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는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19로 '회전가' 등 공연 줄줄이 취소

2020.03.26

코로나19로 '회전가' 등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을 모아 한 편의 공연을 올리기까지 수많은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위기를 봉합하는 주문이 있다.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될 것이다)” 이 말의 시작은 시카고의 광대 보보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도 무대에 오르며 한 말이라고 한다. 공연인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명제로 여겨지는 이 말에는 모든 갈등을 희석시키고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는 힘을 지녔다. 그러나 이 마법 같은 주문도 코로나19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세계 공연의 양대 산맥인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자 공연 중단이라는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섰다. 9.11 테러 때도 일시적으로 공연이 중지되었지만 중단 기간이 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재개 시점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3~4월 공연들이 줄줄이 공연 취소를 통보했다. 한 편의 공연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수십, 수백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인 결과물이 그대로 사장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국립극단도 올해 준비한 국내외 프로그램을 줄줄이 취소, 또는 축소했다. 신협과 극협의 전속단체로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은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국립극단은 70주년을 맞아 신작 발표와 대표작 재공연, 로열 셰익스피어극장과 러시아 박탄고프 작품을 초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해외 유명 극단의 초청은 모두 취소되고 국내 작품도 몇몇은 취소하거나 축소해야 했다. 국립극단이 70주년 기념 공연을 여는 작품은 배삼식의 신작 '화전가'였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계획된 일정을 마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어야 하지만 연습도 채 마치지 몫하고 취소 결정이 나고 말았다. 

  

'화전가'는 1950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경북 내륙 지역 반촌 집안의 여인들을 주목한다. 역사 속 주인공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작품을 주로 써온 배삼식은 전작 '라오지앙후 최막심'에서는 식민지 시절 만주로 떠났던 사람들을, '1945'에서는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전재민 구재소의 조선인을 주목했다. '화전가'는 근현대사의 구체적 삶을 다룬 전작들과 맥을 같이하면서, 치열한 갈등을 보여주는 대신 하루 동안의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여인네들의 정경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1950년 4월은 이념의 대립이 극에 달해 결국 전쟁으로 치닫기 바로 직전의 시점이다. 작품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여인네들의 의미 없는 수다나 사소한 농담으로 극을 채운다. 그 사이사이 드러나는 것은 시대가 할퀴고 간 고통과 상처의 흔적이다. 배삼식은 가장 피폐한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내는 여인들을 그림으로써 시대의 고통으로부터 저항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념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쟁이 이들의 내일을 피폐하게 만들겠지만 가족들과 나눈 화전놀이의 기억이 그들을 쉽게 주저앉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인물들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진달래향 그윽한 희곡집이 발간돼 위안을 준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역시 미진하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경기도문화의전당 등 국공립 단체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공연이 취소되자 무관중 공연을 라이브로 방영하기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기존 공연 영상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하며 Show Must Go On 정신을 이어갔다.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공연들을 무료로 대중들이 즐길 수 있어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은 공연장에서 봐야 한다. 공연은 무대 위의 배우들과 관객들이 만나 비로소 완성되고 소멸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 엄중한 시기를 이겨내고 아름다운 연극 '화전가를 무대에서 만날 날을 기대한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쇼는 계속될 것이다.


박병성(공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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