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기자│① “‘가만한 당신’은 넌지시 말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16.07.15
낯선 이름, 그러나 읽고 나면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생에 대한 이야기.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연재 기획 ‘가만한 당신’이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외신 부고를 바탕으로 “떠난 자리에 잔물결도 일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을 편파적으로 주목”하는 이 코너에서는 지난 2년여 동안 100여 명의 ‘가만한’ 이들이 소개되었고, 수많은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기사들이 개별적 가치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매주 토요일마다 가만히 세상을,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글을 전해주었다. 몇 해 전에 쓴 인터뷰 기사에서 “구경꾼이, 어떤 이의 ‘먹고사는 일’의 대차대조표를 들춰보자고 덤비는 건 아무래도 무례한 짓이다”라고 무람해했던 최윤필 기자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굳이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2014년 4월 12일에 ‘가만한 당신’의 연재가 시작됐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됐나. 
최윤필
: 그냥 넌지시 말할 수 있는 형식을 생각했다. 무언가에 대해 삿대질하듯 말하지 않고 에둘러 얘기할 때 필요한 어조. 그리고 전부터 짬날 때마다 외신 부고를 읽는 게 취미였다. 잘 쓴 부고는 길지 않아도 소설 한 권 읽은 것처럼 벅찬 느낌이 있고, 읽고 나면 며칠씩 맴도는 이야기도 있어 아까웠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신문에는 실리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그 두 가지를 겹쳐서 쓰게 됐다. 

A4 용지로 꽉 채워 3매, 6천 자 내외의 원고는 일간지 지면에서는 드물게 긴 분량이다. 
최윤필
: 질이 안 되니 양으로라도 승부해야 된다고 했다. (웃음)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뉴미디어 시대에 맞는 짧은 글에 대한 얘기를 많이들 한다. 내 기사에 언급된 내용 역시 아포리즘처럼 한두 문장 떼서 얘기하더라도 그럴싸해 보일 수 있겠지만, 맥락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 여기서 맥락이라는 건, 우리와 멀리 떨어진 대서양이나 태평양 건너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사회와도 동떨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가능하다면 그 맥락의 맥락까지도 200자 원고지 30매 안에서 써보고 싶었다.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 이전에, 내가 좀 궁금했다.

지금까지 연재된 내용 중 3분의 1가량의 인물이 단행본에 실렸다. 기준이 있을까. 
최윤필
: 대부분 출판사에서 골랐다. 막연히 느끼기에, 지금 한국 사회의 현안과 닿아 있는 사람들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다만 에버렛 라마 브리지스(1927~2015. 미국의 프로야구선수)처럼 내가 좋아하니까 넣어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두어 명 있다. 

브리지스가 실린 장의 제목이 ‘벤치의 익살꾼’인데,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좋았나. 
최윤필
: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고, 사람들이 재밌게 살아도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비 오는 주말에 서울광장 나와서 데모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TV 보고 있다 해서 죄책감 느끼는 세상은 아니어야 한다. 물론 브리지스와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며 중요한 싸움을 했던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광장에서 싸운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에게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게는 그가 멋있어 보였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할 거다. 일단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내가 행복할 것 같다.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최윤필
: 내가 감히 안다고도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감당하고,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삶을 살았던 분들이 있다. 스텔라 영(1982~2014. 호주의 방송인 겸 칼럼니스트)의 경우, 장애를 떠나 삶에 대한 긍정이나 당당함이 인상에 남았다. 하지만 그분들에 대해 중요한 건 특정한 고유명사는 아닐 것 같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과 갈등을 겪었던 사회까지 같이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단행본에 실린 서른다섯 명 중 여성이 열네 명이고,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최윤필
: 외신의 부고란을 보면 7 대 3이나 8 대 2 정도 비율로 남성이 많고, 여성이 활약할 수 있었던 분야는 지극히 좁다. 일단 군인 같은 경우는 드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글로 쓸 만한 여성이 있으면 일단 후보에 넣었다. 이를테면 메리 도일 키프(1922~2015. 노먼 록웰의 그림 [리벳공 로시]의 모델) 같은 경우 그 개인의 삶은 평범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여성 노동력의 급격한 사회화가 맞물려 격렬했던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본인의 바람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우연히 소비되었던 여성의 이미지라는 면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썼다. 사실 페미니즘은 내가 취약한 분야인데, 글을 쓰기 위해 읽고 공부하면서 많이 배우게 됐다.

