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작은 아씨들', 꿈과 현실의 차가운 경계

고전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해석

2020.02.14

사진제공=소니픽쳐스코리아


누구나 어린 시절 총천연색 꿈을 꾸며 산다. 책임과 의무가 없는 시절엔 자신의 인생에 탄탄대로가 열리고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될 걸로 예상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은 그렇게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나이가 들어 현실과 맞닥뜨리면 인생을 꿈꾸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게 엄청나게 많거나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꿈에 근접해갈 수 있다. 차가운 현실이다.


특히 여성들은 이런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남성들과 똑같은 능력과 재능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좌절하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시대가 변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목소리가 커지기는 했지만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수없이 많은 제약과 선입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분명히 인생의 축복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으로 주체성을 유지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은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여성이 겪어야 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담은 작품.


감독 데뷔작 ‘레이디버드’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예로 떠오른 그레타 거윅 감독은 1886년 발표된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호평을 받고 있다. 올드해 보이는 원작에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색감을 덧입힌다. 남북전쟁 전후 미국 북부도시를 배경으로 개성 강한 네 자매의 4인 4색 다른 삶을 통해 여자가 주체적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여러 번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토리는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꿈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를 꿈꾸는 에이미(플로렌스 퓨). 원작과 이제까지 만들어진 전작들은 둘째 조를 중심으로 재기발랄한 네 자매의 우애와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상과 현실의 차에 진한 성장통을 앓는 네 여성의 삶을 세밀히 조망한다.


사진제공=소니픽쳐스코리아


이를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해 감독은 원작과 달리 네 자매가 차가운 현실에서 사는 어른이 된 현재와 꿈 많았던 어린 시절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현재의 모습은 차가운 색감,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과거는 따뜻한 색감으로 담아 관객들의 감정선과 공감대를 건드린다.


사랑만 믿고 결혼했다가 이상과 현실의 차를 뼈저리게 느끼며 가난에 시달리는 메그,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독립적인 삶을 꿈꾸지만 결혼의 압박에 시달리는 조의 고민은 요즘 여성들과 비교해도 정도 차만 있지 본질은 별반 다를 게 없다. 베스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에이미는 뜻밖의 사랑에 빠져든다. 여자에게 가혹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현실의 벽을 넘어서려는 네 자매의 우애와 삶에 대한 열정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기대대로 완벽하다. 네 자매를 연기한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20대 배우인 엠마 왓슨, 시얼샤 로넌,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은 꿈 많은 소녀와 성숙한 어른을 오가며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레이디버드’에 이어 그레타 거윅 감독과 호흡을 맞춘 시얼샤 로넌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며 영화를 이끌고 엠마 왓슨은 한결 성숙해진 연기력을 선보인다. 한국 관객에게 아직 낯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플로렌스 퓨의 호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웃집 소년 로리를 연기한 티모시 살라메는 훈훈한 비주얼과 매력으로 여심을 흔든다. 할리우드의 베테랑 배우 메릴 스트립과 로라 던은 안정된 연기력으로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작은 아씨들’이 10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영화화되고 사랑받는 이유는 원작의 힘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 오래 된 원작 속에서 진취적인 메시지를 발견한 감독의 혜안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여전히 사로잡는 잘 짜여진 스토리의 매력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 꿈많은 10대부터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부모까지 공감대를 형성하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장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극장나들이를 하기가 꺼려지는 시기지만 온 가족이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눈을 자극하는 볼거리만 가득한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마음을 살찌울 수작이다.

   

최재욱기자 jwch69@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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