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녀가 뒤바뀐 일본 사회’

2016.08.26

“이 나라는, 여성들에게 개발도상국이다.” 최근 일본에서 방송된 한 화장품 회사의 광고 카피다. 회의가 끝난 후 남은 커피 잔을 혼자서 치우는 여성, 만삭의 몸으로 사무실 의자에 기대앉은 여성, 다소 어두워 보이는 여성 직장인들의 표정 위로 카피가 이어진다. “제한된 기회, 앞길을 가로막는 불공정. 과거의 상식들은 그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나는 그것이 불편하다.” 일반적인 화장품 광고의 밝고 경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그래서 도전적으로도 느껴지는 이 광고는 지금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서 있는 자리를 보여준다. 

최근 트위터에서 ‘#남녀가 뒤바뀐 일본 사회(#男女逆転した日本社会)’라는 해시태그가 화제였다. “다리가 아파도 남자는 하이힐을 신고 일해”,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할 때는 ‘카베동(벽치기, 여성을 벽에 몰아넣고 한쪽 손으로 박력 있게 벽을 치는 행위)’”, “체지방율이 두 자리인 남자는 돼지”,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발랄해야 해”, “30살이 넘으면 정자가 썩으니까 빨리 아기를 낳아”. 일본 여성들이 일상에서 자신들이 겪어온 여성 혐오와 성차별을 성별을 바꿔 표현한 ‘미러링’이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합리한 사회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담고 있는 이 글들은 일상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대면하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울림을 주었다. 일본어 트윗을 번역해 리트윗하고, 한국의 사례를 함께 이야기하며 지지하고 격려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런데 바다 건너까지 전해진 이 뜨거운 목소리들이 정작 일본 미디어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일본 언론에서 이를 다룬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트위터의 영향력이나 웹 담론의 한계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지금 일본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 못지않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억압,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경제 수준은 물론 문화, 생활수준, 도시환경, 교육 등에서 오랫동안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여성 인권에 있어서는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일례로, 얼마 전 일본에서 여성의 재혼 금지 기간을 6개월에서 100일로 단축하는 내용의 민법이 개정되었다. 한국도 같은 규정이 있었지만 2005년 호주제 폐지와 함께 없어졌다. 일본은 지난해 최고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후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당시 함께 논의되었던 부부 성 통일 규정의 경우, 최고재판소가 합헌으로 판단했다. 일본의 부부 중 90% 이상이 결혼 후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른다. 이는 여성과 자녀를 남성의 관리하에 두는 봉건적 가족제도의 유산으로 비판받아왔다. 2014년에는 도의회에서 연설 중인 여성 의원에게 남성 의원이 “결혼이나 하는 게 낫지 않아? 아이나 낳아라”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의 개방된 성 문화와 성 산업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대상화, 성 상품화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저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만연한 여성 혐오의 사회상과 그것이 작동하는 기제들을 보여준다.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이나 생식을 위해서만 가둬두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비즈니스맨의 보조적 위치에 머무르며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심부름꾼으로서의 OL(Office Lady) 등 한국 사회와 비슷한 모습이 많다. 특히, 연애와 성 시장의 규제 완화로 매력 자본의 불균등에 따라 성적 강자와 성적 양자가 나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남성들이 자신들을 ‘비인기남’으로 정체화하고 여성 혐오를 체득, 실행하는 기제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다. 여성을 성적 객체로서만 인식해온 일본 남성들이 자유화된 성, 연애 시장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맞닥뜨리고 겪는 혼란이 혐오로 전치되는 것이다. 이는 경제활동을 하고 소비의 주체가 되고 성적 자유권을 행사하는 여성들이 ‘김치녀’로 호명되는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를 설명하는 데도 유효하다.

한국은 일본의 10년 전 모습이라는 명제가 오랫동안 익숙했다. 하지만 여성 인권에 있어서만큼은 한국도 일본도 갈 길이 멀다. ‘#남녀가 뒤바뀐 일본 사회’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다양한 여성 혐오의 현장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일본 여성들의 울분이 트위터를 달구었다. 하지만 미디어의 침묵이 보여주듯, 그들이 속한 사회의 온도는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가 여성 혐오를 없는 것, 작은 것, 과장된 것으로 여기고 외면하려 하는 모습과 닮았다. 일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록

SPECIAL

image 반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