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2020.03.13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MBC에서 방탄소년단이 사라졌다. 2월 컴백한 방탄소년단은 MBC ‘쇼 음악중심’에서 2주 연속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볼 수 없었다.눈을 옆으로 살짝 돌려보자.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KBS 2TV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Mnet ‘엠카운트다운’에는 방탄소년단이 2주 연속 출연했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각 매체들은 MBC가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갑질’을 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담은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방탄소년단이 출연 안 하면 MBC만 손해 아니야?" 양측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속내를 알거나, 득실을 명확히 가르기는 어렵다. 다만, 양측 간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방송사가 특정 가수들의 출연을 제한한다는 이야기와 정황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하지만 스타 권력이 방송사 권력에 버금가는 상황이 된 요즘, 방송사의 일방적 갑질을 운운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스타와 방송사, 그 반목의 역사


방탄소년단 이전, 최고의 자리를 지키던 그룹 빅뱅을 살펴보자. 내놓는 노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각 멤버들의 남다른 입담으로 출연하는 예능마다 최고 시청률을 보장하던 빅뱅. 헌데 KBS에서는 유독 그들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빅뱅을 포함한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은 2011년 3월 이후 꽤 오랜 기간 KBS 예능에 출연하지 않았다. 빅뱅 등은 KBS의 연말 특집 무대에서 서지 않았다. 매번 컴백무대를 ‘인기가요’로 삼으며 SBS와 달콤한 관계를 이어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양측 모두 불화설은 부인하거나 함구했다. 하지만 양측의 불편한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때문에 4년 넘게 얼어붙었던 관계를 깨고 2015년 빅뱅과 지누션 등이 KBS 2TV ‘해피투게더3’와 ‘뮤직뱅크’ 등에 출연한 것은 대대적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슈퍼스타 K’와 ‘프로듀스 101’ 등 Mnet이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의 지상파 출연 과정 역시 지난했다. ‘슈퍼스타 K’의 엄청난 성공으로 서인국, 허각, 존박, 울랄라세션, 버스커버스커 등 스타가 쏟아져나왔지만 이들은 좀처럼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무대에 서지 못했다. 오디션 열풍에 힘입어 MBC ‘위대한 탄생’, SBS ‘K팝 스타’ 등이 연이어 론칭되던 때라 타사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들을 노출시키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프로듀스 101’ 시즌1이 배출한 걸그룹 아이오아이로도 이어졌다. 경연 과정에서 이미 단단한 팬덤을 확보한 아이오아이는 데뷔곡을 낼 때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지상파 무대에 서는 것은 데뷔조인 톱11 안에 드는 것만큼 힘겨웠다. 이에 대해 지상파 3사는 입을 맞춘 듯 "출연 제한은 없다"고 못박았다. 출연을 원하는 가수와 팬이 있고, 출연을 막는 방송사도 없는데, 정작 출연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또 다른 가수들이 있다. 그룹 JYJ다. 동방신기의 멤버였던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로 구성된 JYJ는 독립 후 방송 출연하는 길목이 번번이 막혔다. 이에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는 JYJ의 방송 출연과 가수 활동을 방해했다며 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 (사)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하 문산연)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JYJ와 SM엔터테인먼트의 불편한 관계는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거대 방송사가 그 장단에 맞춘 것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방송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특정 연예인이 출연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방송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 연예인의 프로그램 출연을 금지할 경우 당국이 이를 제재하는 내용을 담은 ‘JYJ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방송사와 특정 기획사, 혹은 연예인들과의 불화설은 가요계 안에서 심심치 않게 나도는 이야기"라며 "TV 외에 유튜브와 SNS 등 다매체 시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방송사가 가진 역사와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특정 방송사에서 출연을 금지한다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의 기운이 더 서슬 퍼렇던 시절도 있었다. ‘비닐 옷’의 대명사인 가수 박진영. 정작 그는 이 옷 때문에 방송 출연 정지까지 당했다. 그는 KBS 2TV ‘해피투게더3’에서 "당시 가수들이 귀고리를 하거나 염색을 하면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제재를 받았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반발심이 생겼었다"며 "일부러 방송 리허설 때도 멀쩡한 옷을 입다가 생방송 무대에 오를 때 비닐 옷을 입었는데, 그 때문에 방송 정지를 당해 한참 동안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약 30년 만에 재조명 받고 있는 가수 양준일 역시 1993년 활동 당시 방송 출연 정지 3개월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무분별한 외국어 및 비표준어 발음 구사로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 함양 및 바른 언어생활을 저하시켰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데, 당시만 해도 이런 결정에 반박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TV 활동이 중단되면 사실상 대중에게 노출돼야 하는 연예인의 생명력이 끊기는 것이야 다름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박진영, 양준일이 과거에 겪었던 부당한 사례를 TV에 출연해 여과없이 이야기하고, 대중은 이에 호응한다. 스타들에게는 굳이 TV를 통해 노출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스타 권력이 방송 권력과 어깨를 견주는 시대가 된 셈이다.


#방송출연 금지, 과연 누구의 손해일까?


다시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MBC와 방탄소년단 간 불화의 불씨는 어디서 기인했을까? 지난해 말 방탄소년단은 ‘2019 MBC 가요대제전’에 출연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 했다. 12월31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되는 ABC 신년특집 ‘Dick Clark’s New year‘s Rockin’ Eve’에 출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방탄소년단이 속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소속 신인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자회사로 편입된 쏘스뮤직 소속 걸그룹 여자친구가 ‘쇼! 음악중심’를 비롯해 MBC에서 좀처럼 볼 수 없게 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여기서, 다시 질문을 해본다. 스타의 방송출연을 금지시키는 건, 과연 누구의 손해일까?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린다면, 당연히 소속사와 소속 가수의 손해다. 지상파의 권력은 여전히 막강했고, 이를 통해 노출되지 않으면 스타덤에 오를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들은 헐값에 가까운 출연료만 받고도 각 방송사들이 해외에서 여는 수익성 공연에도 기꺼이 선다.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굳이 TV에 나오지 않아도 대중과 만날 플랫폼은 다양해졌다. 오히려 아이돌 가수들이 주 타깃층인 10∼20대는 TV를 외면한다. 유력 연예기획사 소속이 아니었던 ‘흙수저’ 방탄소년단, 그들이 신인 시절 그다지 방송사의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주위로 눈을 돌리며 SNS를 통한 홍보와 마케팅으로 팬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인 이미 새로운 성공 방정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방송사로서는 뼈아픈 성과지만,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 전체로 봤을 때는 쾌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는 태도는 향후 그리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권위가 하락했을지언정, 그들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스타들이 출연하지 않는 것은 방송사에 해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의 소속사도 결국 신인을 키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방송사의 도움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이해 관계 속에서 스타와 방송사 간 힘겨루기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방송 출연 금지는 없다”는 방송사, 그리고 “드릴 말씀이 없다”는 스타.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윤준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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