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X아이즈] 04. #나의_소녀시대 ①

2016.08.26
2016년 상반기를 지나며 국제앰네스티와 아이즈는 성 평등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고, 8월 한 달에 걸친 공동기획을 통해 여성을 둘러싼 잘못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내고자 합니다. 일상 속 호의를 가장한 차별과 폭력을 향한 #하나도_기쁘지_않습니다, 한국 드라마 속 로맨스의 폭력성에 대한 #더이상_설레지_않습니다,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성의몸_알고_살기에 이은 마지막 주제는 ‘소녀’입니다. 미디어에 범람하는 ‘미소녀’와 ‘아이돌’의 이미지 너머,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십대 여성들은 무엇을 꿈꾸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무엇도 완벽한 답은 될 수 없겠지만,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소녀’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열 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소녀들의, 소녀였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_소녀시대
 

이정민은 2003년생이다. 서울에 살고 있고 올해 중학생이 됐다. 오빠와 언니 아래 막내인 건 별로 안 좋지만, 동생이 없는 대신 반 년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 ‘보리’가 너무너무 귀엽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기대를 엄청 많이 했어요. 그냥 뭔가 달라질 것 같았어요. 급식도 더 맛있을 것 같고, 매점도 학교 안에 있잖아요. 그런데 용돈을 1주일에 5천 원 받으니까 그걸로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매점은 자주 못 갔어요. 사실, 고등학교는 안 가면 좋어요. 수능을 봐야 되잖아요. 지금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데 나중에는 많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정도로 살다가 공부하는 시간 건너뛰고 어른이 되면 좋겠어요. 요즘 제일 심각한 고민은 키가 안 크는 거예요. 원래 175cm가 꿈이었는데 이제 165cm만 돼도 정말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키 큰 친구들은 옷발도 잘 받고 뭔가 멋있어 보여요. 저는 사람들이 초등학생인 줄 아는데 걔네는 딱 보면 중학생같이 생겨가지고. 연애라는 건 하나도 상상이 안 되는데,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요. 일단 제가 키가 좀 크고 중학생 같아지면 고백을 받지 않을까요? ‘소녀’라는 말을 들으면 ‘꽃’이 생각나요. 뭔가 소녀소녀하고 여리여리한 느낌인데 전 딱히 소녀 같지가 않아서, 저를 포함해 제 주변 사람들하고 ‘소녀’라는 이미지가 매치가 안 돼요. 제 장점은 처음에 친구들이랑 잘 친해지는 거예요. 사실 어릴 때는 그냥 막 들이댔는데 요즘은 조금 못 그러겠어요. 너무 나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쟤가 나를 안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먼저 말을 걸어야 친구가 생기는 것 같아요. 10년 뒤에는 당당하고 멋있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자기가 원하는 일 하면서 차 딱 끌고 다니고, 배우로 치면 김혜수 같은 사람요. 그리고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정신과 쪽.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외국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성적이 제일 문제일 것 같아요. 근데 은 크게 갖는 거니까.

김민제는 2001년 강원도 양양에서 나고 자랐다. 짜증 나는 일이 많지만 재밌는 일도 많은 것 같아서 잘 웃는 편이다.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기도 하고, 경찰이 되고 싶을 때도 있고, 생명공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저희 학교는 한 학년이 80명이라 거의 서로 알고 지내요. 공부는 그냥 수업시간에 안 자고 수업 듣는 정도. 올해 2월에 학교 친구들이랑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다녀왔어요. 우리랑 수업방식이 되게 다른데, 발표도 막 손들고 열심히 하고, 선생님이랑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예의 없게 행동하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재밌었어요. 학교에서 치마 입고 뛰어다니면 남자 선생님들이 ‘가끔 민망한 일이 있다’고 하시는데, 1학년 때는 급식을 2, 3학년 다음으로 제일 늦게 먹었거든요. 나중에 먹으면 국이랑 음식이 다 식으까 그나마 덜 식은 거 먹으려면 빨리 뛰어가서 줄 서는 수밖에 없었어요. [인턴]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두 번이나 봤어요. 그, 늙으신 분을 보니까 인생의 경험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고, 앤 해서웨이가 점점 그런 것들을 배워가는 게 되게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소녀’라는 말은 좀 오글거려요. 소녀보단 이 저랑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만약에 쁘게 태어나면 연예인 안 하고 ‘이 동네에서 좀 예쁜 애’ 정도로만 살고 싶어요. 연예인은 항상 웃고 다녀야 되고 사생활 침해도 많아서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엄마는 그냥 공부 못해도 되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아직 정확히 모르겠어요. 저를 믿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지만 제가 그 믿음까지 도달하지 못할까봐 가끔 고민이 돼요. 만약 양양에서 계속 살게 된다면 공부해서 공무원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열심히 살면서 여유를 갖고, 휴식도 취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프랑스랑 미국, 특히 디즈니랜드에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이주희는 2001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진짜로 뭘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고민이다. 언젠가 하와이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을 해보는 게 꿈이다. 무서울 것 같지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내년에 고등학교에 가는데 양양여고에는 이과가 없어서 이과 가려면 버스를 30분 타고 속초로 나가야 해요. 솔직히 수학을 잘하는 건 아닌데, 사람들이 이과 가야 나중에 잘된다고 해서 조금 고민 중이에요. 그런데 ‘남중 애들은 수학 잘한다, 공부 더 잘한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면 좀 싫어요. 여중에도 수학 잘하는 애들 있고, 남중에도 잘하는 애들은 몇 명만 있고 나머지는 비슷한 거 같거든요. 아닌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계속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이랑 지내니까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 들어요. 진로 시간에 다큐 같은 거 보면 나만 너무 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 작으니까 한 명이랑 싸웠을 때 새로운 애들이랑 놀기가 어려워요. 다 아는 사이고 친하니까요. 그래서 누가 싸우면 주위에서 열심히 화해하라고 해요. 길어야 2주 정도 가는데, 다들 금방 푸는 것 같아요. 아이콘이랑 위너를 좋아해요. 작년 10월에 아이콘 콘서트 보려고 서울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버스 출발하기 5분 전에 갑자기 못 간다고 해서 막 울고 난리쳤는데, 엄마가 급하게 준비해서 같이 가주셨어요. 추운데 밖에서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서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소녀’라는 말은 저희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오글거려요.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쓴 김수영 작가처럼 되고 싶어요. 계획을 세워서 다 직접 도전하신 게 멋있어서 속초에 오셨을 때 강연도 보러 갔어요. 저도 그렇게 해야지 생각했는데, 잘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후회를 별로 안 하면서 살고 싶어요. 아직까지 영화 보러 간 적이 없는데 이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전에는 혼자 보러 가면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일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그런 건 아닌데 제가 괜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돼서 독립을 하게 되면, 그냥 혼자인 게 좋을 것 같아요. 밤늦게까지 안 자고.

