주는 방송 초반부에는 보여주지 못하다가, 한국으로 배경이 바뀐 뒤 ‘PPL 폭탄’을 투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인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대중도 PPL로 인한 화를 이내 삭힌 셈이다. 하지만 '더 킹'은 어떤가? 11%대로 시작한 시청률은 어느새 8%대로 주저앉았다.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PPL로 점철된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시청자들의 분노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감히 내다보건대, 향후 '더 킹'의 시청률은 상승할 것이다. 소위 ‘밑밥’을 깔고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붙인 로맨스지만, 이곤과 정태을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발휘하면 '더 킹' 역시 상승 곡선을 그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한다면 ‘김은숙 월드’는 더 이상 건재할 수 없다. '더 킹'은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는 남았다는 의미다. 단, 아주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은 상상 이상의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