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결산│③ 올해의 상실부터 올해의 노래까지

2019.12.18
믿기 싫겠지만, 보름 뒤면 2019년이 끝난다. 2010년대의 마지막 해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과 주목받았던 인물들을 ‘ize’가 16,17,18일 3일간 세 개의 기사로 나눠 정리한다.

올해의 상실: 설리, 구하라
어떤 말도, 어떤 위로도, 어떤 후회도 이미 떠나간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올해의 영화: 벌새
“여자 감독을 TV나 시상식에서 보는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이 보고 싶었고 그래서 ‘벌새’로 상을 받고 싶었고 그것이 다른 여성 감독님들에게 굉장히 큰 영감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나 역시 ‘고양이를 부탁해’, ‘낮은 목소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서 굉장히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김보라 감독이 ‘벌새’로 44번째 상을 받으며 남긴 소감이다. 그의 첫 장편 영화 ‘벌새’는 개인의 삶과 시대의 단절을 어루만지며 여성 서사에 목말랐던 관객들의 갈망을 충족시켰다. 독립영화 최초 국내 누적관객수 14만 명 이상, 전 세계 영화제 44관왕이라는 기록은 ‘벌새’가 이룬 성과이자 상업성이나 작품성면에서 폄하돼왔던 여성 감독의 가능성에 대한 반증이다. ‘벌새’의 비상은 앞으로 펼쳐질 작가 김보라의 세계는 물론, 이를 계기로 추진력을 얻을 수많은 여성 창작자들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올해의 한식: , 마라
어느 날 흑당 버블티 가게가 생겼고, 어느 날 흑당 버블티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으며, 어느 날 흑당 버블티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옆의 치킨 가게에는 ‘흑당 치킨’ 메뉴가 생겼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처음에는 마라탕으로 시작한 ‘마라’가 오뚜기가 내놓은 ‘마라상궈면’과 ‘마라닭강정’ 등을 거쳐 수많은 음식에 섞여 들어갔다. 마치 마카롱이 한국에 와서 ‘뚱카롱’의 형태로 변한 것처럼 흑당 버블티와 마라탕은 올해 한국의 많은 요식업자들이 일단 넣어 놓고 보는 필수 요소가 됐다. 이제 흑당 마라 파인애플 민트초코 피자만 나오면 된다.

올해의 안전지침: 엑시트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유독가스가 자욱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모습과 함께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안전지침을 소개한다. 비상시 옥상문을 개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방독면이 비치돼있으며 정화통 사용시간에 따라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구조 헬기를 향해 도움을 요청할 때는 ‘SOS’를 바닥에 크게 표시하거나 모스부호로 ‘따따따 따-따-따 따따따’를 나타내면 된다. 이러한 내용은 정부가 15년째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및 국민안전재난포털 홈페이지, 안전디딤돌 어플리케이션, 교육자료 등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바이지만, 이를 알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엑시트’는 IPTV 및 다운로드 이용자 포함 약 1000만 명에게 재난 상황 대처 요령을 각인시키며 재미는 물론 교육적 성과까지 거뒀다.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10월 정책브리핑에서 "그들이 보여준 생존법들은 우리 주변의 대규모 점포, 터미널, 노인전문병원 등의 시설에 조직돼있는 '자위소방대'의 대피유도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가 인정한 ‘재난안전교육영화’인 셈이다.

