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① 최대 다수를 위한 ‘최고의 판타지’

2016.03.22
KBS [태양의 후예] 위로 종종 겹쳐 보이는 작품은 영화 [국제시장]이다. 거리에서 말다툼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가슴에 손을 얹던 덕수(황정민) 부부처럼, 유시진(송중기)은 자신이 이끄는 부대 내에서 국기하강식이 시작되자 민간인 강모연(송혜교)을 돌려세워 경례에 동참시킨다. 외화를 벌기 위해 베트남에 갔던 덕수에게 현지 아이들이 그랬듯, [태양의 후예] 속 가상의 분쟁지역 우르크의 아이들은 의료 봉사를 하러 온 강모연에게 몰려들어 초코바를 달라고 졸라댄다. 두 작품은 다 ‘대박’이 났다. 2014년 12월 개봉한 [국제시장]은 1천 4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태양의 후예]는 요즘 ‘천만 영화’보다 드문,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미니 시리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국뽕’(‘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신조어로, 과도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를 조롱하는 표현)과 함께 버무릴 많은 재료들을 가지고 있다. KBS [아이리스]에서 성공했던 블록버스터 액션, 흥행이 보증된 장르라 불리는 의학 드라마, MBC [일밤] ‘진짜 사나이’처럼 군대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트렌드, ‘흙수저’와 ‘금수저’의 대립, 브로맨스 코드, 속칭 ‘사이다’라 불리는 통쾌한 전개, 감초 조연들의 코미디 등 요즘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모든 요소의 합집합이 [태양의 후예]를 구성한다. “여자도 제복 판타지 있어요”라는 강모연의 대사나 식스팩을 드러낸 군인들의 구보 장면에 열광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시선 등은 명백히 타겟 소비층을 노린 서비스지만, 동시에 수백만 명의 예비역 남성들은 군 관련 고증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그려지는 ‘멋진 남자’에 대한 판타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130억 원 규모의 제작비로 사전 제작된 드라마는 스펙터클한 영상을 통해 군 작전 상황이나 대규모 재난 등 영화처럼 스케일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는 자존심 강한 ‘말괄량이’와 위험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미남이 이국의 풍광을 배경으로 사랑에 빠지는 할리퀸 로맨스 같은 멜로드라마가 있다.

SBS [파리의 연인]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지 12년, 김은숙 작가는 줄곧 대중의 취향과 욕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흥행에 실패한 적은 없지만 최근작 SBS [신사의 품격]과 [상속자들]은 트렌드의 외피를 바꾸어 둘렀을 뿐 과거만큼의 감각과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대중이 더 이상 ‘금수저’들의 사랑 이야기에 예전처럼 빠져들지 않는 시대를 맞아, 김은숙 작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스스로 생업을 선택하고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기존의 신데렐라 캐릭터들과 달리 강모연은 전문직과 미모 자본을 가지고 있지만 ‘빽’ 앞에서 번번이 무력해지고, ‘갑’으로부터 성적인 요구를 받는 등 시련을 겪으며,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어머니의 연금보험을 걱정할 만큼 먹고사는 문제를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현실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현실적인 욕망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삶에 지쳐 있을 때 완벽한 판타지에 가까운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되 선뜻 불안정한 관계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멜로에 새로운 관점에서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유시진이 “내가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재벌 2세면 우린 좀 쉬웠습니까?”라는 물음으로 클리셰를 비트는 것처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부모(계급) VS 연인’ 이상으로 강력한 딜레마는 ‘일(가치관) VS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지금 이 시대의 대중이 흥미를 가질 법한 수많은 요소가 합쳐지면서 [태양의 후예]는 가장 많은 사람이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으로 흥행할 만한,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인 취향들을 한데 뭉뚱그려 놓으면서 섬세한 시선이나 극의 개연성은 사라진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러브 스토리의 클리셰는 ‘고졸 출신 부사관’인 상사 서대영(진구)과, 3성 장군의 딸이자 육사 출신 군의관인 중위 윤명주(김지원)의 몫이다. 강모연과 윤명주는 둘 다 뛰어난 의사이자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지만, 남녀 관계에 있어 강모연은 수시로 유시진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생명을 빚지고, 윤명주는 아버지와 서대영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결정 내린 바에 따라 이별을 당하는 것으로 보호받는다. 속물적이거나 감정적이었던 이들이 상대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반면, 유시진과 서대영은 처음부터 거의 완전무결하게 성숙한 인간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대의를 따르며 모든 책임과 고뇌를 홀로 짊어진 채 여성을 보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빈 곳을, 불편한 지점을 덮는 것은 감정을 몰아치는 듯한 OST의 폭풍과 화려하게 쏟아지는 ‘명대사’들의 향연이다. 그중에서도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긴 하지만 한 소리 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내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그런 겁니다”라는 유시진의 대사는 [태양의 후예]가 서 있는 ‘최고의 판타지’의 기반처럼 보인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멋지고 로맨틱한 남자가 이끄는 이야기. 다만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즐길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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