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정치의 발견], 총선을 앞둔 유권자 모두에게

2016.03.25
대한민국 헌법 41조 2항은 이렇게 되어 있다.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이 쉬운 문장이 해석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4년 전 19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300명으로 늘렸다. 이게 41조 2항을 어기는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200명 이상’이란 ‘299명 상한’을 뜻하며 앞자리가 ‘3’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는데, 헌법학에 전혀 조예가 없는 나의 평균적 언어 감각으로는 그냥 참신한 헛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제법 여론의 지지를 얻었으니, 내 눈에 제일 큰 이유는 이거였다. “꼴같잖은 국회의원 밥그릇을 줄일 수 있다면 뭐든 찬성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려 정원을 줄이자는 논리는 난해하기로 거의 현대미술 급이다. 국회의원의 권력 중 핵심은 입법권·예산 의결권·행정부 감사권에서 나온다. 이건 우리가 삼권분립을 지키는 한 입법부에 줄 수밖에 없는 권리다. 입법부의 권리를 국회의원 300명이 나눠 가질 때와 200명이 나눠 가질 때, 둘 중 어느 쪽이 국회의원 한 명의 힘이 셀까? 이걸 500명이 나눠 가지면 어떻게 될까? 이건 그냥 초등학교 나눗셈 문제다. 숫자를 줄일수록 국회의원은 특권층이 되고, 늘릴수록 보통 시민에 가까워진다.

정치혐오를 기본값으로 깔아둔 여론에 총선과 같은 전국선거를 끼얹으면 혐오와 열광이 한데 뒤엉킨 카니발이 등장한다. 정치를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오염물로 혐오하면서, 이 혐오의 무더기를 단칼에 베줄 백마 탄 초인에 열광한다. 그게 백마도 초인도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후에는, 그를 보통 정치인의 자리로 내려놓는 게 아니라 혐오의 구렁텅이로 던져버린다. 이 현기증 나는 롤러코스터는 앞으로 나가는 법이 없다.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요동치며 긴 거리를 달리는 것 같지만 내릴 때 보면 처음 탔던 그 자리다.

정치학자 박상훈의 도서 [정치의 발견]은 이런 롤러코스터에 신물이 난 독자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다. 민주정은 작동 원리상 ‘1인 1표’라는 형태로 모든 개인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한다. ‘1원 1표’ 원리로 작동하는 시장은 이런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정치는 조직된 약자의 목소리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다.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의 역할을 축소하는 태도야말로 기득권을 강화한다. 박상훈은 이런 논지로 대중의 정치혐오와 엘리트의 반(反)정치 둘 다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워온 학자다. 우리가 정치를 혐오하지도 신비화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할 이유를 이 책은 친절하게 안내한다.

내가 원고를 쓰는 3월 22일의 뜨거운 정치 뉴스는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 찍어내기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당무거부 파동이다. 이 글이 공개될 3월 25일은 겨우 사흘 뒤지만, 그날의 정치 메인 뉴스는 짐작도 못 하겠다. 1주일은 갈 것 같던 뉴스가 반나절도 못 되어 휩쓸려간다. 총선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정치뉴스의 범람철이다. 민주국가의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이왕이면 열광과 혐오를 진자운동만 하고 끝나기보다 좋은 시민의 삶을 위해 정치의 작동원리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 보자. 롤러코스터도 탈 때는 타야 하지만, 뚜벅뚜벅 앞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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