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먹어라

2016.03.18
C는 오밤중에 남의 농장에 침입하는 사람이다. 철조망을 비집고 오물 구덩이에 빠져가며 축사로 들어가면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 새끼 칠면조 만 마리가 바글거린다. 부스럼으로 덮인 채 벌벌 떨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 칼을 꺼낸다. 그러고는 목을 벤다. 수의사에게 데려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고통을 당장 끝내는 것이 천천히 죽어가는 어린 생명에게 일어날 수 있는 제일 좋은 일이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 중 하나다. 그는 닭고기를 먹으려면 닭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홉 살 이래 ‘간헐적’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고등학생 때는 튀어보려고 ‘더 자주’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채식주의가 만연한 대학교에서는 오히려 더 고기를 먹었다. 약혼 후 채식주의로 돌아갔지만 가끔은 햄버거와 닭고기 수프와 훈제연어를 먹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이지만 가끔 거짓말을 하며, 배려심 깊은 친구지만 가끔 눈치 없는 짓을 한다. 우리는 가끔씩 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들이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오래전에 고장 난 전구를 갈고, 안경을 손보고, 흰 양말 열두 켤레를 사고, 5년 만에 건강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인류는 오랫동안 동물을 먹어왔다. 하지만 누구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이후다. 소와 닭과 돼지는 이제 생명이 아니라 상품이다. 아프기라도 하면 치료에 앞서 계산기부터 두드린다. 50마리를 키우던 아버지는 한 마리도 잃을 여유가 없었지만 1,200마리를 키우는 아들은 최소한 4%는 폐기한다 가정하고 시작한다. 몸 한 번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우리로 한 번 들어간 동물은 다시는 태양을 볼 수 없다. 벗어나는 것은 도살장으로 갈 때뿐이지만 고통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사전 예고 후 방문한 미국 도축장의 32%에서 “규칙적으로 벌어지는 고의적 잔혹 행위”가 목격되었다. 아직 의식이 남은 소의 가죽을 벗기고 다리를 자르고 재미 삼아 전기 봉으로 항문을 쑤시는 행위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사실을 업체들조차 부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물로 인한 환경오염과 비위생적인 식육 처리까지, 공장식 축산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생닭 한 마리를 3,000원에 살 수 있는 것은 공장식 축산 덕분이다. 평생 날개 한 번 못 펴보는 배터리식 닭장 대신 풀어 키운 닭을 사려면 10,000원을 내야 한다. 윤리적 사육의 일반화는 최소한 현재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고기를 빼앗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고기 값을 한 푼이라도 내릴 수 있다면 동물을 기꺼이 학대할 사람은 드물고, 빈곤층까지 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으니 공장식 축산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단언할 사람도 드물다.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공장식 축산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 절약해 윤리적으로 사육되는 고기만 소비할 수도 있으며,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져서 차라리 채식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다만 어느 쪽을 고르건 먼저 알고, 계속 생각해야 한다. 옛날 옛적 가축에 대한 지배적 윤리는 ‘먹지 마라’도, ‘관심 끊어라’도 아니었다. ‘관심을 갖고 먹어라’였다.

C는 어릴 때 소의 도살 영상을 보았다. 혼란스러워서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아버지는 얼버무렸고, 그는 그때 그 자리에서 “설명하기 힘들 때 농담을 하는 사람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지를 선택하지 않는 것. 다른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생물로서 최소한의 윤리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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