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기자│② “세상이 좀 나아져야 내 멋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2016.07.15
혹시 최근에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있나. 
최윤필
: 얼마 전 어딘가의 재난현장에서 구조견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봤는데, 그 개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 사역견들은 인간에 의해 전 생애를 강도 높게 착취당하는데, 우리는 그 존재의 희생을 미화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대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이라는 게 위선 없이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쉽게 얘기하고 분노하지만, 그러면서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싼 물건을 찾아 사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야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피할 수 있겠나. 다만 우리가 그 착취 구조를 지탱하는 삶을 살고 있고, 그 삶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계속 착취하며 살아서도 안 된다는 얘기를, 개 이야기를 통해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듣고는 너무 나간 것 같다고 하더라. (웃음)

사람이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딜레마가 있는데, 한국은 그것을 점점 지우려 하는 사회인 것 같다.
최윤필
: 딜레마라는 걸 아예 모르게, 생각하지 않게 해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괜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있는 삶을 긍정하자고, 다들 똑같은 놈들인데 괜히 위선 떨지 말라고 하다 보면 정말 거꾸로 가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딜레마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장을 조금씩 넓혀 나가도록 노력하고, 스스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장이 만들어졌을 때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조롱의 의미로 ‘트위터 세상’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없던 시절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들이 언제까지나 안에만 갇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절망하다가도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좀 낙관적이 되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쓰다 보면, 이 사람의 말이나 생각을 지금 조금만 더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최윤필
: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내가 외국어를 잘 못 하니까 기회를 줘도 못 할 테고. (웃음) 사실은 안 그럴 때가 더 많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절대적 거리가 생긴 거고, 그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부분도 더러 있다. ‘가만한 당신’ 초반에 한국인들에 대해 쓰다가 결국 쓰지 않게 된 이유도 거리 두기와, 부족하거나 제한적인 자료의 문제였다. 가까이 있지만 오히려 더 빈곤한 상황, 그래서 한국인에 대해 쓰려면 시간적 거리를 한 10년 정도 둬야 할 것 같다. 

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인물의 경우, 그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자료의 대부분이 영미권에 남아 있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최윤필
: 그렇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좀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언론에서는 ‘뉴스’로서 대개 그 사람의 업적이나 현안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삶에 대해 길게 쓰는 인터뷰들이 필요한 것 같다. 외국에서는 누군가에 대해 머지않아 부고를 써야 할 것 같으면 일부러 계기를 만들어 인터뷰를 해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사람이 떠나면 그에 대한 1년, 2년, 3년 전의 깨알 같은 인터뷰들이 남아 있다. 그런 자료들을 통해 크로스 체킹도 하고, 매체 간 인용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그런 식의 작은 평전들이 만들어지다 보면 또 좀 더 알찬 평전이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 

그런 인터뷰가 드문 건 현재적 효용이 없다고 여겨서일까?
최윤필
: 여유가 없어서인 것 같다. 내 기사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 중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듣도 보도 못한 외국 놈 이야기를 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일주일에 신문이 200페이지 정도 만들어지고 그중 광고가 절반이라 해도, 나머지 100페이지에서 왜 1페이지도 빠짐없이 전부 우리나라 얘기, 지금 눈앞의 얘기만 해야 할까. 물론 다급하고 절박하게 들어야 하고,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틀림없이 있다. 하지만 한 귀퉁이에서는 당장 우리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들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신문마다 기사들도 다양화,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명남 번역가와의 대담에서 “5년 뒤, 10년 뒤에 부고의 주인공이 될 분들을 미리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 부고를 쓸 때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인가. 
최윤필
: 자신 있는 일은 아니다. 나보다 더 나은 분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그러나 어쨌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려대 고세훈 교수님이 집필하신 [영국노동당사] 서문에 보면 바바라 카슬이라는 분이 “정치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테면 전두환 같은 사람이 자서전을 쓴다고 했을 때 온갖 헛소리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기록이 남는 건 좋은 일이다. 신문도 쓰고 학자들도 그 사람에 대해 논문을 쓴다면 결국 그런 것들이 이후의 연구를 위한 로우 데이터가 될 수 있다. ‘가만한 당신’의 첫 번째 인물이었던 토니 벤(1925~2014. 영국의 좌파 정치인)은 자신의 활동에 대한 일기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썼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자신에 대해 거짓과 사기로 치장한 기록들을 남기더라도 그런 것들이 쌓이고, 드러나고, 또 연구를 통해 크로스 체크되고 비판받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정치인들의 자서전이나 평전도 좀 더 건강해질 것 같다. 주위의 많은 유능한 후배들이 그런 인터뷰를 해주면 좋겠고, 매체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그런 기회를 줌으로써 차별화된 지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명남 번역가는 ‘가만한 당신’의 주인공들에 대해 “근대적 가치에 하나씩 돌을 놓았던 분들”이라 표현했는데, 그 여럿의 돌 가운데 무엇에 특히 마음이 끌리는 편인가.
최윤필
: 정말 하나만을 얘기할 수 없고, 그 가치들이 칼로 자르듯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지금 한국에서는 정의라는 가치가 가장 첨예한 문제일 거다. 당장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분이 계시지 않나.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정의의 문제는 법만 지켜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법을 지키는 건 기본적인 룰이지 가치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자유라는 가치에 끌린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 지금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얘기하는데 무슨 동성애 얘기, 마리화나 얘기냐, 그것도 신문에서, 미친놈 아니냐고.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아직 제대로 합의되지 못하고 취약한 가치는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죄스럽지 않은, 자연스럽고 당당할 수 있는 사회여야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지난 인터뷰집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에서 중심에 있지 않은 사람, 사물, 풍경을 놓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 
최윤필
: 정말 제멋대로, 죽는 방식도 스스로 선택해서 자유롭게 죽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자로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인데, 각자가 죄책감 없이, 사회적 부채의식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건 역설적으로 지금 많은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얘기일 것 같다.
최윤필
: 죄책감 없는 삶이란 건 없을 거다. 책의 자기소개에 “국적·지역·성·젠더·학력 차별의 양지에서 살았다”고 쓴 것처럼, 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나 사는 혜택을 비롯해 차별의 갈림길마다 늘 운 좋게 상위에 놓인 삶을 살아왔다. 그 속에서 나는 떳떳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들이 밤에 택시를 탔을 때 느끼는 현실적 차원에서의 공포, 일상에서 가해지는 시선 폭력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동안 노력 없이 누리고 산 것들이 있고, 내 죄책감은 아마 거기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래서 어쨌든 세상이 좀 나아져야 내 멋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이 있다.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 기대하나, 아니면 기대하지 않더라도 그걸 향해 가는 건가. 
최윤필
: “못마땅한 게 있을 때 툴툴대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고 죄의식을 느끼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트위터에서라도 얘기하고 거기에 공감하는 것들이 희망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꿈꾸는 세상이 구현될지 안 될지 모르고 솔직히 힘들 거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 인터뷰 1. “‘가만한 당신’은 넌지시 말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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