장하윤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학교에 다닌다. 웬만한 일에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시험에 헷갈리는 문제가 나오면 3번이나 5번으로 찍는다. 

수능이 84일 남았어요. 간호학과에 가고 싶어요. 일단 취직이 보장되니까. 그리고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아요. P.O.S(Power of Science)라는 과학 실험 동아리를 하는데 쥐 해부 실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심장이 막 뛰는 게 불쌍했지만 실험이라고 생각하니까찮아졌어요. ‘소녀’라고 하면 조용하고 차분하고 완전 수줍어야 될 것 같은데 그중에 제가 해당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친구들하고 있을 때의 저는, 좀… 돌아이? 부모님도 좀 엉뚱한 애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장점은 시험 점수가 나빠도 그렇게 신경을 안 쓴다는 거? 오늘 망쳐도 ‘내일은 잘 봐야겠다’, 그리고 또 못 보면 ‘다음에 잘 봐야지’ 생각해요. 어쨌든 수능 끝나면 교정부터 할 거예요. 고등학교 와서 생긴 별명이 ‘앞니마왕’이었거든요. 처음엔 좀 상처받았는데, 나중엔 애들이 이빨로 제 얼굴 기억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참, 이 얘기를 꼭 써주세요. 저희 담임선생님이 3학년 부장이신데 뭔가 침착하신 것 같아요. 급하게 상담부터 하는 것보다 성적이 오르는 게 중요하니까 대학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보고 이야기하자고 하셔서 좋아요. 착하지 않더라도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못된 일이 있을 때 내가 맨날 참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화도 한 번씩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까지 저는 그렇게 잘 못 하겠지만 대학생 되고 나면 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른이 되면 수화를 배우고 싶어요. 병원에는 수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니까 제가 배워놓으면 청각장애인 환자가 오거나 했을 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권효연은 1998년생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안산에서 자랐고 제천에 있는 중고등통합형 대안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맞아 생태환경문화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학년에 스무 명, 다 같이 숙사 생활을 하는데 학교에서 걸어서 한 시간을 나가야 치킨집이 있는 작은 마을이 나와요. 옆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잘 잘 수 있고 아무리 더러워도 별로 상관 안 하는 성격이라 단체생활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중3 때까지 누구도 좋지지 않길래 제가 무성애자인 줄 알았어요. 그 후로 연애를 하게 됐는데, 연애는 내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스타일이고 어떤 형식을 취하는지 계속 돌아보게 만들고, 이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소녀’라는 말은,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안 쓰는 죽은 말 같아요. 평범하게 우리를 지칭한다면 대부분 청소년이라고 할 것 같아요. 진학은 아직 생각이 없어요. 비싼 돈을 들여서 2년 혹은 4년 동안 깊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모르겠어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다니면서 제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농사도 지어보고 싶고 나 혼자를 위한 요리도 해보고 싶어져서, 졸업 후에 그것부터 하나씩 해보려고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는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복지관 네트워크 ‘우리함께’가 생겼어요.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데, 저는 학교 밖에서 배움을 얻는 ‘움직이는 학교’ 과정을 통해서 참여했어요. 저 스스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거든요. 유가족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분들이 겪은 일들에 대해 ‘왜 그렇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고 이제 이 일과 나는 떨어질 수 없게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나 환경의 문제를 봤을 때 돌리지 않고, 대충 아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게 뭔지 직접 당사자들에게 가서 물어보기도 하고 제대로 알려고 하고 뭐라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마음먹은 일은 꾸준히 하고, 무거운 것도 잘 드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 눈을 되게 신경 쓰긴 하는데, 가면서 노래를 엄청 크게 부른다든가 그런 건 잘 할 수 있어요.

▶ 본 캠페인은 국제앰네스티와 [아이즈]가 함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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