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 조이서, 이 나쁜 여자의 클라쓰

나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에 시청자 열광!

2020.03.04

사진제공=JTBC '이태원 클라쓰'


“사장님의 먹먹한 목소리에 북받치는 감정. 다시는 혼자 아프게 두지 않겠다는 생각. 이 남자를 건드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는 다짐…”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실행해버리고야 마는 여주인공에게서 혹시 쾌감을 느꼈는가? 바로 그거다. 당신이 JTBC '이태원 클라쓰'(극본 조광진, 연출 김성윤)에 빠진 이유. 4%대 시청률로 시작해, 14%(닐슨코리아 기준)를 돌파한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 말이다.

 

'소시오패스'라고 불리는 캐릭터가 이토록 통렬해 보인 적이 있던가. 기존 한국 드라마의 정서적 잣대로 보자면, 분명 조이서(김다미)는 ‘나쁜 여자’다. 정도 없고, 배려도 없고, 철저히 이기적이다. 남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가 열아홉부터 순정을 바친 첫사랑에게 키스를 당하는 역사적 순간에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스킨십은 형법 제32장에 위배된다”며 손으로 직접 ‘디펜스’한다. 인플루언서인 자신의 재능과 인기를 십분 살려 학교 폭력의 현장을 SNS에 찍어 올리고, 가해자 부모이자 구청장의 부인이 와서 따지니, ‘장유유서’고 뭐고 냅다 싸대기를 날린다. ‘매출’이 목표라면, 그가 사랑하는 박새로이가 아끼는 직원들에게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포차 ‘단밤’의 매니저로 일한 탓에 집에서 쫓겨나도 ‘엄마 돈’에 아쉬움은 없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런 그를 ‘철부지’, ‘반항아’ 혹은 ‘나쁜 여자’로 평가하지 않는다. 조이서는 현실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든 꾹꾹 누르고 감춰둔 속내를, 기어코 끄집어내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할 말은 하고 산다. 자신이 원하는 것도 정확하게 안다. 선택한 것은 번복 없이 밀고 나가며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다. 그러다 문제가 꼬이면, 그냥 해결해버리면 되는 게 조이서의 심플한 방식. 자기주장은 능력으로 증명해낸다. 인플루언서라는 무기를 활용해 ‘단밤’으로 ‘인싸’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요리 못 하는 주방장에게 “맛없다”고 윽박 질러 결국 ‘단밤’을 맛집으로 만들어 낸다. 무조건 착하길 강요하는 미디어의 세계에서(혹은 실제 사회에서), 그에게 매료되는 건 당연한 수순.


사진제공=JTBC '이태원 클라쓰'


이 스무 살짜리 소녀는 ‘소신과 패기’로만 가득 찬,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남주인공에게 현실감을 부여하고, 절대 선과 절대 악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가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 복수 서사극의 빈틈을 활력 있게 메운다. 특히 그간의 한국 드라마에서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주인공의 난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날리는 역할은 기성세대 혹은 남성으로 그려지곤 했다. 조이서는 그 ‘책략가’의 자리를 단번에 꿰찼다. 심지어 남성 주인공의 복수와 성장이 주요 로그 라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태원 클라쓰’와 같은 부류의 드라마에서 보호해야 할 어린 존재나 훈계해야 할 철부지 같은 존재, 욕망의 전리품, 심지어는 절대 악이 인질(?)로 이용하는 존재에서 벗어난 채로 말이다.

 

조이서는 수동적인 ‘평강 공주’가 되는 것 또한 기꺼이 거부한다. 그는 박새로이에게, 즉 ‘사랑’이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그 남자의 성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다. 그는 박새로이의 능력과 더불어 ‘단밤’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계산을 이미 끝마쳤고, 자신의 능력을 동원해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을 거란 비전으로 ‘단밤’에 입사했다. “사장님을 위해 모든 걸 다 열심히 할게요”와 같은 태도가 아닌, “입사 조건으로 월급 대신 순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지분”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 조이서의 엄마는 그에게 “너 왜 대학 안 가고 그깟 일 하는 건데?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고작 사장놈 성공시키는 게 니 인생이야? 포차 사모님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에 조이서는 “어, 엄마 나 그 남자를 사랑해. 그 남자를 위해 뭐든 다 할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엄마, 난 엄마하고 달라. 똑똑하고 잘났잖아. 나는 사랑 성공 다 이룰 수 있어. 나 남의 꿈에 기대는 거 아니야. 내가 주체인 삶. 내 인생이야”라며 사랑과 성공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에서도 그의 확고한 생각이 느껴진다.


최근 회차에서 조이서는 “내가 사장님을 사랑해. 근데 문제는, 사장님의 머릿속엔 빌어먹을 장가 놈 새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난 그게 질투가 난다고… 그니까 내가 다 부숴 버릴 거야”라고 말하며, 박새로이의 아버지를 죽인 진범의 자백을 녹음하는 데 성공한다. 이 또한 선악의 논리나 정의에 기대기보다 “자신과 어울리는 남자를 만들기 위한” 일의 일환이자 ‘단밤’을 살리겠다는 목표 의식으로 벌인 일이다. “난 너무 잘났기에 꿈, 사랑 모두 이룰 수 있어.” 이런 반가운 '욕망 덩어리' 혹은 반가운 '나쁜 여자'의 등장. 이 캐릭터의 주체적인 본질이 ‘이태원 클라쓰’의 종영까지 변하거나 퇴색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전혜진(하이컷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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