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음식좌파 음식우파] 어떻게 먹을 것인가, 이것이 곧 정치다

2016.04.29
토란, 파슬리, 로즈마리를 넣은 유기농 닭고기 수프, 양젖 치즈, 스파게티와 현미밥, 후식으로 땅콩과 바나나칩. 2011년 1퍼센트만을 위한 부와 특혜에 반대하며 뉴욕 월가를 두 달 이상 점령한 시위대의 저녁 메뉴다. [뉴욕포스트]는 99퍼센트를 대변한다는 사람들치고는 꽤나 고급 음식이라고 야유했다. 소규모 유기농가들이 지원한 식재료를 무료 급식 시설을 빌려 직접 조리한 식사의 비용 자체는 높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미국 대중이 먹는 것과 거리가 먼 것은 분명하다. 좌파는 전통적으로 평등주의를 지지하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했다. 약자의 식단과는 거리가 먼 월가 점령 시위대의 식단은 정치와 라이프스타일의 분화를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 체제 선택이라는 큰 틀과는 별개로 세밀하게 대응해야 할 이슈들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환경 문제나 기술 윤리 등 새롭게 대두된 정치 문제는 기존의 진영 이데올로기로는 답을 얻기 힘든 구조를 가진다.

일본인의 음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양극화되었다. 저렴함과 양으로 승부하는 메가푸드가 있는가 하면 슬로푸드처럼 건강과 질을 중시하는 입장도 있다. 이 책은 건강지향과 지역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음식 좌파, 정크지향과 글로벌리즘을 음식우파로 정의한다. 한마디로 음식 좌파는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 공산품이 된 음식을 농산품으로 되돌리려는 사람들이다. 물론 좌파와 우파가 칼처럼 나뉘지는 않는다. 식도락가를 자처하면서도 유기농에는 관심 없는 사람도 많고, 마크로비오틱처럼 유기농과 로컬푸드를 중시하지만 곡물 위주의 식단을 추구해서 탄수화물의 과도한 섭취를 문제시하는 요즘의 건강 풍토와는 상반된 입장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상을 가진 집단들끼리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정치다.

소비는 한 사람의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 행위다. 정치 체제의 선택이 큰 의미를 상실한 21세기에는 오히려 음식을 둘러싼 갈등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무엇을 소비하는가, 무엇을 먹는가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각각의 이해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하야미즈 켄로는 정치 참여를 정국이나 제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상이나 생활, 소비 등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음식 좌파에는 태생적 모순이 있다. 월가 점령 시위에서 드러났듯이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역설이다. 유기농 재배는 급속히 확장되었지만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기 위해 시작된 유기농산물 시장의 고객은 자동차를 타고 먼 지역에서 찾아오는 부유층이다. 음식좌파는 본래의 반자본주의적 의도를 상실한 것은 물론, 오히려 자신들이 비판하던 자본주의적 수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한국의 음식 양극화는 일본 못지않다. 파인 다이닝과 해외 프랜차이즈가 붐을 이루는 한편 피코크 등 간편식과 편의점 도시락이 전에 없이 부각되고 있다. 나아가 집밥에 대한 유례없는 강조 속에 음식에 대한 선택은 단순한 선호를 넘어 이념이 된 지 오래다. 한 끼의 밥에 건강에 대한 바람, 한정된 돈과 시간, 가사 노동과 성역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금, 먹는 것은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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