올해의 신인: 김초엽 작가
2019년은 한국 문학계에서 SF가 비주류 장르라는 편견이 깨지는 한 해였다. 김초엽 작가가 지난 6월 출판한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판매부수 2만3000부를 돌파했고(2019. 12. 14 기준),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 발표한 2019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는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그가 2017년 데뷔한 신인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인 성과다. SF의 환상적인 세계를 빌려 차별과 배제에 맞서는 그의 소설은 혐오가 만연한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이야기인 동시에, 작품성을 갖춘 소설은 장르를 막론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의 무대: ‘너나 해’(AOA)
항상 더 예쁘고, 더 어린 여성을 요구하는 걸그룹 시장에서 여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져버릴’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AOA 지민은 Mnet ‘퀸덤’의 ‘너나 해’ 무대에서 자작 랩을 통해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 I’m the tree’라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AOA 멤버들은 수트를 입은 채 보깅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며 성별 반전을 보여준 후 마치 페스티벌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수트 복장이나 보깅 댄서의 활용은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지만, 여성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스스로 뒤집으면서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메시지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메시지와 완성도 모두 높은 무대 연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여성 아이돌의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던 ‘퀸덤’의 경연 무대에서 여성끼리의 경쟁 구도 자체를 탈피하는 주체적 선언이 이뤄졌다는 점은 더욱 유의미하다. 프로그램 내에서 이 무대의 순위는 3위였지만, ‘너나 해’의 무대 영상은 공개 20일 만에 조회수 1000만을 돌파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AOA는 ‘너나 해’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대신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올해의 시대정신: 스카이캐슬
200만 원을 호가하는 ‘스카이캐슬 예서 책상’의 실시간 검색어 등장, 입시 컨설팅 학원의 인기, 그리고 MBC ‘공부가 머니?’의 등장. 종편으로서는 이례적인 23.8%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JTBC ‘스카이 캐슬’은 분명 한국 특유의 치열한 입시경쟁의 병폐를 비판하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정작 그 결과는 사교육 시장에 대한 관심의 증폭과 입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빗발치는 수요였고, 동시에 입시제도의 ‘공정’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이 있었다. 2019년의 대한민국이다.

올해의 흥 : 알라딘
지난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얼롱 관에서 그룹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처럼 러닝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흔들던 관객이 나타날 때부터, 이미 ‘알라딘’의 흥행은 예고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개봉 전에는 윌스미스가 연기한 지니에 대한 우려가 있기도 했던 이 영화는 개봉되자 바로 그 윌 스미스가 미친 듯한 흥겨움을 뿜어내고, 애니메이션 버젼에서 크게 히트한 ‘Whole new world’를 잊게 만든 ‘Speechless’같은 명곡의 힘이 더해져 한국인들을 대폭발 시켰다. ‘알라딘’의 팬들은 싱얼롱은 기본에 4DX로 ‘알라딘’ 속 세계를 체험하려 했고, 4DX관은 평일 낮에도 매진됐다. 이 풀리지 않는 떼창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몸짓들에 대한 갈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올해의 나쁜 기획사 : YG
악동뮤지션이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발표했을 때 관련 기사 등에는 ‘어떻게 YG까지 사랑하겠어, 악동뮤지션을 사랑하는 거지’라는 댓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YG엔터테인먼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댓글로 대신하겠다.

올해의 노래: 아이유 ‘Love poem’
사랑하는 이가 아파할 때 그 어떤 위로나 조언조차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어떤 말에도 상대가 베일 것처럼 위태로운 걱정이 들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이유의 ‘Love poem’이 내놓은 답은 바로 ‘기도’다. 상대의 마음에 어떤 무게나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숨죽여’ 조용히 쓰인 ‘사랑시’는 직접 전해지는 대신 노래에 실려 그저 흘러간다. 멀리에서 울리는 것처럼 처리된 아이유의 목소리는 섣불리 다가가기보다 상대의 ‘자리에 닿기를’ 바라는 기도의 자세, 그리고 ‘홀로 걷는 너의 뒤’에서 항상 노래하겠다는 기다림의 사랑을 표현한다. 각 수록곡마다 다양한 사랑을 표현한 ‘Love poem’ 앨범 전체에서, 사랑의 설렘이나 열정이 아니라 진심 그 자체에 집중하는 트랙인 ‘Love poem’은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 필요한 사랑의 형태 그 자체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의 발표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두 명의 여성 연예인이 세상을 떠났고, 2019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절실한 한 해가 되고 말았다. 부디 2020년에는 마음이 아픈 이들이 없기를,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기도의 자세가 더 많은 곳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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