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를 봅시다!

2016.08.23
“도대체 언제부터, 어쩌다 여자배구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니까 그때,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다들 그랬듯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경순이도 수업 시간에는 주로 잠을 잤다. 긴 다리와 넓은 어깨를 좁은 책상에 용케도 끼워 맞춘 후, 나보다 깊고 편하게. 도내 단 2개뿐인 여고 배구부의 주전 선수이니 당연하다고 했지만, 배구를 체육책에 나오는 글로만 배운 나로서는 감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청소 당번을 땡땡이치고 체육관에 들어갔다가, 난생처음 배구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와이어 같은 걸 묶고 촬영하는 줄 알았다. 높이도 높이지만 날개 달린 사람처럼 공중에 오래 머무는 점프. 그날 내가 체육관에서 처음 맛본 ‘날카로운 첫 키스’였다. 점프와 스파이크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며, 진정한 전율은 서브를 받을 때(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말 많고 탈 많던 ‘리시브’ 말이다) 찾아온다. 더구나 한쪽만 9미터에 이르는 코트의 먼 안쪽에 여섯 명이 서 있는 그 고요의 순간. 마치 일격을 앞둔 검객들이 부딪힘 하나 없이 눈빛과 바람, 그리고 자기 안의 생각들로 다음의 몇 초를 준비하듯 그야말로 경건한 침묵. 교실에서는 나 못지않은 잠꾸러기 경순이의 눈에, 어깨에, 다리에 그 아름다운 긴장이 서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멋지게 리시브에 성공한 후, 세터의 낮은 토스에 공격수가 속공을 내리꽂은 다음에는 ‘그들의 포옹’ 시간이 찾아온다. 방금 전 외로운 침묵이 언제였냐고 하듯, 큰소리를 내며 서로를 부둥켜안기. 공격 시간이 길어야 1~2분에 불과하지만, 긴장의 침묵을 온전히 함께한 사람끼리만 할 수 있는 위로.

배구의 사랑스러운 점이 어찌 이것뿐이랴. 완전히 망친 한 세트 바로 다음에 곧장 ‘새로운 세트’를 이길 수 있고, 이전 세트의 점수 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게 만드는 룰. 상대가 스파이크로 날아오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정교하게 날아올라야 하는 블로킹. 온몸으로 공격을 막아내는 리베로의 디그. 15득점으로 끝내야 하는 파이널세트의 피 말림까지 다 좋다. 그중에서도 제일 흠모했던 것은 2.24미터의 높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와 몸싸움 한 번 없이 서 있지만, 누구보다 예리한 공격을 준비하는 그 ‘거리 두기’였던 듯하다. 거리 두기를 어기고 네트라도 건드리면 터치네트 파울, 아무리 멋진 공격도 수포로 돌아간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이런 마력에 개안한 자, 터키리그 TV 중계가 없다고 아쉬워하거나 인터넷을 뒤질까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매년 10월부터 3월까지 열리는 프로배구 리그 여자부엔 6개의 팀이 있고, 올림픽에서 보지 못한 강호의 고수들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약속할 수 있다. 배구연맹 홈페이지(www.kovo.co.kr)에서 시즌 전에 미리 팀 이름과 선수 들을 예습할 수도 있고, 지난 리그 경기들의 하이라이트 영상도 볼 수 있다.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이 그러하듯, 여자배구 역시 그늘이 많다. 높고 길어 아름다운 그들의 점프 뒤에는 착지 때 충격으로 인한 발목 부상이 늘 따라다닌다. 이번 올림픽 4강 좌절 이후 많이 이야기된, 남자배구에 비해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나,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여성 대학 팀이 턱없이 부족하여 어린 선수들의 선택 폭이 좁다는 문제도 자주 지적된다. 하지만 언제나 큰 어려움에 많이 아파할수록 더 멋지게 싸우는 법. “왜 남자배구보다 여자배구가 좋냐?”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정도면 어떨까?

김진
변호사 자격증으로 18년째 밥 먹고 사는 40대 여자. 강원도에서 배구팀이 있는 2개 여고 중 한 곳을 나와 그 이후 줄곧 배구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배구공이라고는 중학교 때 피구 하면서 맞아 본 것이 마지막이다. 지금은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배구 중계를 만나 맥주 한 캔 할 수 있으면 감지덕지지만, 곧 다시 인천, 수원, 천안 배구장에서 언니들의 발목을 걱정하는 척하며 내심 더 높은 점프에 목말라 하는 덕력을 되찾을 예정…아니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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