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내 일상 자체가 여러 사회 문제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2016.08.03
이랑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만든다. 열두 명의 다른 뮤지션들과 ‘신곡의 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열두 곡의 노래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2집 앨범 [신의 놀이]를 통해 죽음의 공포와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털어놓았다. 친구들과 웹드라마 [주예수와 함께], [집단과 지성] 등을 만드는가 하면 네이버 TV 캐스트에서 방영 중인 [게임회사 여직원들]의 에피소드 몇 개를 연출하고 각본을 쓰기도 했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랑은 ‘신의 놀이’의 가사처럼 정말로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 걸까?

CD 없이 책과 음원 다운로드 코드로만 앨범을 만들었다.
이랑
: 앨범을 소모임음반에서 제작했는데, 사장님이 밴드 선결 멤버다. 지난번 선결 앨범을 내면서 패키지에 엄청 공을 들였는데 요즘은 CD 드라이브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하더라. ‘이렇게 공을 들여서 CD로 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CD 없이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평소에 일기를 포함해 글을 많이 써두는 편이라 만든 곡들에 관한 메모도 가지고 있었거든. 두꺼운 가사집이 되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두툼하게 나와서 결국에는 책이 됐다.

사적인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준다는 데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이랑
: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 음악을 설명할 수 있어서 더 좋았지. 예를 들면 ‘웃어, 유머에’ 같은 노래는 가사가 웃음소리밖에 없는데, 책을 보면 어떤 생각으로 만든 곡인지 훨씬 잘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재미있으려고 어떤 글을 쓴다기보다 솔직하려고 하는 편이라 ‘이 얘기는 하지 말아야 겠다’ 그런 건 별로 없다. 이 책을 냈을 때도 너 엄청 솔직하다, 그래서 자극적일 정도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딱히 그런 걸 못 느낀다.

만든 의도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듣는 사람이 알아서 상상해주길 바라는 뮤지션들도 많으니까.
이랑
: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오픈하고 싶은 생각이 많다.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음악을 만들었던 ‘신곡의 방’이라는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나 자신이 과정을 궁금해하지, 다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데 재미를 딱히 못 느끼는 타입이기도 하고. 음악이든 영화든 소비하는 사람들은 과정을 유추하기가 어렵고, ‘나도 생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막상 해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거다. 때문에 ‘신곡의 방’을 통해 음악을 만드는 방법에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하면서 중간에 막히고 안 될 때도 있고, 하지만 결국 이렇게 저렇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까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이렇게 대강대강 해도 어떻게 완성이 되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최근 트위터에서 페리스코프로 [신의 놀이] 전곡의 기타 코드를 알려준 것도 그 때문이었나.
이랑
: 맞다. 코드를 하나도 몰라서 “이거 이거 짚으면 돼요” 하면 보는 분들이 알아서 막 쳐주더라. (웃음) 미디액트에서 작곡 수업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지만 알려주면 기타를 하나도 못 치던 사람조차 8주 후에는 다 자기가 자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냥 되는 거다. 무언가를 꼭 만들어서 세상에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엄청 많다. 나 역시도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해 처음부터 음악을 만든 게 아니고 나 재밌자고 한 거였거든. 사람들도 집에서 TV를 보는 대신 본인이 무언가를 만들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에게 창작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이랑
: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성인들까지 가르치면서 되게 슬펐다. 초등학생들은 화성학이나 코드 같은 걸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음 하나만 쳐주면 저절로 다 만든다. 너무너무 재미있게.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음악적인 재능을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건 다들 그 재능을 잃어버렸다는 거였다. 어릴 때는 분명 있었는데. 기타학원에 좀 다니다가 코드 외우는 게 빡세서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코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소리가 나는지, 이게 괜찮은지 아닌지만 판단할 수 있으면 곡을 바로 만들 수 있는 건데. 코드도 모르고 화성학도 모르는데 음악을 왜 해? 데생도 안 배워놓고 그림을 왜 그려? 그런 시선들이 갖고 태어난 재능을 꺼내보지도 못하게 사람을 약화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재능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 예쁘고 안쓰러워서 막 도와주려고 한다. 이 이후에 음악을 더 만들든 아니든 인생에서 자기 곡 하나를 가진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거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랑
: 상상마당에서 영화 연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인터뷰를 해보면 다들 대답이 짧다. 저 그냥 사는데요, 학생인데요. 본인들은 맨날 사는 일상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을 할 줄 모르는 거다. “제 얘기는 할 게 없어요. 나중에 잘하게 되면 그때 제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도 하고. 그런데 세세하게 캐물어보면 각자 굉장히 다양하게 살아온 거다. 그들 스스로도 놀라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평범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되게 신기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누구나 노래와 영화를 만들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수다 떠는 게 아니라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좋은 일인 거지.

그만큼 성인이 창작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본인은 어떻게 영화와 음악, 만화, 글 같은 창작물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나.
이랑
: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존재증명을 엄청 하고 싶어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보니 (웃음) 내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술 먹으면서 하거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쓰거나 하면 흩어져서 사라져버리잖아. 그게 소모적이라고 느꼈다. 그림이나 노래로 기록해놓으면 나 자신에게도 정리가 많이 된다. 남한테 보여주기도 쉽고. ‘나를 위로하려고 노래를 만들었다’고 얘기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듣고 위로받았다고 할 때가 제일 기쁘다. 내가 이 이야기를 말로 했을 때보다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이 훨씬 더 잘 들어준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예를 들자면 어떤 경우일까.
이랑
: 얼마 전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전에 1시간 넘게 자유발언대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 자체는 좋은데 목소리나 발음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말’이라는 형식이니까. 노래를 부르기 전에 나도 멘트를 해야 해서 “사실 저는 여성혐오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고, 꺼내다 보면 여기서 울고불고 할 것 같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노래만 부르겠습니다” 하고 바로 공연을 시작했는데 관객들이 잘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신의 놀이’는 첫 가사부터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라서 그런지 공감한다거나 여성혐오 이슈와 연관시켜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 반응들을 보고 좀 놀랐다.