어떻게 매주 다른 시대, 다른 지역, 다른 분야에 있었던 사람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다 수집해 읽고 소화하는지 궁금하다. 
최윤필
: 아는 게 없다 보니 나름대로 고생을 하는 편이다.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이든 개인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고, 먹고사는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찾다 보면 얽히고 얽힌 이야기들을 조금씩 따라가게 된다. 인터넷이 고마운 게, 검색하면 거의 나온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없는 원서들도 구글에서 어느 정도 볼 수 있고, 영어 잘하는 주위 친구들에게 묻기도 한다. 스페인어나 다른 외국어의 경우 번역기 돌려 영어로 바꿔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막막하기도 하다.

한 주 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최윤필
: ‘가만한 당신’이 실리는 건 토요일이지만 수요일에 원고를 넘기고 금요일에 최종 교정을 본다. 매주 하루 이틀은 마음에 드는 사람 서너 명의 자료를 뽑아 보고 그중 한 명을 선정한다. 공적으로 훌륭한 삶이었다 해도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착취 위에 살았던 분들의 경우는 쓰면서 잘 이입이 안 되기 때문에 배제하는 편이고, 어떤 식으로든 이미 기억되는 사람들은 가급적 피하려 했다. 그렇게 인물을 고른 다음 하루 내지 이틀 정도 자료를 찾고 살을 붙인 뒤 글을 쓴다. 어떤 사람은 이삼일 만에 쓰기도 하고, 2주씩 걸려 어렵게 쓰게 되는 사람도 있다. 올빼미 형이라 종종 밤을 새운다.

테드 휴즈의 누나이자 실비아 플라스의 올케였던 올윈 휴즈(1928~2016)처럼 흥미롭지만 호감이 가지는 않는 인물이나, 이엥 티릿(1932~2015.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인물)처럼 역사 속의 악인도 소개했던 게 흥미롭다. 
최윤필
: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한 사람들만 계속 쓰다 보면 지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딘 포터(1972~2015. 미국의 익스트림 클라이머)처럼 밧줄 타는 사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올윈 휴즈에 대해 쓸 무렵에도 마땅히 다른 사람이 없었고, 그 사람의 동생에 대한 집착이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엥 티릿 같은 경우는 한국의 현 정권을 염두에 두고 쓰려 했던 것 같다. 

제이 애덤스(1961~2014. 미국의 스케이트 보더)처럼 성공담이나 감동적인 인간승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꼭 위대한 삶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윤필
: 내가 못된 성질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멋대로 살던 사람이 만년에 스포츠용품 회사 후원을 받았다거나 하는 얘기를 쓸 때 좀 통쾌하기도 했다. 위인전처럼 쓰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아무리 멋있는 사람도 들여다보면 적당히 ‘찌질한’ 데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찌질함이 절대 조롱받지 않아야 된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가끔, 의도하지 않은 반전이 있을 때 그 내용을 빼고 싶은 순간도 있다. ‘이거 그림이 예쁘게 가고 있는데 먹물이 튀네?’ 싶은 기분, 이 사람의 일관되지 않은 삶을 내가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그럴 때 골머리를 썩고, 솔직히 말하면 뺀 게 있을 수도 있는데 가급적이면 빼지 않고 쓰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더 좋다.

자살, 존엄사, 죽을 권리 등의 주제에 천착했던 인물들을 다수 다루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최윤필
: 개인적인 희망 때문이다. 서구에 비해 우리 사회는 국가가 과도하게 개인의 삶에 개입한다. 한국은 오랫동안 집단사회, 유교사회였기 때문에 일부 선구적인 분들을 제외하면 개인주의,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 건 1980년대 이후부터다. 그런 가치들을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고, 그래서 존엄사나 마리화나처럼 한국사회에서 극단적인 것으로 인식되거나 당장 넘어서기 힘든 이슈와 관련된 사람들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 인터뷰 2. “세상이 좀 나아져야 내 멋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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