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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생존기계의 전진

2016.08.22
하정우가 영화 [터널]에서 부실공사로 무너진 터널 속에 갇히는 남자 정수를 연기하는 것은, 이제 기시감이 들 만큼 익숙한 모습이다. ‘하정우 생존극’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영화 커리어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테러범의 요구로 목숨을 건 생방송을 해야 했고,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황해]를 거쳐 북한의 첩보요원을 연기한 [베를린]을 통해 액션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쫓기거나 싸우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을 받기도 한다. 하정우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먹방’도 절박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황해]를 통해 화제가 됐다. [터널]에서도 역시 살기 위해 개사료를 먹고, 온갖 노력을 한다.

그러나, 정수는 이전까지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들과 조금은 다르다. 분진을 뒤집어쓰면서도 어쩐지 매끈하고, 무너진 터널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픽 하고 웃게 만드는 여유가 있다. 과거처럼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기는 하지만, 묘하게 처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터널] 전에는 “가격을 보지 않고 포도주를 주문하는 태도”처럼 나름 교양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도둑([아가씨])이 있었고, 제임스 본드가 사용한 권총 PPK를 손에 들고 일제강점기 시절 능숙하게 커피를 마실 줄 아는 신사이자 살인청부업자([암살])를 연기했다. 물론 한 배우의 작품이 하나의 흐름으로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정우는 이제 한국 영화 산업에서 첫 손에 꼽히는 스타가 됐다. 그사이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던 남자의 모습은 맥주 CF에서 흰색 거품 콧수염을 달고 끈적하게 “와우~”를 읊조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었고, 실제의 하정우는 전시회를 여는 화가이기도 하다. 생존본능밖에 없었던 마초가 조금씩 자신의 취향과 유머를 알린다. 그리고 [터널]의 하정우는 여전히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되, 과거처럼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대신 유머와 이성을 갖고 극의 호흡을 조율한다. 그는 꾸준히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작품이 쌓일수록 조금씩 자신의 현재에 어울리는 모습들을 함께 보여준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소처럼’ 일하는 하정우의 방식이 도달한 결과다. 그는 영화 100편을 찍는 것을 목표로 2002년 데뷔 후 지금까지 40여 편을 찍었을 만큼 쉬지 않고 일했고, 그 결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꿈꿨던 삶, 목표했던 삶이 그대로 이뤄졌”([보그])다. [베를린]과 [더 테러 라이브] 사이의 슬럼프도 결국 계속 일을 하며 이겨냈고,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영화 연출을 하기도 했다. 급격한 변화를 보여줄 만큼의 공백기를 가진 적도 없었다. 대신 끊임없이 일하며 15년이 흘렀고, 돌아보니 출발점과는 매우 다른 배우가 됐다.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살아남다 보니 무언가 이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갈 길이 있다. 계속 살아남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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