왜?
이랑
: 나는 그냥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걸로 노래를 하고 있는 건데, 듣는 사람들이 그런 이슈들과 연결해서 받아들여주니까. 놀라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 내가 살면서 겪은 것들에 대한 얘기이지만 내가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그 때문에 받은 혐오나 폭력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혹시 누군가 ‘당신 작품은 시사적이네요’라고 비판한다면, 그 사람이 문제라고 본다. 내 일상 자체가 여러 사회 문제 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일상 역시 시사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예를 들어 혐오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나는 그거 안 들려. 나는 예쁜 것만 그릴 거야’라는 생각으로 원피스를 그린다고 해도 어째서 이렇게 싼 가격에 팔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는지 등등 전부 시사적인 일인데. 이런 사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화내지 않고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지금은 “무슨 헛소리를 해?” 하고 화나는 게 먼저지만. (웃음)

1집 [욘욘슨]을 낼 때와 지금의 본인을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있을까.
이랑
: 살면서 트라우마가 점점 늘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1집 때만 해도 가족에게서 겪은 트라우마와 연애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일들 위주로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돈을 버는 문제나 어쩔 수 없이 내가 치이게 되는 사회 구조,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모든 산업, 여성혐오, 소수자 혐오, 폭력까지 트라우마가 자꾸자꾸 추가됐다. 왜 이렇게 괴롭지? 왜 더 괴로워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가장 큰 건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다. 누가 아프거나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나나 친구들을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구나 싶다.

[신의 놀이] 책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나, 즐겁게 사는 나름의 방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더라.
이랑
: 웃긴 일을 일부러라도 만들어서 자꾸 웃으려고 한다거나, 친구들과 작업을 많이 하려고 한다. 그게 나한테는 힘이 된다. 그런데 정말 잘하는 친구가 회사에 들어가서 여유 시간이 하나도 없어지는 바람에 같이 작업을 못 하게 되거나, 혹은 죽어서 사라지거나 할 때는 많이 힘들지. 그래도 같이할 사람을 계속 찾는 거다. 누군가를 찾는 것도 힘들고, 그들과 계속해서 같이 해나가는 것도 힘들지만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일단은 좋은 친구들과 무엇이든 하려고 하고 있다.

웹드라마 [집단과 지성]도 지인들과 만든 것 아닌가.
이랑
: 그 전에 [주예수와 함께]라는 짧은 웹드라마를 만들다가 제작비가 떨어져서 그만뒀는데 (웃음) [집단과 지성]도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거다. 대본만 한 2년 쓰고, 촬영은 작년 여름에 다 했는데 촬영 때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편집을 못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고 도와준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예고편만 만들어서 공개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봐도 쉽게 안 풀려서 계속 고민 중이다.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게이혐오 이슈 같은 내용이 많은데, 이런 이야기는 큰 제작사의 투자를 받아서는 할 수가 없거든.

하지만 한편으로는 [게임회사 여직원들]처럼 범대중적인 플랫폼에 공개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기도 한데.
이랑
: ‘전체관람가’라는 한계가 있으니까 물론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 제약에 실망할 때도 많지만, 일단은 거기에 맞춰서 쓰는 것도 나 스스로 트레이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게임회사 여직원들]은 웹툰 기반이지만 캐릭터만 가져오고 에피소드는 새로 쓴 거다. 이미 만화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가져가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나도 뭔가 하는 것 같으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하는 사람이라, 상업적 제약이 큰 작업에서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이랑
: 정말로 ‘일’이긴 하지만 좋은 점도 많다. 거기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스태프로 모이기 때문에 정말 진행이 잘 된다. 그럴 때 희열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내 개인 돈으로는 일을 할 수 없는 촬영감독님이나 편집기사님, 음향기사님 등등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최근 기사님이 해놓으신 걸 확인하러 믹싱실에 갔는데 백 퍼센트 이상을 해놓으셔서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고 그냥 감상만 하다 왔다. 그때 너무 감동해서 “저 살아 있길 잘한 것 같아요. 살아 있어서 기사님이랑 일도 해보고”라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또 함께하고 싶고, 기사님이 내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친구가 되기에는 연배가 약간 있으시지만. (웃음)

그럼 앞으로는 영상 작업에 집중할 예정인가. [신의 놀이]에 “마지막 앨범”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랑
: 아, 그건 정정해야 한다. 딱히 ‘여기서 음악은 끝. 이제 다른 걸 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아니고, 앞으로 영상 쪽 일도 계속 하고 다른 작업도 하고 싶어서 “나도 음악은 앞으로 할지 안 할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이 그 말에 집중하는 걸 보면서 ‘아… 어떡하지?’ 하고 있었다. (웃음) 사실은 앞으로 뭐가 나올지 잘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내가 뭐가 될지 나도 잘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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