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능력 없는 세포라도 괜찮아!

웹툰 '유미의 세포들'과 '아홉수 우리들'을 보며

2020.03.02

사진출처=네이버웹툰


늘 마주치고 별다른 느낌이 없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훅’하고 마음속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사랑 신호일까, 아니면 너무 외로워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까.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오간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세포’들이 생각하는 것일까?

 

수요일과 토요일은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작가 이동건)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벌써 몇 년 째다. 웹툰은 직장을 다니다 전업 작가가 된 주인공 유미,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과 남자친구 이야기를 ‘유미의 세포들’의 시각으로 그린다. 유미뿐 아니라 남자친구의 세포들도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일상 모든 것을 관장하는 세포들은 깜찍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어찌나 세심하고 기발한지!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가 아닌, 세포들의 행동 지침에 따라 유미는 두 명의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현재 새로운 남자와 연애를 막 시작하려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유미를 만나는 와중에 토요일마다 나는 또 다른 젊은 여성들을 만난다. 스물아홉 동갑내기, 세 명의 우리(주인공 이름이 모두 우리다) 이야기를 다룬 웹툰 '아홉수 우리들'(작가 수박양)이다. '유미의 세포들'이 '판타지’라면 '아홉수 우리들'은 ‘리얼 다큐’다. 웹툰 그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20대 후반 여성을 주변에서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해서다. 까칠하고 차가운 항공사 승무원이 차우리, 성실한 공시생 김우리,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해 졸업 후 작은 잡지사에서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는 주인공 봉우리. 서른을 코앞에 둔 이들은 이른바 ‘아홉수’에 걸려 녹록지 않은 인생 여정을 걷고 있다.

사진출처=네이버웹툰


 

그 중 봉우리는 최근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고, 직장에서는 해고됐다. 잠 못 드는 밤, 봉우리는 숨이 막힐 정도로 괴로워한다. 자신이 봉우리가 아닌 보다 능력 있고 멋진 사람이었으면 직장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남자친구가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친구가 미운 게 아니라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증오하고 스스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할 만큼 절망한다.

 

봉우리가 흐느낄 때 나는 그 나이대로 돌아가 있었다. 그림 속 봉우리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뿐이고 그 마음은 글자로 박혀 있었지만 나는 감정이입 돼 마치 내 일인 양 가슴이 뻐근했다. 그리고 잠 못 들던 그때의 수많은 밤이 떠올라 당시로 돌아가 한참을 서성였다.

 

20대 후반~30대, 혼자 스스로 사회에 서는 나이. 그때는 할 일이 참 많다.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취준생이라면 취업에 매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연애도 해야 한다. 잘 되면 꽃길이지만 잘 안되거나 못하면 가시밭길이다. 유미처럼 유독 연애와 일에 재능을 발휘하는 영특한 세포들을 지니고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행운의 주인공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때는 어느 때보다 찬란하지만 또 한편으로 가장 잔혹한 시절이다. 인생 선배랍시고 자신들을 향해 ‘가장 좋은 때’를 들먹이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것만 같은 현재 진행형인 투쟁의 시절이므로. 그럼에도 조금 더 길게 산 선배로서의 한마디를 허락한다면, 나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당의정 같은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은 일에서, 연애에서, 그 밖의 모든 인생의 걸음마다 피하고 싶은 친구처럼 수시로 출몰할 것이라 솔직히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고통이 온다 해도 피할 길은 없다고. 결국 그 고통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 가는지가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라고.

 

유미의 세포들은 어떻게 순록 씨를 남편으로 만들까. 그리고 세 명의 우리는 자신들에게 지워진 마지막 20대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낼까.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웹툰 작가들은 분명 감동적인 결론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순간보다 즐겁고 행복하고 설레는 ‘과정’들이 알고 보면 20대, 30대의 중요한 서사임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것이다.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들이 나보다 훨씬 멋지게 젊은 날을 살아내길 응원한다.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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