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파드│② “사랑, 정의, 솔직히 너희도 좋잖아”

2016.07.08
[무한도전] 출연이 본인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가스파드
: 그건 기대 안 한다. 나는 아직 두 작품밖에 하진 않았지만 [전자오락수호대]를 어떤 사람이 좋아하고 어떤 사람이 안 좋아하는 지는 알겠다. [무한도전] 때문에 누군가 [전자오락수호대]를 보러 올 수는 있지만 계속 볼 거 같진 않다.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적어도 방송 때문에 연재에 소홀한 티는 안 났으면 좋겠다는 거다.

하지만 당장 지금도 쉬는 날 없이 작업만 하는 스케줄인 걸로 알고 있다.
가스파드
: 확실히 작화는 [전자오락수호대]가 [선천적 얼간이들]보다 힘들다. 펜선으로 그린 뒤에 색칠을 하는 게 아니라 색면으로 도트처럼 보이게 그려 넣는다. 연출이나 효과도 좀 더 다양하게 넣으려 하고.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연재하면서 그림 퀄리티가 초반보다 올라갔다. 처음엔 주인공 패치가 너무 못생겼더라. 그러다 그림체가 익숙해지면서 무의식 중에 남는 시간에 퀄리티를 올리게 됐는데, 지금은 이게 기본값이 되어버려서 그걸 유지하기 힘들다.

‘올인’하는 것도 프로답지만, 반대로 어느 정도의 퀄리티만 유지하면서 스케줄을 관리하고 체력을 안배하는 것도 프로다운 것일 수 있다.
가스파드
: 그게 매주의 목표다. 아직 이런 말 할 나이는 아니지만 이젠 한 해 한 해 몸의 반응이 다르다. 전엔 감기 걸리면 코 풀고 그냥 작업했는데 이젠 컴퓨터 앞에 못 앉겠더라. 분명 이렇게 가다간 내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까지 가지 못할 거다. 꿈이 행복하게 오래 사는 건데, 적어도 오래는 못 살겠지 싶으니까. 작가로서 당연히 자기 작품이 더 재밌었으면 좋겠고 준비된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면 좋겠는데, 그걸 해내면서 스스로를 관리할 만큼의 능력이 아직 안 되는 것 같다. 

스토리에서도 용사의 모험과 패치의 복수를 디테일하게 그려내는데, 민감한 얘기지만 요즘 독자들이 원하는 진행 속도보단 좀 느리다.
가스파드
: 사람들이 스피디한 전개를 좋아하는 건 아는데, 선택의 문제 같다. [선천적 얼간이들]이 사건 위주의 전개 방식이라면, [전자오락수호대]는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안에서 각 인물이 어떻게 각기 다른 반응을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같은 상황에서도 패치의 반응과 퍼블리의 반응이 다른 거지. 거기에서 이야기의 당위성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 사건 위주로 스피디하게 전개한다면 당장은 속 시원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전체적인 이야기의 두께가 얄팍해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군더더기니까 쳐내고, 저것도 군더더기니까 쳐내다 보면 오히려 별 특색 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그렇다. 빠르게 주인공이 성장하는 방식도 있지만 그보단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다. 가령 약초마을 에피소드에서 공격력이 약한 용사가 무식하게 물약을 잔뜩 마시며 공격을 견뎌내고 미션을 완수하는 것처럼. 고전 게임이라는 세계관이 좋은 게, 어떤 게임인지 다 알지만 그 안에 개발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각이 있을 수 있다. 그걸 노려서 사건을 끝내주면 독자들도 연재 속도가 느린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까지 작품 속 용사가 경험하는 작은 하나하나의 과정을 그려내는 이유가 뭘까.
가스파드
: 지금 용사가 본인이 주인공인 게임인 [용검전설]이 아닌 다른 게임을 헤매고 있지만, 자기 기준에서는 보스인 흑룡을 잡으러 가는 거 아닌가. 패치의 원래 스타일로 신속하게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사소해 보이는 사건 하나하나에서 용사가 의미를 찾고 소중한 가치를 증명해나가는 것이다. 우정, 정의, 사랑, 이런 가치들을. 작품을 그리면서도 이건 조금 오글거리는 거 같으면 스스로 ‘아니거든! 이거 되게 멋있는 거거든!’ 이러면서 그린다. 

만화라는 게 그런 걸 해도 용납되는 매체 같다.
가스파드
: 이렇게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만화는 조금 유치해도 되는 매체 같다. 쿨하게 말하는 게 멋있어 보이는 시대지만 그래도 만화에선 오글거리는 게 어느 정도 용납되는 게 있다. 가령 만화에서 감동적이었던 명대사를 실사화한 영화에서 배우가 말할 때 ‘하지 마!’ 하게 되지 않나. 그런 이질감과 갭이 어떤 면에선 만화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강점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런 가치를 지금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유가 있나.
가스파드
: 요즘처럼 효율성을 중시하는 세상에 따뜻하고 바른 이야기를 해주는 만화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그냥 멋 부린 대답 같고, 솔직히 말하면 [선천적 얼간이들] 때와 비슷하다. 내가 경험했던 어떤 사건이 재밌어서 그걸 남에게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고 싶었던 것처럼, 내가 좋아했던 정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고전 게임 하는 것도 좋아했고 전통적인 소년만화를 눈물 뚝뚝 흘리며 본 적도 있다. 그땐 그게 유행이라 그런 작품이 많았지만 이젠 많지 않다. 있어도 촌스럽다는 평가를 듣기 쉽고. 하지만 나로선 지금 봐도 그런 게 너무 좋으니, 남들에게도 보여주고 공감받고 싶은 거다. 사랑, 정의, 솔직히 너희도 좋잖아, 이러면서. 

결국 설득의 문제일까.
가스파드
: 노력하지만 부족할 수 있다. 다른 만화 하라는 댓글이 달릴 수도 있고. 그럼에도 이야기의 정서를 바꾸지 않고 밀고 나가는 건, 혹 누군가 재미없다고 느끼더라도 그건 내 설득력이 부족한 거지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잘못됐거나 재미없는 건 아니라고 믿어서다. 내가 표현을 잘 못 해서 그런 거지, 이거 재밌는 거 맞아. 그게 굽히지 않을 수 있는 뿌리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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