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원작자, 세라 워터스의 세계

2016.06.02
6월 1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세라 워터스의 장편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9세기 중반 영국, 외로운 상속녀와 그의 재산을 노린 음모의 공범이 된 하녀의 이야기를 그린 [핑거스미스]는 사랑도 미움도 배신도 모두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보기 드물게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미 장르소설 팬들 사이에서는 뛰어난 페이지터너로 알려져 있는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1837~1901) 3부작’과 [리틀 스트레인저]까지,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작품 네 편을 소개한다.

[벨벳 애무하기](Tipping the Velvet)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1890년대, 바닷가 작은 마을 윗스터블의 굴 요릿집 딸 낸시가 연예장의 매셔(남장을 하고 공연하던 여성 연예인) 키티에게 반해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를 뒤로하고 런던으로 떠나 겪는 인생역정을 그린다. [물랑루즈]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연예장의 풍경, ‘톰(레즈비언)’으로서 성적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낸시의 사랑과 이별, 상류층 여성들의 퇴폐적인 모임, 노동 운동과 여성 운동의 태동 등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소설에 관한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세라 워터스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그동안 고향을 떠난 젊은이의 파란만장한 모험과 슬픈 로맨스, 어리석은 선택, 마침내 찾게 된 진정한 행복이라는 전통적 서사는 거의 남성의 전유물이었지만,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던 소녀가 고난을 겪으며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신선한 재미와 함께 매력적인 계몽의 서사를 완성한다. 

[끌림](Affinity)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1874년, 아버지의 사망 후 우울함에 시달리던 상류층 숙녀 마거릿은 주위의 추천으로 방문한 여자 교도소에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죄수 셀리나를 만나게 된다.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학문적 열정도 발휘하지 못한 채 단지 ‘노처녀’로만 취급되며 살아가던 마거릿과, 영매로 활동하던 중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감옥에 오게 된 셀리나는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며 가까워진다. 열악하고 살풍경한 공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템스 강 근처의 밀뱅크 교도소로 독자를 데려가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며 코난 도일 역시 심취했던 빅토리아 시대 강신술의 세계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벨벳 애무하기]에 비해 로맨스와 성애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 데다 전체적으로 훨씬 무겁고 어두운 톤이지만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여자 목소리는 그토록 쉽게 억눌리는 반면에 남자들 목소리는 왜 그리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걸까?”라는 마거릿의 의문은 그 시대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억압을 반영한다. 

[핑거스미스](Fingersmith)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1860년대 런던, 소매치기와 장물아비 등 뒷골목 범죄자들의 틈에서 자란 열일곱 살 소녀 수는 사기꾼 젠틀먼의 제안에 따라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될 모드의 하녀가 되어 그 재산을 빼앗을 음모에 동참한다. 그러나 기괴한 욕망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시골 대저택 브라이어에서 서로를 탐색하던 수와 모드는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의 운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를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빅토리아 시대에 발표된 소설 [위대한 유산]·[올리버 트위스트]·[제인 에어]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통속적인 요소들을 독창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소화한 작품으로, 영화 [아가씨]에 비해 원작의 플롯은 좀 더 복잡하다. 

[리틀 스트레인저](The Little Stranger)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화자는 남성이며, 레즈비언 로맨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40대 초반의 의사 닥터 패러데이는 우연한 기회에 어린 시절 어머니가 유모로 일했던 에어즈 가문의 대저택 헌드레즈홀을 방문하게 된다. 가문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귀족의 생활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에어즈 부인, 활달하고 명민하지만 가족과 집에 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 캐럴라인, 전쟁 중 장애를 입고도 가문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아들 로더릭과 가까워진 그는 과거 자신이 매혹되었던 헌드레즈홀과 에어즈가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빠르게 쇠락해가며 점점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은 에드가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처럼 사람들을 극도의 공포와 광기 속으로 몰아넣고, 해결책처럼 보였던 선택은 새로운 파국을 부른다. 빅토리아 시대 3부작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지만, “단언컨대 이 소설과 더불어 불면의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는 스티븐 킹의 추천사가 빈말은 아니다. 단, 조금의 스포일러도 피하고 싶다면 끝까지 읽기 전에는 뒤표지를 보지 않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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