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인간 뒤에 도사린 악마성!

시의적절한 뮤지컬 '미드나잇: 앤틀러스'

2020.03.12


코로나19가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공포가 언제 엄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나간다. 뮤지컬 '미드나잇: 앤틀러스'의 배경은 독재 정권의 감시와 통제로 숨 죽여 살아가고 있는 가상의 세상이다. 곳곳에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와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 


반역자를 색출하는 앤틀러스가 집집을 방문하여 누군가를 끌고 가고, 끌려가는 자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세상.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주인공인 남편과 아내는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 암거래상에게 미제 LP판을 구하고, 와인과 샴페인으로 새해맞이를 준비하는 이 부부에게서는 공포스런 바깥의 공기가 섞여들지 않는다. 당 간부인 남편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면책특권을 받게 되었음을 알리면서 단란한 부부의 행복은 절정으로 치닫는데, 바로 그때 자정을 앞두고 불길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정신없이 철수하면서 남겨진 앤틀러스 한 명이 전화를 빌려 쓰기 위해 이 단란한 가정을 방문한 것이다.


엄중한 통제 속에서도 사소한 행복을 즐겨온 부부는 샴페인과 와인, 무엇보다도 미국제 LP판을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감시의 망을 벗어난 작은 일탈을 숨기려는 부부와, 그것을 찾아내려는 감시자의 대결로 극이 전개될 듯하지만 LP판은 그저 맥거핀일 뿐. 낯선 자의 방문으로 드러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실체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과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 이런 공포의 세상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긴장감 넘치는 극이 전개된다.


'미드나잇: 앤틀러스'는 기본적으로 사회 비판극적인 소재이지만 실제 공연은 심리극이나 미스터리극에 가깝다. 작품이 관심을 갖는 것은 독재 권력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인간성 파괴가 아니라, 근본적인 악의 근원과 인간의 나약함이다. 낯선 방문자 앤틀러스는 보통의 감시자들이 그렇듯 숨기고 있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일탈 혐의가 있지만 체포하지도 않는다. 대신 감시자는 부부가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을 폭로하면서 이들의 반응을 지켜본다.


공포의 시대에 평안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밀고자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당의 신임을 얻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반역자로 밀고했다. 심지어 부부와 함께 파티를 할 정도로 친했던 부부까지 밀고하면서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다. 아내에게만은 착하고 멋진 남편으로 남고 싶었던 남자는 흉악한 본 모습을 노출하고 만다. 배심감에 절망하는 아내는 무너져 내리지만, 이내 아내의 추한 행각 역시 드러나고 만다. 심지어 마냥 착하고 예쁜 줄만 알았던 아내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앤틀러스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처리하려는 행동력을 보인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 부부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단순히 반역자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 파멸로 몰아가는 방문자는 누구일까? 남편과 아내는 얼마나 모진 마음을 지녔기에 이토록 무서운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악마가 되어 버린 이들을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뮤지컬 '미드나잇: 앤틀러스'는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남편은 도청의 흔적도 없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방문자를 악마라고 생각한다. 방문자는 왜 이곳을 찾아왔냐는 남편의 질문에 “왜 내가 여기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라며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긴다.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악마로 변하는지 악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잔인해서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약해서 악마가 된다. 남편과 아내는 절대 권력에 맞서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악한 일을 저지른다. 작품에서 앤틀러스는 비지터라는 캐릭터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밤중에 낯선 방문자인 악마의 방문으로 극이 시작하지만 그곳엔 이미 악마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극이 끝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앤틀러스'는 아제르바이잔의 작가 엘친의 희곡 '지옥의 시민'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7년 초연하여 올해 3년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행복한 가정을 방문하는 비지터 역에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를 더블 캐스팅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어떤 성별의 배우가 비지터를 연기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맛보게 된다. 특히 비지터와 같이 미스터리한 역할에서는 젠더 프리 캐스팅의 효과가 두드러진다.


국내에서 라이선스 공연 '미드나잇:앤틀러스' 공연에 이어 오는 4월부터는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직접 내한하는 액터 뮤지션 버전의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이 공연된다. 액터 뮤지션은 배우들이 연주를 병행하는 공연을 말한다. 액터뮤지션 배우들은 단순히 연주까지 한다는 의미를 넘어 연주를 캐릭터와 연기의 일부분으로 확장시킨다. '미드나잇'은 젠더 프리와, 액터뮤지션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한 작품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박병성(공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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