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결산│① 올해의 인물부터 올해의 저평가까지

2019.12.16
믿기 싫겠지만, 보름 뒤면 2019년이 끝난다. 2010년대의 마지막 해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과 주목받았던 인물들을 ‘ize’가 16, 17 ,18일 3일간 세 개의 기사로 나눠 정리한다.

올해의 인물 : 82년생 김지영

해가 바뀌어도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름이었다. 그는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부조리를 직시할 수 있도록,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곳에서 호명되었다. 사회적 의의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상업적 성과 또한 주목할 만하다. 도서는 판매 부수 120만을 돌파했고, 영화는 국내관객수 365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그의 이름을 지우려했던 억압과 폄훼가 횡행했지만, 끝내 김지영은 살아남았다.

올해의 막둥이 : 유산슬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윤수현을 뒤잇는 트로트계의 막둥이가 등장했다. 송가인이 정통 트로트의 부흥을 이끌었다면, 지난 11월 ‘합정역 5번 출구’로 데뷔한 유산슬은 세미트로트의 신성으로 꼽힌다. 유산슬은 김연자, 진성 등 굵직한 트로트 선배들에게서 발성법부터 무대매너까지 사사한 ‘준비된 신인’으로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다. 일찍이 유산슬의 스타성을 알아본 MBC ‘놀면 뭐하니?’는 데뷔 과정을 담은 ‘뽕포유’를 방송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고, 작곡가 조영수, 작사가 김이나 등이 앨범에 참여하며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홈마’ 팔보채와 모창가수 유산균의 등장은 아이돌과 트로트 가수의 면모를 모두 지닌 유산슬의 인기를 방증한다. 송가인과 유산슬의 합동 디너쇼 추진이 시급하다.

올해의 가사 전달력: 이영지
‘남성 래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래퍼라는 말 앞에 굳이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힙합 신에서 아직까지는 남성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Mnet ‘고등래퍼 3’에서 시리즈 최초의 여성 우승자인 이영지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고등래퍼 3’ 1회에서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등장한 그는 남학생들로부터 “힙합은 넥타이 풀어헤쳐야지” 같은 훈계를 들었지만, 첫 무대에서 탄탄한 발성과 타격감으로 인정을 받으며 힙합은 ‘넥타이’나 ‘뼈해장국’과 무관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고등래퍼 3’ 무대 내내 이영지는 함께 공연하는 참가자들을 압도하는 성량과 발성을 보여줬고, 당시 랩을 시작한 지 반 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1월에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신곡 ‘암실’을 발표하면서 이전보다 더 발전한 딕션은 물론,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을 직접 풀어내는 음악적 철학까지 보여주며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랩을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2002년생이라는 어린 나이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그에게 더 큰 기대를 더욱 걸어볼 만하다. 한국 여성 래퍼 순위는 윤미래, 타샤, T, 조단맘, 타이거JK의 부인으로 이어진다는 농담이 오랫동안 돌았던 힙합 신에서, 올해 이영지의 발견이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

올해의 인터내셔널 : 기생충
지난 5월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부터, ‘기생충’의 국제적인 활약은 예고된 바였다. 국내에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북미에서 약 1934만 달러(12월 8일 기준)의 수익을 거두며 한국영화 최초 2000만 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미국배우조합상에서는 한국 최초이자 외국어 영화 중엔 ‘인생은 아름다워’(1998) 이후 두 번째로 영화부문 캐스팅상 후보가 됐고, 골든글로브에서는 외국어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총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달 27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기생충’이 들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기생충’이 써내려갈 ‘한국 최초’의 역사는 어디까지일 것인가.

