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흔한 사랑 타령 피하는 방법

김해숙-김갑수, 황혼 커플로 색다른 재미 선사!

2020.05.12

사진제공=tvN

tvN  목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이하 슬의생)은 현재 총 12부작 중 9회를 마무리하면서 종반부로 접어들었다.  주인공 의사 5인방(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의 러브라인들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인공 서로(조정석-전미도), 동료와(유연석, 김대명), 친구 동생과(정경호) 등 회를 거듭할수록 결과가 궁금해지는 ‘썸’들은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12.1%(닐슨 코리아)로 인기를 누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슬의생’도 ‘의사들이 나와도 연애만 하는 흔한 한국 드라마’로 보인다. 하지만 ‘슬의생’은 주인공들의 연애보다 가족 이야기 비중이 훨씬 커서 의사들의 사랑 타령 드라마라 하기는 어렵다. 가족 이야기는 의사들과 환자, 두 축으로 나뉘어 드라마를 채운다.


지난 7일 9회만 봐도 이익준(조정석)은 채송화(전미도)와의 썸 관련 이야기는 굉장히 소소했던 반면 과거 연애로 인한 동생 이익순(곽선영)의 마음 상처를 알게 돼 이를 달래주러 가는 에피소드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또 한 여자 환자의 아버지는 딸에게 간을 이식해주려면 지방간 수치를 낮춰야 한다고 말하자 엄청난 체중 감량을 하는 모습으로 의료진을 감동시키는 에피소드가 중요하게 그려졌다.


이런 식으로 1회부터 의사와 환자의 수많은 가족 이야기들이 들고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슬의생’이 흔한 사랑 타령 드라마로 축소돼 버리지 않는 데는 정로사(김해숙)-주종수(김갑수) 황혼 커플의 역할도 지대하다.


안정원(유연석)의 어머니 정로사와 드라마 배경인 병원 이사장 주종수는 60년 친구 사이이고 각자 남편과 부인을 여의고 홀로 된 상태. 커플이라 부르는 게 적합하지 않아 보일 정도로 둘 사이에는 이성의 사랑이 안 느껴지고 남사친-여사친의 우정만 보인다. 향후 드라마 전개에 따라 사랑으로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주인공은 물론 주요 환자들에 비해서도 출연 분량은 작지만 화면에 등장하면 흡입력은 어떤 러브라인 못지않게 힘이 있다. 둘이 벌이는 우정의 훈훈한 티격태격은 이 드라마가 젊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갇혀 있지 않게 만드는 균형자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중장년의 삶을 드라마에 신경 써서 녹여 내기는 신원호-이우정 콤비의 시그니처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 중년 돌싱들의 사랑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 ‘응답하라 1988’이 더 넓은 세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게 만든 바 있다. 이번에는 드라마에서 보기 쉽지 않은 황혼 커플의 우정 이야기로 확장성을 더 높였다.


사진제공=tvN



5회에서 주종수는 손자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마피아게임을 정로사 안정원 등과 함께 배우고 해본다. 하지만 젊은층 놀이 문화에 적응이 어려운 모습들로 웃음을 자아내는데 정로사-주종수 커플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노년의 필연적인 정신적, 육체적 쇠락과 사회적 고립을 서로의 우정에 의존해 유쾌하게 극복하는 모습들로 채워진다.


정로사는 병원에서 자신이 타고 온 차를 못 찾고 김갑수와 함께 주차장을 헤맨다. 하지만 자신이 택시 타고 온 것을 깨닫고는 둘 모두 해맑게 즐거워한다. 정로사의 집에 놀러 온 주종수는 꽃을 찍어 앱으로 이름을 확인하다가 정로사가 자신도 찍어보라고 한다. 그러자 주종수는  꽃이름이 ‘청춘은 갔다’라고 장난을 치고는 서로 즐거워한다.


9회에는 자식 가족들과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만 뜻대로 안 돼 시무룩해진 주종수가 끼니도 거르려 하자 정로사는 ‘우리 나이 한 끼 빼먹으면 평생 못 챙겨 먹는다“며 어떻게든 식사하게 만들려 애쓴다. 주종수가 가벼운 우울증을 겪자 정로사는 자신의 아들 안정원이 포함된 의사 주인공 5인방 밴드 연습장으로 데려간다. 곡명도 잘 모르던 주종수는 흥겨운 연주가 이어지자 손끝이 까딱거리기 시작하며 음악이 전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정로사와 주종수는 친구로 서로 의지하면서 직면하는 여러 노년 문제들의 무게를 덜어낸다. ’슬의생‘에서 둘 모두 가족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서보다 둘이 함께 있을 때 활짝 웃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물론 현실에는 빈곤 문제 등 노년의 어려움은 훨씬 복잡하고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 ’슬의생‘의 황혼 커플은 재정적으로 일단 여유가 있다. 이들의 노년 문제에 대한 쿨하고 유쾌한 대응은 보편적이라 하기 힘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젊은 층‘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인 한국 드라마 세계에서 노년의, 그것도 우정을 다루는 스토리를 볼 수 있게 만든 ’슬의생‘의 시도는 분명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슬의생‘에서 황혼 커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최영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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