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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가 준 교훈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2020.03.16

사진제공=SBS '하이에나'


새벽, 터덜터덜 빨랫감을 들고 빨래방을 찾은 남자. 아무도 빨래 따위를 걱정하지 않으며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각. 당연히 아무도 없어야 하는 이 공간에, 누군가 있다. 


풍성한 머릿결, 흰 피부, 날씬한 몸에 가냘픈 손목으로 턱을 받친 채 독서에 몰두하고 있는 여자(남자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녀의 ‘꾸안꾸’를). 누군가 있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심지어 예쁘다니! 이야기는 끝났다. 미국 영화에서나 봤더니, 이제 우리나라 빨래방에서도 연애가 시작되는구나(필시 PPL과 연관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조금 신선하니 넘어가자). 


SBS 드라마 '하이에나'(극본  김루리, 연출 장태유) 첫 회를 보고, 극의 완성도니 줄거리니 다 떠나 눈에 들어온 것은 김혜수의 ‘미모’였다. 대체 나이가 몇인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간혹 분명 방부제를 드신다고 생각되는 여신, 남신들이 있다. 누구는 평생 한번 잠깐 스치고 지나는 리즈 시절을 어찌 그들은 지속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건지. 아무리 세상 불공평을 외쳐도 할 수 없다. 결국은 타고나는 것인가? 


SNS에서, TV에서 너무 예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난다. 반짝반짝 눈부신 그들은 지금 가장 아름다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늘,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만 같다. 그럼 나는 언제가 전성기였지? 답은, 아니 질문부터가 과거형이다. ‘그때 그 대학교 1학년 때. 그때 좋았는데~’, ‘초등학교 때였지 아마, 그 뒤로는 망했어…’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앞으로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중에게 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생겨나는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노력을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나도 그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출근 시간, 나는 예의상 화장을 한다. 대충 눈썹을 그리고(그나마 귀찮아 ‘반영구 화장’한 지 꽤 되었다) 쿠션 퍼프를 넓은 얼굴에 대충 두드리며 생각한다. ‘아, 화장 좀 안하고 살고 싶다’. 눈썹그리기부터 속눈썹 뷰러,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입술, 블러셔까지 이른바 ‘풀메’를 해본지가 언제지…. 화장을 하고 안하고는 선택의 문제다. 나는 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좀 제대로 하지 왜 이렇게 대충하는 걸까?


'현타’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대충’ 하면서 어찌 ‘정점’을 넘보는 건가. 그건 솔직히 도둑심보가 아닌가. 해봤자 별거 없다고. 그렇게 또 비겁하게 대충 자기위안으로 마무리 짓고 습관적으로 해온 일들이 어디 화장뿐이랴. 다이어트는 늘 내일부터, 1일 1팩은커녕 1주 1팩도 못하며 연예인의 미모를 부러워하다니, 이런 도둑심보가 또 어디 있을까. 전성기는 그저 한때일 뿐이고 과거형일 뿐이라고, 그것을 되찾거나 유지하겠다는 노력에는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닐까.


인생도 조각 케이크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만을 똑 잘라내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름답고 눈부신 절정이 긴 인생에서 몇 개의 점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점을 선으로 잇고 그것을 얼마나 길게 유지하느냐는 개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 어느 한때만 반짝이는 것은 아니라고, 매 순간이 반짝이고 눈부실 수 있다고 믿고 싶으며 살고 싶다. 말로만 하지 말고, 이번 주말 '하이에나'를 볼 때는 얼굴에 팩이라도 붙여야겠다.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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