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세의 자리

2017.02.27

59회 그래미 시상식은 아델과 비욘세 덕분에 앞으로도 오래 이야기 될 이벤트다. 많은 이들은 아델이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을 독식한 것을, 혹은 비욘세의 [Lemonade]가 ‘올해의 앨범’이 되지 못한 것을 부당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Lemonade]가 그 존재의 이유와 창작의 의도에 따라 상을 탈 수 없는 존재였고, 그래미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여긴다.

그래미는 공식적으로 인종 문제를 부정했고, 레코딩 아카데미의 1만 4천명 멤버들이 각자 투표한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올해 그래미는 스트리밍으로만 발매된 앨범도 후보가 될 수 있도록 규칙까지 바꿨고, 그 결과로 찬스 더 래퍼는 또 다른 주요 부문인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을 가져갔다. 인종 이슈를 반증하는 사실이다. 이른바 그래미의 ‘주요 부문’이라는 것은 특정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는, 따라서 원칙적으로 인종이 무의미한 4개 부문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것은 차리리 ‘다수결의 비극’에 가깝다. 누군가 단일 인격체가 주요 부문을 결정한다면 일종의 안배나 균형감각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1표가 주어진 결과는 각자의 ‘배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사실 아무래도 좋다. 그래미에 투표하는 멤버 내부의 세대간 격차 만으로도 그래미는 이미 고루한 취향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아델의 압도적인 판매량과 비욘세의 립싱크 무대를 문제 삼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대중적 인지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가수’에 대한 절대적 가중은 한국의 대중음악상만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상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비욘세는 프랭크 오션이 아니다. 프랭크 오션은 애초에 그래미에 등록조차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후보에 오르는 일조차 거부한 셈이 되었다. 그는 ‘후보나 수상작을 선정하는 시스템이 낡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Channel Orange]가 그래미 2개 부문을 수상했던 2013년과 달리, 지금 프랭크 오션은 시스템이 우리는 착취한다면, 나는 그 대신 최대한 받아내겠다고 선언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정말로 더 이상 그래미가 필요 없다.



하지만 비욘세는 훨씬 복잡한 존재다. 그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가장 강력한 여성 솔로 중 하나이고, 이른바 ‘디바’가 사라진 시대의 ‘디바’다. 제이-지와 비욘세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배정 받았다. 그들은 가십과 SNS의 시대 이전, 고전적 의미의 ‘셀러브리티’다. 그들은 프랭크 오션처럼 시스템을 조롱하거나, 카니예 웨스트처럼 천재이자 탕아로 살지 않는다. 제이지는 개별 아티스트로서는 물론이고, 사업가로서 음악산업의 거물이다. 비욘세는 그 제국의 또다른 축이자, 가장 뛰어난 예술가다. 이들은 흑인음악 아티스트로서, 오히려 가장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래서 [Lemonade]가 앨범이자 영상물로서, 그 무엇보다 ‘노래의 모음’이 아니라 완결된 작품으로서 흑인 여성의 삶을 다루고 흑인 문화를 말할수록, 또한, 그것을 오직 ‘타이달’이라는 스스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하여 고집스럽게 발표할수록, 비욘세는 그래미 시상식의 가장 중심에 앉아서 그 결과를 지켜보아야 했다. 세상의 인정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가 ‘어번 컨템포러리 앨범’ 수상소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슈에 직면’하는 일만큼이나, ‘아이들이 가족을 통해, 뉴스에서, 슈퍼볼에서, 올림픽에서, 백악관에서, 또 그래미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긍심이나 자존심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임감을 말하는 사람은 그보다 적다. 비욘세는 그 중 하나이고, 그 책임감은 우아한 방식으로 그래미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일은 인종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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