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너희가 사랑을 묻거든 ...

'연애의 참견'을 보며 드는 단상

2020.02.04


25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을 하며,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정확히는 친정 엄마의 전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까지 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대단하세요. 저는 하나도 벅찬데, 힘드시겠네요….”등등의 반응을 보인다. 물론 힘들다. 체험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함정은, 아이가 셋이라고 육아에 대한 지식이 탁월하거나 부모로서의 교육 철학이 확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며 어떤 어려움을 호소할 때, 엉뚱한 질문을 할 때,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지혜로운 답을 들려주거나,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멋진 말로 조언을 해주는 것? 적어도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올해로 열 한 살이 되면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조금씩 늘고 있는 막내 아들. 주로 유튜브를 볼 뿐, TV시청은 잘 하지 않는 녀석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보는 TV 프로그램의 소리를 듣고 은근슬쩍 옆에 와서 앉는다. KBS Joy의 <연애의 참견 시즌3>이다. 결혼한 지 21년, 일하며 아이들 키우며 남편과는 전우애를 느낄 뿐, 연애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 그나마 이 프로그램은 화석처럼 딱딱하게 말라붙은 내 연애감정에 희미한 입김을 불어넣어 줘 간혹 보곤 한다. 그날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무심코 묻는다. “엄마,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뭐야?”

 

한두 번 겪은 일은 아니지만 이번 질문은 금방 대답하기가 제법 어려웠다. 머릿속에는 잠깐 동안 많은 생각이 스친다. 선택은 대충 세 가지. 첫 번째 멋있게, 그럴싸하게 대답한다. 두 번째, 대충 둘러댄다. 세 번째? 그렇다. 대답이 궁색할 때 쓰는 카드. 세 번째는 바로 되묻기다. 이럴 때는 (아이의 말을 경청하는 좋은 엄마라는 것을 드러내듯 최대한 인자하고 온화한 표정이 필요하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사진제공=KBS JOY


그 사이 TV에서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의 예비 시아버지로부터 며느리 지침(?)에 대한 장문의 문자를 받고 고민하는 고민녀의 사연이 방영 중이었다. 사연을 보낸 이는 한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한다고 믿었고,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겠지. 그녀가 분명 시부모까지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 예비 시아버지는 예비 며느리를 좋아하는 걸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자기 아들은 사랑하겠지.

 

누가 강요하지 않지만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전지전능’해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적어도 자식 앞에서만큼은 최고의 부모가 되고 싶어진다.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 경우는 확실하다. 50을 바라보는 지금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로 끙끙대는 미성숙한 인간이기에.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현답을 주고, 인생을 살며 닥치는 무한한 선택의 기로에서 옳은 선택을 하게 해주고 싶어한다. 좀 더 오래 살았고, 세상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그런데 실제로 그것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요(때로는 협박)일 때가 많다. 물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끊임없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무엇보다 자식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에.

 

<연애의 참견> 참견러들은 참으로 지혜롭다. 어쩜 저렇게 똑부러지게 조언을 할까. <연애의 참견>을 볼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다. 이날 곽정은 씨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을 방송에서 처음 한다며 꺼내놓았다. “결혼을 하는 건 너의 일부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첨언하자면, 나의 일부를 잃고 새로운 자격을 부여받는 것. 그것도 매우 이성적이고 지혜롭고 자애롭도록 강요받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나는 결국 아들에게 그다지 멋지지도, 지혜롭지도 않게 대충 (내 나름대로 이 녀석, 이정도면 이해하고 감동하겠지 할 정도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그 정답은 대체 무엇일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부모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 나는, 그저 한 가지만 확실하다고 믿을 뿐이다. 옳은 방법이건 옳지 않은 방법이건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지금처럼 살지 못할 것이기에. 아,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이사)

      

 





목록

SPECIAL

image 부부의 세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