올해의 의상 : ‘겨울왕국 2’ 엘사의 바지
2019년은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창립 90주년을 맞은 해이자, 엘사가 ‘겨울왕국 2’에서 바지를 입은 해다. 아이들이 바지를 입은 공주에 대해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게 됐다는 뜻이다. 매체를 통해 성 역할과 고정관념을 학습하고 내재화하는 아이들에게 디즈니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다.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래 디즈니가 그려왔던 여성들은 대부분 공주 혹은 악녀로 이분됐고, 공주는 무조건 치마를 입거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알라딘’의 자스민은 바지를 입었지만 알라딘을 사랑했고,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는 사랑에 빠지진 않았지만 풀과 나무가 무성한 숲속을 탐험하면서도 긴 치마를 고수했다. 그러나 ‘디즈니 프린세스’ 프랜차이즈 밖에 위치한 ‘겨울왕국 2’의 엘사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바지(레깅스)를 입고서 자유롭게 내달린다. 다만, 여전히 남성 캐릭터와 달리 몸매가 부각되는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잘 때도 짙은 화장을 하고 있으며 바지 위에 치마처럼 보이는 의상을 걸친다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치렁치렁한 하늘색 드레스를 걸친 아이들만이 가득했던 5년 전과 달리 하늘색 바지와 치마 중 원하는 의상을 선택해 입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공주와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은 왕자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스탠딩 구역 :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BTS는 올 한해 전세계 스타디움 투어를 하며 수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그리고 마치 그들의 공연을 서서 보던 스탠딩 구역의 팬들처럼 연말 시상식에서 내내 서 있다시피 했다. 새 앨범 타이틀 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음원 서비스 멜론의 서버를 정지 시킨 것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던 그들은 그 결과로 멜론 뮤직 어워드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는 후보로 오른 전부문을 수상했다. 상 받느라 앉아 있을 틈은 없었고, 수상소감은 멤버들이 상마다 돌아가며 했다. 단순한 판매량이나 매출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스웨그라 할 수 있겠다.

올해의 숫자 : 3000
지난 해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는 ‘가망이 없어’와 ‘어머니..’같은 초대형 오역으로 디즈니 코리아가 스스로 재를 뿌렸다. 다행히 올해의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는 오역은 있었을지라도 그만큼 회자되는 대사는 없었고, 대신 ‘3000만큼 사랑해’가 작품을 대표하는 대사가 됐다. 우주의 생명 절반을 두고 싸우던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아빠에 대한 아이의 사랑을 표현한 이 대사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한 것이야말로 마블의 영화들이 지난 세월 동안 이어진 힘 아니었을까.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최초의 영웅들이 떠났다. 물론, 블랙 위도우는 돌아온다!!!!

올해의 XXX : 승리, 정준영을 비롯한 그들
어떤 욕도 그들의 이름보다는 좋은 표현이기 때문에,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일들은 지면에 다시 거론하기도 싫을 정도지만, 두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범죄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인기 남자 연예인들이 ‘단톡방’에 모여서 성폭행을 모의하고 그런 행동들을 자랑하는 것이 마치 남성들의 당연한 습성처럼 여겨지는 사회 문화, 그것을 비호하는 부패한 공권력, 그들을 언제든지 최대한 용서할 준비가 돼 있는 사법 시스템이 낳은 결과다. 그리고 또 하나, MBC ‘나 혼자 산다’는 승리가 성실하게 성공한 사업가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기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올해의 취미 : 넷
흔히 취미로 대기 좋았던 ‘독서와 음악감상’ 대신 넷플릭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즐겨본다”라는 말은 TV나 유튜브에 비해 대외적으로 ‘OTT에 밝고 해외 콘텐츠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실제로 넷플릭스를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일찍이 해외에서는 실질적으로 콘텐츠를 감상하기보다 목록에서 ‘무엇을 볼지’ 고민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용 행태를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이라고 일컫는다. 주변의 추천을 받았거나 유명한 작품을 ‘찜’해놓지만, 시간이 날 때 실제로 감상하는 건 성인물이나 액션물과 같이 자극적이거나 가벼운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타인에게 드러내기에 부끄러운 감상 목록도 존재한다. 국내 온라인상에서는 넷플릭스 시청 기록 삭제 방법을 문의하는 게시물 다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이 어쨌든, 지금은 호감 가는 상대를 집에 초대하고 싶을 때, “라면 먹고 갈래”나 “핸드폰 충전하고 갈래”가 아니라 “같이 넷플릭스 볼래?”라고 말하는, ‘넷플릭스 앤 칠(Netflix and Chill)’의 시대다.

올해의 저평가: 박막례
올해 4월 유튜브 CEO 수잔 보이치키는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2019 구글 I/O’ 행사에서 박막례 할머니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유튜브 CEO와 구글 CEO를 모두 만난 유튜버. 이것이야말로 언론에서 간절하게 찾는 ‘국위선양’이자 ‘한류’가 아닌가. 그런데도, 놀라울 만큼 조용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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