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모던 아트 쿡북], 음식을 향한 욕망의 시

2016.04.08
어릴 때부터 먹는 얘기라면 사족을 못 썼다. 진짜로 먹는 것도 좋지만 책에 나오는 음식만 봐도 얼마나 흐뭇한지. 요크셔푸딩·크렘브륄레·코코뱅 등 발음도 못하겠는 암호 같은 이름들이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책 속 음식에 대한 책은 생각보다 많다. [모던 아트 쿡북]은 그런 책들 중에서 가장 우아한 선택을 보여준다.

저명한 영·불 비교문학 연구자인 메리 앤 코즈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녀는 본격적인 논문 말고도 마르셀 프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등 많은 예술가들의 전기를 집필했고 프로방스 요리에 대한 책도 썼다. 음식에 대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모아놓은 이 책에서 칠순의 노학자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총동원해 음식을 찬미한다. 아니, 욕망한다. 비록 문장은 섬세하고 고상할지언정 독자의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적나라한 욕망이다. 

음식을 찬미하는 시가 이토록 많았던가, 그것도 근엄한 분들이 쓴. 음식이 등장하는 그림이 이렇게 많았던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집착적인. 때로는 그냥 치즈 이름을 나열한 게 시처럼 들리기도 한다. “유리창 꼭대기까지 높이 쌓여 있는 피카르동 치즈, 펠라르동 치즈, 프로마주 프레, 원통형 치즈, 낱개 포장된 치즈, 푸른빛을 띠는 것, 불그스레한 것, 사부아 치즈, 쾨드리옹 치즈.”

이탈로 칼비노는 치즈 가게에 들를 때마다 루브르를 방문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콜레트는 큼직한 커피잔에 버터 바른 빵을 얹어 오븐에서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구운 카페올레를 권한다. 파블로 네루다가 아티초크에 부친 시와 에즈라 파운드가 계란을 노래한 시를 읊고 나면,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아스파라거스와 웨인 티보가 그린 케이크를 구경한다. 세잔이 즐겨 먹었다는 ‘꿀과 아몬드를 넣은 브뤼스 치즈’ 등 예술가들이 편애한 음식의 요리법을 배우는 것은 덤이다. 아, 심지어 음악도 있다. 에리크 사티의 ‘배 모양의 세 개의 곡’의 도입부 악보가 리 파머의 그림 ‘배 세 개가 있는 실내’와 나란히 실려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대가들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쓰고 그린 음식에 대한 찬미가 펼쳐진다. 와인에 대한 시와 나란히 와인 그림이 있고, 토마토에 대한 찬미 다음에는 토마토 사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폭발적인 상호작용은 책을 덮은 후에도 이어진다. 잘도 짝지은 글과 그림을 보며 우리는 군침을 흘리고,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상상하고, 직접 만들어보거나 파는 곳을 물색하고, 드디어 먹어본 후에는 발췌된 소설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져 다시 책으로 달려든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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