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잊지마 슬퍼마 부활할거야

만우절만 되면 떠오르는 그리운 이름!

2020.04.01

'아비정전' 스틸.


그것은 오보이길 바랐던 잔인한 현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 장국영이 홍콩 만다린오리엔탈 호텔 24층 객실 밖으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타전됐다. “거짓말하지 마”.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대륙풍 농담’이길, 장국영이 짠 하고 나타나 “만우절 거짓말에 속지 말라” 속삭여 주길. 고약한 해프닝이길. 그러나 세상엔 거짓말 같은 사건이 존재하며, 장국영은 거짓말 같은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그의 유언 앞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장국영이 죽었다니!


당시 홍콩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로 온 도시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 자의적인 고립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장국영의 죽음을 접하고 하나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영결식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팬 1000여 명이 운집했다. 검은색 복장을 하고, 새하얀 마스크를 쓴 채…뉴스 화면으로 전송되는 그 날의 모습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영화 같았고, 너무 영화 같아서 비현실적이었다. 


사스 공포로 위축된 홍콩 시민들에게 사랑하던 스타의 자살은 심리적인 공황을 안겼다. 모방 자살이 이어졌다. ‘사랑을 전할 땐 투유 초콜릿’을 애용했던 한국 팬들의 상실감도 작지 않았다. 인터넷에선 ‘장국영 사망 추모카페’가 개설됐고, 라디오에서는 장국영의 노래가 자주 흘러나왔다. 당시 나는 장국영이 부른 ‘A thousand dreams of you’을 듣다 잠드는 날이 많았는데, “I hope you dream, a thousand dreams of me.(꿈을 꾸길 바래요. 나에 대한 수많은 꿈을)”라는 노래 가사처럼 꿈에서 여러 번 그를 호출했다. 꿈에서 그는 발 없는 새의 모습으로(‘아비정전’, 1990), 다른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를 눈으로 애타게 쫓는 정인의 모습으로(‘패왕별희’, 1993), 검은 두건을 쓴 채 노래하는 모습으로(‘야반가성’, 1996)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1997년 이후 스타 기근과 투자 위축 등으로 쇠퇴 일로를 걷던 홍콩 영화산업에 장국영의 죽음이 안기는 충격파도 상당했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저물어가는 홍콩 영화의 상징적 사건’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렇게 장국영은 떠났다. 거짓말처럼. 만우절을 마냥 웃을 수 없는 날로 만들어버린 채. 그리고 이 배우는 만우절만 되면 거짓말처럼 부활한다. 일면식도 없는 배우의 기일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추모하며 이야기한다는 건 참으로 희한한 일. 배우란 죽어서도 필름 안에서 살아남는 운명이지만, 장국영을 향한 이 끝모를 애정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도공간' 스틸.


장국영은 ‘아름답다’라는 수식어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배우다. 실제로 장국영은 테스토스테론이 들끓는 거친 홍콩 누아르에서 홀로 삐죽 튀어나와 특유의 섬세한 분위기와 우울한 정념, 공허에 찬 눈빛으로 보는 이들을 감염시키는 배우였다. ‘영웅본색’(1986)의 주윤발이 트랜치코트 휘날리며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는 모습으로 누아르 영화의 전설로 등극한 데에는 장국영으로 대비되는 청초한 캐릭터(아걸)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걸을 장국영이 아닌, 선 굵은 배우가 연기했다면 주윤발의 ‘낭만적 마초’ 이미지는 그리 강렬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영웅본색2’(1987)의 경우, 공중전화 부스에서 죽어가며 막 아기를 출산한 아내와 통화하는 장국영의 애절함이 주윤발의 쌍권총 액션보다 극의 공기를 더 흔든 사례였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화에 여성 팬들이 몰려든 이유이기도 하다. 왕조현의 아름다움이 흐드러지게 만개했던 ‘천녀유혼’(1987)에서도 장국영이 그려낸 영채신 캐릭터는 남달랐다. 그는 강렬한 남성성 대신 배려가 몸에 밴 순박한 모습으로 귀신의 마음뿐 아니라 여심을 훔쳤다. ‘영웅본색’ 시리즈와 ‘천녀유혼’을 통과하면서 장국영의 존재감은 대중의 관심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스타가 된다는 건, 어느 정도의 자유가 저당 잡히는 일. 짜깁기된 루머와 가십거리, 솔직함이 무례함으로 오인돼 공격을 가하는 스타 산업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던 장국영은 1989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캐나다로 떠났다. 기다림은 오래지 않았다. 장국영은 빠르게 현장으로 복귀했는데, 1년이라는 휴식 시간 동안 장국영은 부쩍 달라져 있었다. 배우로서 양적 팽창보다, 질적 깊이감을 획득하고 싶었던 장국영의 바람은 왕가위와의 만남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 복귀작인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을 통해 장국영은 그때까지 그에게 따라붙던 아이돌 딱지를 떼어버리고 허무와 외로움의 초상이 됐다. 생전, ‘아비정전’의 아비가 자신의 내면과 가장 닮아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장국영은 영화에서 아비 그 자체였다. 권태와 반항의 기운 속에서 숨죽이던, 애타가 사랑을 갈구하다가도 누군가가 다가오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 버리던 아비. 하얀 속옷 차림으로 맘보를 추던 그의 고요한 몸짓….

 

왕가위와 함께 한 영화(‘아비정전’ ‘동사서독’(1994) ‘해피 투게더’(1997)) 안에서 장국영의 아름다움은 자주 위태로웠고, 종종 파괴적이었으면, 그로 인해 또 매혹적이었다. 허무주의로 가득 찬 ‘동사서독’에서 정국영은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먼저 거절을 선택하는 상처 입는 남자였고, ‘해피투게더’에서의 장국영은 사랑하는 이에게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떠남과 돌아오기를 반복함으로써 상대는 물론 그 자신도 외로워졌던 남자였다. 이렇듯 영화 안에서 장국영은 손에 잡히지 않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스크린 안팎을 서성이며 그 경계를 무너뜨리기 일쑤였다. 장국영의 슬픔엔 보는 이를 감염시키는 강한 전파력이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의 바이러스는 극에 달했다.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는 주윤발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장국영이 살아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고. “날 전설이라고 불러줘. 난 전설이 될 거야.” 존 파워스의 저서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을 보면, 장국영은 생전에 전설이 되고 싶어 했다. 장국영은 삶의 운명을 거부함으로써 그의 말대로 전설이 됐다. 누군가는 비극이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젠 그가 없다는 사실이다. '동사서독'에서 장국영은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늘 말했었다. 갖지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고.” 세상은 그를 갖지 못했지만, 잊지 않았다. 내년에도 장국영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후년에도. 그 이후에도.

 

정시우(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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