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의 영화

2019.12.19
‘미안해요, 리키’ 보
크리스 히친, 데비 허니우드, 케이티 프록터, 리스 스
김리은
: 의도치 않게 어려운 상황에 놓였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지극한 리키(크리스 히친). 택배 회사에 자영업자로 취직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의 통근용 차를 팔면서까지 새 차를 마련해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책임지게 되면서 빚은 점점 늘어가고, 애비 역시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요양보호사 일에 힘겨움을 느낀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복지를 구걸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비판했던 켄 로치 감독이 이번에는 모든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만드는 ‘긱 이코노미’에 대한 일갈로 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한 가족의 개인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는 서사는 리키의 취직 이후 벌어지는 갈등과 어려움을 통해 ‘책임을 요구하되 책임지지 않는’ 모순적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병폐를 통렬하게 겨냥한다. 단란했던 가족이 구조가 낳은 경제적 빈곤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Sorry, we missed you’라는 원제처럼 우리가 잊어버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시동’ 마세
박정민, 정해인, 마동석, 염정아
임현경
: 등록금 마련할 형편도 못 되면서 대학에 가라고 강요하는 엄마 정혜(염정아)를 이해할 수 없는 택일(박정민)은 가출 후 우연히 장풍반점에 들어선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에 주방장이 그릇 찾아오는 걸 깜빡한 배달원을 집어던지는 곳이지만, 택일은 숙식 제공이라는 조건에 혹해 배달 일을 맡는다. 한편 택일의 단짝이자 홀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상필(정해인)은 무작정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다가 얼떨결에 대부업체의 수금 담당이 된다. 시련과 고난, 불우한 환경에 방황하고 때론 무너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라는 구시대적 교훈을 포함한 영화는, 극 중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직간접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인물들은 일괄적으로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었다가 잔혹한 폭력을 경험한 뒤에야 각성하곤 하는데, 이 때문에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과 배우들의 연기까지 납작해 보인다. 특히 정혜와 경주(최성은)는 각각 배구와 권투 기술을 사용하며 강한 면모를 뽐내지만, 조직폭력배부터 청소년성매매까지를 가볍게 포괄하고 재현하는 상투적인 이야기 안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호흡’ 글쎄
윤지혜, 김대건
송경원
: 아동유괴의 가해자가 시간이 흐른 뒤 성장한 피해자 소년을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거 납치 사건의 공범이었던 정주(윤지혜)는 숨조차 쉬기 힘든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일로 몸을 혹사시키고 술로 죄책감을 씻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정주가 일하는 청소업체에 소년범 민구(김대건)가 입사한다. 전과 2범인 민구는 새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가혹한 현실 앞에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 민구가 그 때 그 아이였음을 단번에 알아본 정주는 민구의 삶이 자신으로 인해 망가졌다는 죄책감에 조심스런 손길을 내민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정주의 시선에 민구 역시 마음이 흔들리고 둘 사이 미묘한 교감이 시작된다. 유괴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심리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끝내 떨쳐버리지 못할 죄의식과 용서의 의미를 더듬는다. 청소업체라는 설정 등 다분히 상징적, 도식적인 면도 있지만 쉽게 용서를 입에 올리거나 답을 주진 않는다. 거의 대부분 윤지혜, 김대건 두 배우의 섬세하고 숨 막히는 연기 호흡만으로 지탱되는 영화. 괴롭지만 도망치지 않고 그럼에도 삶을 이어간다. 다만 고통의 시간은 가능한 길게 내뱉고, 내일로 이어지는 다음 숨은 인색하게 들이마신다는 점에서 감독이 고통의 전시에 집착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질문거리를 남긴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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