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데드 핸드], 핵무기는 평화를 보호해줄까?

2016.05.06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4월 12일에 김정일 일가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켄지 씨와 저녁을 먹었다. 후지모토 켄지는 이 자리에서 들은 말을 4월 말 귀국 후 일본 언론에 공개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화제에 오르자 김정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쟁할 생각은 없다. 울컥해서 미사일을 쏘는 것이다.” 이리 격정적인 지도자를 봤나. “울컥해서 미사일”은 인기 있는 개그코드가 되어 온라인을 휩쓸었다.

하지만 “울컥해서 미사일”은 듣자마자 터지는 웃음 이상으로 흥미진진한 메시지였다. 핵과 미사일 도발 정국에서, 북한은 합리적으로 보일수록 불리하다. 북한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주변국들이 믿는다면, 100% 자멸하는 전면전을 북한도 피할 거라고 주변국은 예측한다. 이 관점에서 도발은 협상력을 높이려는 블러핑이다. 이제 주변국은 북한에 선물을 주기보다는 응징하려 한다. 반대로 북한이 제대로 미친놈이라면, 울컥해서 전면전을 하지 말란 법이 없으므로 주변국은 북한을 달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북한은 미친놈처럼 보일수록 유리하다.

20세기는 핵과 미사일이라는 신무기가 안보 게임의 원리를 새로 쓴 세기다. 냉전기 핵 경쟁은 ‘상호확증파괴’라는 살벌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미소 양강은 한 번 핵 공격만으로 상대를 궤멸시킬 수는 없었다. 핵전쟁이 일단 벌어지면 반드시 핵 보복을 받고, 그러면 모두 죽는다는 것을 서로가 안다. ‘공포의 균형’이 전쟁의 유혹을 억누른다. 이것이 상호확증파괴다. 이 개념을 적용하면 방어무기 ‘사드’를 배치하는 데 중국이 왜 저리 민감한지도 알 수 있다. 방어체계가 충분히 제대로 작동하는 쪽은 보복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공포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 체제에서 방어체계와 공격무기는 사실상 같은 것이다.

핵과 미사일이 규정하는 2016년 한반도 정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20세기 무기 경쟁사를 알면 좋다. 데이비드 E. 호프먼의 [데드 핸드]는 냉전기 미소 양강의 무기 경쟁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베테랑 저널리스트가 첩보 스릴러처럼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냉전기를 다룬 이론서는 보통 “상호확증파괴 덕분에 냉전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저 무심한 설명 아래로 휘몰아친 우연과 공포와 편집증과 비합리성의 물결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1983년에 인류는 단지 소련의 미사일 경보 시스템이 엉터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핵전쟁을 할 뻔했다. 너무나 당연히도, 상호확증파괴는 경보기 고장을 억지하지 못한다.

20세기 무기 경쟁의 역사가 21세기 한반도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이 위태로운 게임의 참가자 모두가 이론처럼 합리적으로 플레이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우연과 비합리성을 감당할 여분의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인류가 이 정신 나간 시대를 빠져나온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항해였는지, 강한 무기와 전쟁불사 의지와 공포의 균형이 평화를 지켜준다는 아이디어가 우연과 비합리성에 얼마나 취약한지, [데드 핸드]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기 경쟁이 평화를 지킨다는 아이디어만큼 합리적으로 미친 생각도 흔치 않다. 상호확증파괴는 영어로 ‘Mutual Assured Destruction’이다. 약어로 ‘MAD’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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