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가 열어젖힌 '부부의 세계' 민낯!

고품격 불륜 드라마 탄생에 대박 예감 ~

2020.03.31

사진제공=JTBC



과연 부부만큼 복잡 미묘한 관계가 있을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는 건 숭고하면서도 아름다운 일. 그러나 겉모습만큼 로맨틱하지 않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결혼의 근간인 사랑과 신뢰란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기 마련. 그래서 부부간 ‘기만’과 ‘배신’ 코드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잘 살겠다는 사회적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배신자의 모습에 함께 공분하다가 배신당한 이가 복수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아찔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지난 주말 첫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는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불륜’이란 코드로 모래성 같은 현대부부의 허상을 담아 단 2회 만에 시청률 11%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희애 박해준 한소희 김영민 박선영 채국희 등 출연진의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연기 앙상블과 탄탄한 서사를 지닌 원작에 한국적 정서와 상황을 스마트하게 덧입혀 각색한 대본,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연출이 어우러져 시청자들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랑과 의심, 실망, 분노, 절망, 굴욕감, 복수심 등 다양한 감정의 파노라마가 안방극장에 물결치며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고전적인 '불륜 드라마’ 공식에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터치를 더하여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탑승시켰다.


예전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남자에 대해 해온 말이 있다. “남자가 평균이상으로 잘생기면 꼭 얼굴값은 한다”와 “또한 지나치게 다정한 남편은 의심해볼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어른들의 이런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은 남의 일처럼 들리기 쉽다. 일과 가정을 모두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던 능력 있는 의사 지선우(김희애)도 마찬가지. 경제적 능력은 부족하지만 다정한 영화감독인 남편 이태오(박해준)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미고 있다고 믿었다. 병원 부원장이란 직책이 보여주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커리어와 잘생긴 남편과 귀여운 아들. 모두가 자신을 부러워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모두 빈껍데기뿐인 허상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매준 머플러에 붙은 긴 갈색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한 후 완벽했던 선우의 삶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 작은 호기심은 집착으로 변하고 궁금증은 심증으로 굳어간다. 껍질을 벗길 때마다 새살이 드러나는 양파처럼 변검술사처럼 수많은 가면을 썼던 이태오의 민낯은 서서히 본 모습을 드러낸다. 2회 결말부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선우가 마지막으로 진실을 고백할 기회를 줬음에도 이를 부인하며 사탕발림으로 넘어가려는 태오의 모습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선우의 반격만 남았을 뿐이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모범생이 엇나가면 더 빗나간다” “착한 사람 화나면 더 무섭다”고 말했다. 감정의 바닥을 치고 반격만 남은 선우의 행보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철저히 농락당한 사랑과 믿음이 변한 애증과 복수심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진제공=JTBC


아무리 부부라도 감정의 총량이 같을 수 없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성별을 떠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태오가 시청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이유는 ‘사랑’을 빙자해 남의 감정을 이용만 하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 아내 선우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상류층 생활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사랑하고 애인 여다경(한소희)은 자신의 남성성을 보상해주는 젊음과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한다.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 이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만큼 처절히 응징되는 일만 남았다.


세월이 지나도 사랑과 배신의 감정은 똑같기에 ‘불륜 드라마’가 새로워 보이는 건 매우 힘든 일. 그러나 ‘부부의 세계’는 최고의 제작진이 모인 만큼 ‘클래스’가 다르다. ‘미스티’에 이어 모완일 감독은 세련되면서도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불륜극’에 품격을 더한다. 선우가 남편의 생일파티 때 불륜의 증거를 찾아낸 후 분노해 가위를 등 뒤에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남편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시청자들이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감을 선사한 명장면. 또한 선우를 도발하기 위해 진찰 받으러온 내연녀 여다경(한소희)의 임신사실을 발견하는 장면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긴박감이 넘쳤다. 극단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낸 김희애의 명연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주현 작가의 필력도 기대 이상이다. 결혼과 부부 관계의 허상을 드러내는 시쳇말로 ‘뼈때리는’ 대사의 릴레이는 탄성을 자아내며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결코 드라마 속 설정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볼 수 있는 상황임을 깨닫게 했다.


‘부부의 세계’는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대박의 기운이 스멀스멀 몰아치고 있다. 명배우들에 최고의 제작진이 뭉쳤으니 ‘어벤저스’팀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변수도 분명히 있다. 부부 관계의 본질은 대한민국이나 영국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 시청자들은 보수적인 면이 분명 있다. 원작 드라마 속 극단적인 설정들을 얼마나 한국적으로 각색해 한국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김희애 박해준이 열어젖힌 ‘부부의 세계’의 민낯.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 제목처럼 요지경 속 같은 모습만 보여줄지, 아니면 또다른 세계를 보여줄지 관심을 모은다.


최재욱 기자 jwch69@ize.co.kr

 





목록

SPECIAL

image 부부의 세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