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왕초보 영어탈출 해커스 톡”부터 “공인중개사 합격은 에듀윌”까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2016.03.21
“왕초보 영어탈출 해커스 톡. (음계 높여) 왕초보 영어탈출 해커스 톡.”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몇 달 전부터 회사에서 집으로 퇴근하는 도중 모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버스 스피커에서 크게 흘러나오던 CM송의 후크가 제법 중독성 있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귀에 맴돌더니 드디어 입에까지 옮겨붙었다. 마치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처럼 쉬지 않고 반복되는 악마의 멜로디는 적어도 내게 “핑미 핑미 핑미 업”보다 강력한 후크였다. 문득 이토록 강력한 후크를 만들어낸 창작자가 궁금해진 건 그래서다. 사실 CM송이 웬만한 유행가 이상의 중독성으로 우리의 귀와 입을 지배한 사례는 종종 있어왔다. ‘국민ㅇㅇ’라는 단어의 범람 속에서도 독보적인 위엄을 드러내던 “국민연~료 썬연료~” 구절이나 지금이라도 입학하면 신세를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서울사이버대학에 다니고 나의 성공 시대 시작됐다” 같은 전설의 가사와 멜로디들. 먼 훗날 우리의 소리를 찾는다고 할 때 이들 CM송이야말로 작자 미상의 구전가요로 소중한 문화유산 취급을 받지 않을까. 취재를 통해 그 제작과정을 미리 기록해두는 건 후대를 위한 저널리즘의 사명이리라.

“저, 죄송하지만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담당자가 퇴사한 지 오래라 정확히 어느 업체가 제작했는지 자료가 안 남아 있습니다.” 취재는 처음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우선 스테디한 곡부터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연락한 서울사이버대학교는,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도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면 전화벨 대신 흘러나오는 노래를 만든 사람이라면 총장과도 독대가 가능한 VIP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담당자가 퇴사한 것만으로 정보가 남지 않는 무명의 아무개였다. 앞으로의 취재 역시 쉽지 않겠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최근 적극적으로 시장 홍보를 하느라 언론에 비교적 친화적인 업체를 중심으로 취재 계획을 다시 짰다. 가장 확실해 보이는 건 기획의 시작이었던 해커스 톡을 비롯한 에듀윌 같은 사교육 업체였다. 마침 에듀윌 TV 광고에서 서경석이 부르는 CM송도 다시금 회자되는 중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수강 문의는 1번, 결제 관련 문의는 2번…” 아, 갈 길이 멀고나.

“기본적으로 광고 음악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지 않아요. 광고 배경음악까지 포함해 광고 음악이 1년에 5,000개 정도 나오는데 그걸 약 열 군데 업체에서 다 만든다고 보면 돼요. 학교에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통 실용음악 같은 거 공부한 사람들이 광고가 재밌을 거 같아서 오는데 1, 2년 안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창작에 대한 욕구와 광고주의 요구 사이에서 자기 영역을 찾는 게 어려운 거죠. 수정 사항도 엄청나게 많고요.”
해커스 톡 CM송을 만든 닥터훅 윤영문 감독의 말은 CM송 시장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라면 이수만 회장의 센스에, YG 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라면 양현석 대표의 센스에 맞춰 곡을 컨펌받을 수 있겠지만 광고주의 센스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15초 안에 최대한 많은 팩트를 넣길 바라는 광고주의 요구를 들어주며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해커스 톡은 꼭 들어가야 할 슬로건이 명확했고 짧고 굵은 후크라는 전제에 동의해 비교적 쉽게 작업이 진행된 케이스다. 노래를 광고주가 직접 불렀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대표가 직접 TV 광고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콘셉트 안에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박자를 맞추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방향으로 작업물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시장의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마동석이 R&B를 부르며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던 배달통의 CM송이 그렇다. 해당 업체의 광고를 기획하고 대행했던 안테나와 나 측은 철저히 마동석이라는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광고를 고민하다가 직관적으로 R&B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사실 상당히 세련된 멜로디에 비해 이 CM송은 기존의 광고 개념에선 메시지 전달이 간결 명확한 편은 아니다. 가령 ‘Begin Delicious Time’이라는 영어 가사가 그렇다. “기존의 광고 음악 만들던 녹음실에서도 시안을 받아보고, 광고 음악 경험이 전무하지만 대중가요 쪽에서 활동하던 팀에게도 시안을 받아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자는 너무 CM송 같은 CM송이 나왔어요. 이번엔 음악의 세련됨에 신경을 써야 하는 콘셉트라 후자를 선택했죠. 아무래도 광고가 업이 아닌 친구라 광고주의 다양한 수정 요구에 힘들어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양쪽 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안테나와 나 조덕진 대표)

