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유니버스]가 주는 행복

2016.06.10
강남역 사건 이후, 한 지인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 보기 불편해졌다”며 그렇지 않은 작품을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그때 망설임 없이 “카툰 네트워크의 [스티븐 유니버스]를 보세요”라고 답했다. 이를테면 몇몇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판치라(팬티의 일부가 살짝 보이는 장면을 의미)가 하나의 속성으로 자리 잡았을 만큼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이 자주 보인다. 또한 여성 캐릭터들은 큰 눈에 마른 몸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작품들을 보고 좋아하면서도 미묘하게 찜찜했던 이유다. 그러나 [스티븐 유니버스]는 오랜만에 보면서 오롯이 좋은 감정만을 간직할 수 있었다.

주인공 스티븐과 크리스탈 젬으로 불리는 펄, 가넷, 애머티스트가 외계에서 온 다른 젬들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는 이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로 묘사되는 크리스탈 젬은 각자 다른 외모를 가졌다. 바짝 마른 펄, 근육질인 가넷, 오동포동한 애머티스트, 240cm가 넘는 키에 글래머러스한 로즈, 동양계 혼혈인 코니 등 이들의 외모는 각자 개성이 살아 있다. 저마다 다른 개성의 외모는 [스티븐 유니버스]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로즈를 사랑하게 된 스티븐의 아버지 그렉은 누군가에게 “(네가 록스타가 된다면) 그 큰 여자를 대신해 작은 여자들 여럿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듣자 그렉은 “여자도 사람이야”라고 대답한다. 또한 외계 젬인 페리도트는 펄에게 “펄은 그냥 옆에서 예쁘게 서 있다가 물건을 들어주거나, 명령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며 펄의 타고난 신분을 모욕하지만, 후에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나도 이해하고 싶다. 미안해”라며 사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를 보여준다. 아이가 신비로운 존재와 함께 지구를 지켜낸다는 설정은 흔하다. 그러나 [스티븐 유니버스]에는 이런 작품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고정관념이나 차별, 편견, 스테레오 타입 등이 없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윤리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에도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적용하지 않는 [스티븐 유니버스]의 태도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캐릭터를 다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한다. 스티븐이 성장하는 내용을 담은 시즌 1은 흔히 봐왔던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지만, 시즌 2부터는 캐릭터의 내면적 문제를 파고든다. 크리스탈 젬은 시즌 1에서는 완벽한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시즌 2에서 이성적이고 밝은 성격의 펄이 사실은 편집증적인 부분이 있었고, 애머티스트는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격지심을 느낀다. 스티븐은 시즌 1에 비해 성장하면서 크리스탈 젬의 내면의 상처를 감싸주고 함께 성장한다. 아무리 특출한 능력을 가졌더라도, 또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완벽한 존재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대며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스티븐 유니버스]의 캐릭터와 배경은 분홍, 보라, 청록색을 중심으로 한 파스텔 톤의 색감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빠져들 만큼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런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들의 괴로움과 성장을 포착한다.


그래서 [스티븐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의 여러 경계를 허문다. 이 작품에는 편견의 희생자가 된 캐릭터도 없고, 아동과 성인 애니메이션의 경계도 없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득한 작품의 분위기는 풀 쇼트가 자주 등장해도 넋을 잃고 감상할 만큼 아름답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패닝, 줌, 앵글 샷 등 영화처럼 카메라 쇼트 효과가 많이 들어가고 배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스티븐 유니버스]는 주로 풀 쇼트로 움직이며 카메라 쇼트가 짧지 않고, 캐릭터부터 배경까지 더욱 단순화돼 있다. 그러나 작품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이런 낯섦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익숙한 설정과 단순해서 더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스티븐의 친구 코니를 지나치게 통제하려고 하던 어머니는 이후 “너를 잃을까 두려워서”라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미 어른이 된 부모에게도 미숙하고 두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면서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는 것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고 알아야 할 것들이다. 또한 크리스탈 젬은 서로 미묘한 애정 관계를 갖고 있고, 명백하게 레즈비언이라는 암시를 주는 장면도 있다. [스티븐 유니버스]를 보는 아이는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부모를 비롯한 어른에 대해 보다 편견 없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성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어린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기대하며, 또한 어른이 돼서라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스티븐 유니버스]의 아름다움을 만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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