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봉준호, Bong Hive! 세련된 입담군이 준 감동

아카데미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개척자!

2020.02.11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오스카는 로컬영화제잖아요.”

 

그것은 봉준호의 우문현답이었다. 한국 영화가 어째서 단 한 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느냐는 질문을 향한 촌철살인.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 ‘뼈 때리는’ 발언은, 당연했던 진실을 뒤늦게 자각시키며 인터넷 바다로 퍼져 공감을 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올해 봉준호의 '기생충'이 없었다면 아카데미는 정말 ‘로컬영화제’에 머물렀을 것이다. ‘백인만의 잔치’라는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설마 아카데미 수상의 ‘결정적 한 수’가 비단 만듦새에 있다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아카데미 결과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게 하는 변수. 그것은 할리우드 회원들의 취향이고, 그들이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어떠한 가치다.

그 지점에서 아카데미의 드라마는 매년 쓰여 왔다. 흑역사가 같은 지점에서 탄생하기도 했다. 시상식 전 “'기생충'에 아카데미가 필요하다기보다 아카데미에 '기생충'이 더 필요하다”라는 ‘LA 타임즈’의 진단이 나온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다. 올해 작품상 등 주요 부분에서 봉준호의 손을 들어 준 아카데미의 선택이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그러니까 '기생충'의 수상은 만든 이의 개인적인 영화적 성취와 의도를 넘어 아카데미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하나의 사건이다.

 

상징적이었고 시의적절했다

 

'기생충'의 4관왕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비(非)영어 영화로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다. 아시아 영화 최초의 각본상이고 이안 감독에 이은 아시아계 역대 두 번째 감독상 수상이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1955년 미국 영화 '마티' 이후 두 번째.


아카데미는 물론 우리나라 영화사를 논할 때 두고두고 호출될 기록들인 셈이다. 시의적절하기도 했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문제 제기에 앞장섰던 이는 올해 봉준호에게 감독상을 시상한 스파이크 리 감독이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단 한 명의 흑인도 포함되지 않자 그는 영화제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동료 배우와 감독들이 이 뜻에 합류했고 소셜미디어에서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가 분출했다. ‘화이트 오스카’ 논란이 이어지자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회원들의 인구학적인 비율에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했다. 신규 회원을 늘리는 과정에서 유색인과 여성 비중이 늘었다. 임권택·봉준호·박찬욱·송강호·이병헌·배두나·하정우 등 한국 영화인 다수의 아카데미 회원 위촉도 이 흐름과 함께 한다. 다양성과 마이너리티에 귀 기울이려는 아카데미 노력과 봉준호라는 재능이 시의적절하게 만난 것이다.

 

봉준호의 수상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 봉준호의 수상소감이다. 늘 느끼는 바지만 봉준호 감독은 세련된 입담꾼이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물론, 상대가 원하는 의도에 1+1을 달아주면서, 그 와중에 유머와 영화적인 깨알 지식도 놓치지 않고 말속에 채워 넣는다. ‘봉하이브’(BongHive, 봉준호를 추앙하는 벌떼로 통함)라는 팬덤이 국경을 넘어 생겨난 데에도 이러한 봉준호 감독의 개인적 면모가 적잖게 작용했을 테다. 해외 감독과 배우들이 봉준호와의 친분을 자랑하듯 SNS에 드러내는 것 역시 봉준호라는 사람의 매력에서 나온다. 미국 연예 잡지 ‘배니티 페어’가 “이번 시상식 시즌에서 가장 사랑받는 달링”으로 봉준호를 언급한 이유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는 봉준호다

 

이번 아카데미는 그런 봉준호의 매력이 ‘+1’ 추가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봉준호는 지난 5월 칸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어린 시절부터 영감을 준 (프랑스 감독) 앙리 조르주와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린다”는 말로 주최국 프랑스 영화 역사에 존경을 표한 바 있다. 이번엔 시네마 키드들의 우상, 할리우드의 산증인 마틴 스코세이지다. 하물며 그가 같은 공간에 있으니 오죽했을까. 마틴 스코세이지에 대한 아카데미의 희망 고문 역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마틴 스코세이지는 2007년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수상하기까지 6번 빈손으로 돌아간 바 있다), 올해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을 향한 오스카 회원들의 애정은 다소 박했다. 그러나 관심에서 완전히 밀려났을 법한 마틴 스코세이지를 봉준호 감독은 기어코 드라마틱하게 중심부로 불러세웠다. “어렸을 적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스코세이지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이 말은 한 분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입니다.” 순간 카메라는 스코세이지를 비췄고, 그가 온화한 미소를 드러냈고, 모두가 기립해 노장 감독에게 경의를 표했다.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 명치에서 끓어오르는 뭉클함. 여기에 소감 말미 “오스카 주최 측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5등분해서 (감독들과) 나누고 싶다”며 할리우드 슬래셔 무비의 대표작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인용해내는 익살까지.

 

봉준호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가슴에 품고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왔듯, 아카데미 무대에 선 봉준호를 보며 자극과 희망을 품은 예비 영화인들이 아마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상상의 영역이었던 아카데미 무대로 향하는 길을 터줬다는 점에서 충무로 영화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트로피를 든 봉준호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를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도 했다. “미국 관객들이 제 영화를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해 주셨던 형님입니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 이제 봉준호를 모르는 미국 관객이 얼마나 될까. 봉준호를 설명하는 데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세계 어디에서든 이제 봉준호는 그저 봉준호다. The 봉준호.

 

정시우(칼럼니스트,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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