이처럼 CM송 제작은 한 창작자의 고독한 작업이라기보다는 광고주-광고대행사-광고제작사-음악 업체가 갑을관계와 기획으로 복잡하게 얽힌 협업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의 기획 의도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도 일어나며 그것이 의외의 대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패러디하며 더더욱 많이 알려지게 된 서경석의 에듀윌 TV 광고 CM송의 경우 2009년에 만든 라디오 CM송을 콘셉트에 맞춰 새롭게 편곡한 케이스다. 원곡은 광고대행사 비알캠페인이 힙합·록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고, 서경석이 부르고 있는 것은 물론 전자다. “원래 라디오 CM송에서는 힙합을 잘 쓰지 않아요. 멜로디가 있는 노래에 비해 귀에 잘 걸리질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공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에듀윌의 경우에는 가사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노래는 어려울 것 같아 힙합으로 제작했죠. 다행히 노출을 많이 해서 인지도가 올라갔고 그게 이번 서경석 버전까지 이어진 거죠.”(비알캠페인 정헌 차장) “TV 광고 시안에 대한 경합 프레젠테이션에서 모델이 CM송을 부르는 아이디어가 채택됐고, 다행히 서경석 씨가 흔쾌히 승낙을 했죠. 들었을 때 예전 그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멜로디를 유지하면서도 광고에서의 제스처에 맞게 편곡을 했죠.”(에듀윌 최문석 부장)

하지만 이번 서경석 버전의 TV CM송에는 비알캠페인이 관여하지 않았다. 곡의 저작권이 광고주인 에듀윌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취재를 앞두고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CM송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가령 썬연료 CM송의 경우 과거 선거운동에서도 자주 사용됐는데 그 저작권료는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가. 이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기본적으로 원곡에 대한 사용 권한은 광고주가 마음껏 누릴 수 있고, 때론 저작권까지 가져가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업체들은 음원 소스를 자기들이 보관하고 원곡에 대한 수정이나 개사가 필요한 작업에 저작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저희도 모 광고 음악에 대해 선거운동에서 써도 되느냐는 문의가 왔어요. 광고주는 승인을 했지만 원 저작권은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최종 컨펌은 우리의 몫인데, 사실 여기서 저희가 쓰지 말라고 하면, 이건 광고주에게 앞으로 너희 일 안 하겠어, 라고 통보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아무리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정당이라고 해도 안 돼, 못 줘, 라고 할 수는 없어요.”(닥터훅 윤영문 감독)

“조강지처가 좋더라~”라는 멜로디를 쓰기 위해 수많은 정당 실무자가 작곡가에게 삼고초려 하는 모습을 상상한 나의 기대는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업계의 평균 단가라는 것이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광고주 매출에 영향을 미칠 만한 대박 CM송을 작곡한다 한들 몸값이 특별히 뛰는 경우도 없다. 프로페셔널한 직업인 만큼 결코 초라할 건 없지만,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내가 피곤한 건 간 때문이고, 나를 찾는 사람이 없는 건 서울사이버대학에 다니지 않아서고, 영어 왕초보인 건 해커스 톡을 다니지 않아서인데. 이름 모를 누군가가 만든 이 노래들은 우리 생활에 말 그대로 스며들어 있고 이토록 강력한 말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러니 우선은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잘 듣고 있노라고, 누군가는 당신들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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