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의 패션, 이대로 괜찮은가

2016.06.08
이상하게 낯설지 않아….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곰곰이 생각했다. 머리카락인지 뭔가를 쓴 건지 타투를 한 건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헤어스타일, 대왕투구벌레나 콩벌레를 모티브로 삼기라도 한 듯 마디마디 분절돼 있는 갑옷, 칙칙한 보랏빛이 도는 얼굴과 의상과 온몸의 색깔까지, 신이라 불리던 최초의 돌연변이다운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한국을 휩쓸었던 공간 중 데몰리션 노래방이라는 곳이 있다. [에일리언]과 그 외 SF적이라고 느껴지는 요소들을 이것저것 근본 없이 섞어 만든 그곳, 갈 때마다 기괴한 못생김에 소름이 바짝 돋던 그 노래방. 아포칼립스는 수천 년 전 이집트가 아니라 데몰리션 노래방에서 방금 뛰쳐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행색이었다. [텔레그래프]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리뷰를 실으며 아포칼립스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할로윈에서라면 당신은 그의 의상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무대는 할로윈이 아니고, 아포칼립스는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는 귀여운 꼬마가 아니다. 그가 다른 돌연변이들에게 강력한 힘을 주겠다고 손을 뻗을 때마다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자기 멋대로 탈색한 모히칸 헤어를 만들어버린 스톰(알렉산드라 쉽)은 그나마 나은 형편이다. 민망할 정도로 훅 파진 하이레그 수영복 같은 스타일에 역시나 사정없이 파인 가슴골 부분, 가터벨트를 떠올리게 하는 롱부츠까지 사일록(올리비아 문)의 코스튬은 아포칼립스의 희한한 페티시를 반영한 것처럼 보였고, 하얀 날개를 펄럭이던 엔젤(벤 하디)에게 아포칼립스가 달아준 금속 날개는 마치 화석만 남은 시조새에게서 영감을 얻은 듯 흉물스러웠다. 이것이 몇천 년 전 이집트의 패션 감각인가?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자신의 케케묵은 센스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사자들의 동의도 없이 [프로젝트 런웨이] 같은 걸 하고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나는 아포칼립스 일당의 패배를 예감할 수 있었는데 첫째, 그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마다 실소가 터져 나왔고 둘째, 구성원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없는 리더와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없는 부하들(생각이라는 것을 딱히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이 오래갈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 아포칼립스의 관심이 세계의 권력을 쥐는 일보다는 아무래도 ‘자신만의’ 미를 완성하는 디자인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포칼립스는 매우 소중한 것인 양 에릭(마이클 패스벤더)에게 괴상한 헬멧마저 선물했다. 아포칼립스의 모든 것이 나빴지만 가장 나쁜 지점이다. 매그니토가 바퀴벌레 혹은 풍뎅이처럼 검붉은 코스튬에 그 볼썽사나운 헬멧까지 쓰는 순간, 세상을 향한 분노건 뭐건 그가 아무리 심각한 표정을 지어도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물론, 그의 원래 패션 센스가 아포칼립스보다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에릭은 본디 이상한 복장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만약 나라면, 매그니토 의상을 입은 내 모습이 TV 뉴스에 반복적으로 비춰질 때마다 방송국을 부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패션에 관심이 없기로는 찰스(제임스 맥어보이)도 만만치 않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후줄근한 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더니, 이번에는 연보라색 브이넥 니트를 몸에 기워 놓기라도 한 듯 열심히 입고 다닌다. 부창부… 아니, 이심전심하는 우정이란 이런 것일까?

사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그럼에도 에릭과 찰스의 미모는 빛난다. 그러나 자비에 영재학교에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한 학생들마저 언제까지나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찰스에게 썩 세련되지도 않은 디자인의 특수안경을 선물받고도 마냥 기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니던 어린 스콧(타이 쉐리던)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가엾기도 하지…. 스콧과 진(소피 터너) 등은 에릭이나 찰스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돌연변이이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돌연변이로 당당히 살아남는 법 이상의 무언가를 알려줘야 한다. 1 대 9 가르마를 타서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넘기고 아빠 옷이라도 훔쳐 입은 것마냥 헐렁한 패션을 즐기던 행크(니콜라스 홀트)는 물론, 브릿지 넣은 앞머리를 한쪽만 길게 늘어뜨렸던 나이트 크롤러(코디 스밋 맥피)도 좀 더 패셔너블해질 자격이 있다. 게다가 이미 이 젊은 돌연변이들은 “엑스맨 하는 건 너무 구리다”(스콧)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사이먼 킨버그는 “다음 시즌은 90년대를 배경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80년대보다 한층 더 혼란스러웠던 90년대 패션을 생각하면 음, 머리가 또 아파오지만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다. 낡은 악습은 타파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라. 이것이야말로 아포칼립스와의 싸움이 엑스맨들에게 남긴 교훈이었으니까.




목록

SPECIAL

image 카카오TV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