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음악대장│① 음악대장의 독재시대

2016.05.17
전주는 이미 승리를 예고했다. 지난 5월 8일 MBC [일밤] ‘복면가왕’에서 일곱 번째 방어전을 치른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하 음악대장)은 어떤 세대에게는 너무 익숙할 전주와 함께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를 불렀다. 남성 고음역을 대표하는 원곡을 역시 최고 수준의 고음역대 구사가 가능한 음악대장이 부르는 것만으로 판정단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고, 무대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복면가왕’ 역대 최장인 8연승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 무대는 이뤄낸 것보다 그 이후를 기대 혹은 걱정하게 만들었다. 과연, 음악대장이 이렇게 마음먹고 내지르는 선곡을 한다면 누가 이 폭군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인가. 포털 다음은 누가 음악대장의 연승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 네티즌 투표를 하기도 했다. 현재 음악대장은, 말하자면 존 존스(종합격투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복싱), 이영호(스타크래프트)처럼, 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챔피언이다.

근본적으로 예술과 취향 영역에서 1등을 가리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음악대장은 ‘복면가왕’에 최적화된 가수라고. 단순히 한국 대중이 유독 고음을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분명 대중의 평균적인 취향을 저격하지만, 또한 취향 바깥의 객관적인 기준 역시 만족시키는 무대를 보여준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영역에서 우열을 가려야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보다 좀 더 공정한 지표로 판단하고 선택하길 원한다. 편견 없이 오직 노래만으로 승부하자며 복면을 씌운 ‘복면가왕’이라면 더더욱.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들려준 낮지만 힘 있는 저음부터 ‘Don't Cry’로 증명한 최고 수준의 고음까지 음악대장의 폭넓은 음역은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매우 좋은 요소다. 공정한,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원한다면 이보다 깔끔한 선택지를 떠올리긴 어렵다.

하지만 공정한 평가에 대한 강박은 마치 피겨스케이팅 기술 채점표처럼 가창력을 난이도의 문제로 만든다. 음역과 테크닉·편곡은 모든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요소였지만, ‘복면가왕’의 출연자들은 좀 더 노골적으로 기예 대결을 펼친다. 기본적으로 소화 자체가 어려운 곡을 부르거나(음악대장 ‘Don't Cry’), 그룹이 부르는 곡의 모든 파트를 홀로 부르거나(여전사 캣츠걸 ‘Run Devil Run’), 성별을 속이는 수준의 키와 톤을 보여주기까지 한다(육군병장 나폴레옹 ‘Tears’). 불필요한 기교가 난무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올림픽 구호처럼 더 높이, 더 강하게, 더 복잡하게 부르는 것을 지향한다. 음악대장은 그의 노래가 감정을 건드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처럼 스포츠가 되어버린 경연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다. 파워풀한 고음과 익숙한 곡의 재해석으로 항상 상대를 압살하던 음악대장이 가장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순간은 고음을 자제한 ‘일상으로의 초대’를 불렀을 때다. 8연승이라는 기록은 위대하다. 음악대장도 위대하다. 하지만 음악대장 같은 보컬리스트가 지금 같은 행보를 보여야 가왕 자리를 방어할 수 있는 음악 예능의 경향이 위대한지는 모르겠다.

과거 [일밤] ‘나는 가수다’에서부터 제기된, 노래의 감동을 줄 세우는 것이 온당하냐는 비판을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음악 경연 예능의 본질적인 딜레마다. ‘복면가왕’, 그리고 ‘복면가왕’의 성공 이후 등장한 SBS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이하 [신의 목소리]) 등의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가 공정함이라는 미명 아래 해결된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복면을 쓰진 않지만 역시 계급장 떼고 노래 실력만으로 겨뤄보자는 [신의 목소리]에서 프로 가수들은 일반인 참가자와의 대결에서 형평성을 위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덕분에 박정현의 ‘Lonely Night’이나 거미의 ‘나는 나’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하지만 이처럼 난이도 조절을 통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노래 대결은 결국 ‘복면가왕’과 마찬가지로 기예 대결로 이어진다. 이것은 공정함의 신화다. 우리가 편견만 버리면 공정한 경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신화. 무엇이 됐든 공정한 경쟁 안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신화. 이 신화는 애초에 각 청자의 취향과 주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경험에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그래서 다시, 음악대장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은 조금 오싹한 일이다. 그가 져야 한다거나 지금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우열을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역에서 너무나 견고한 1등이 등장했다는 것이 기묘하다는 것이다. 과거 ‘나는 가수다’가 가수들을 무대라는 콜로세움 안에 밀어 생존자를 확인하는 잔혹한 쇼였다면, 그 후예인 ‘복면가왕’에 이르러선 이기는 무대의 매뉴얼과 정답이 만들어졌다. 아무리 음악대장의 무대가, 그리고 그를 이기기 위해 올라오는 도전자들의 무대가 훌륭하다 해도 이 상황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당장 우리는 음악대장의 ‘매일매일 기다려’ 이후 더 센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더 센 것도 좋지만, 더 센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지금의 쇼는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보컬을, 그리고 청자를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바라는 건 음악대장이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다. 그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더 세고 더 높지 않아도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그 뛰어난 기량과 열정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다른 무엇의 대장도 아닌 ‘음악’대장이니까.



목록

SPECIAL

image '놀면 뭐하니?' 효리X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