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당신의 표는 승리했나요?

2016.04.15
첫문장을 쓰는 지금 시간은 막 총선이 있는 4월 13일로 접어들었습니다. 대략 24시간 정도가 지나면 다음 4년 동안 우리의 주권을 대리할 입법자들이 결정되고, 결과를 저는 모르지만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겁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나요? 축하합니다. 이 공동체가 가야 할 방향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이 더 많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다수당은 아니라도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내었나요? 그것도 좋습니다. 정치란 한판 승부일 때도 있지만 때로 벽돌쌓기와 비슷하고, 이번에 쌓은 벽돌을 잘 활용한다면 더 많은 동료 시민이 당신의 옆에 설 날도 있을 겁니다. 

지지하는 정당의 성과가 실망스럽나요? 그렇다면 지금쯤 동료 시민의 선택에 낙담하고 좌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 정당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표를 주고, 당신 눈에는 빤히 보이는 속임수에 열광하고,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정치 지도자에 환호하는 동료 시민을 보며, 이 나라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란 사치라고 고개를 저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당신을 더할 나위 없이 위로해줄 책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1915년생으로 2014년 타계한 로버트 달은 정치학계를 대표하는 거물이자, 그의 앞에 설 이름을 떠올리기 힘들만큼 치열한 민주주의의 대변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대표작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까다로운 공격을 뿌리까지 검토한 후 그에 맞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책입니다. 가볍게 읽힌다고야 못하겠습니다만,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가상의 대화로 재구성해 독자를 안내하는 친절함은 황송할 지경입니다. 이 대가는 보통 사람에 대한 신뢰 위에 쌓아 올린 자신의 정치철학을, 최대한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으로 웅변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한테 이로운 선택을 할 줄 모른다”는 분노를 터뜨리는 이들이 흔히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자처하곤 하지만, 실은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숙적인 수호자주의로 이어집니다. 능력과 덕성과 공정함을 갖춘 소수 엘리트의 양심적인 통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플라톤의 ‘철인(哲人) 통치’겠지요. 이 오래되고 매력 있는 아이디어에 맞서 로버트 달은 보통 사람들이 어떤 엘리트보다도 자신의 이익을 현명히 판단할 능력이 있으며, 그것만이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고 정교하게 논증합니다. 책의 하이라이트인 이 대목은 마치 플라톤과 달의 대결처럼 긴장감 있게 읽힙니다.

이 책은 나와 의견이 다른 동료 시민이 어리석고 무모하다는 분노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 줍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한발 물러서서 그들의 판단을 숙고하게 해 줍니다. 만일 당신이 구제불능의 멍청이에 포위된 소수파 선지자라면 민주주의가 지속되는 한 낙담을 되풀이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반대파도 나름의 책임 있는 선택을 내리고 있다면 다음의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깁니다. 설득하고, 마음을 얻고, 판단을 바꾸도록 하는 치열한 노력. 역설이지만 이런 시도는 나와 결론이 달랐던 동료 시민의 판단력을 믿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이 주는 진정한 위로는 동의하지 못할 결과 앞에서도 당신을 민주주의자로 붙들어 놓는 논증의 힘에서 나옵니다.

아, 거기 당신은 이기셨다고요? 이 책을 읽기에 완벽한 때입니다. 당신이 이긴 상대가 괴물도 얼간이도 선동의 희생양도 아니라는, 숫자가 조금 모자랐을 뿐 그 역시 보통 사람들이 내린 최선의 판단이라는 존중. 승리한 이들의 정치가 그 대전제 위에 있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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