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와 ‘고구마’, ‘is 뭔들’로 기사를 써보자

2016.03.15
이제 기자들이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지난 9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첫 대결에서 알파고가 1승을 기록하는 순간 든 생각이다. 성큼 다가온 미래에 사람들은 놀라거나 환호하거나 두려워했고, 나는 밥그릇을 걱정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승부사인 이세돌을 불계승으로 꺾은 인공지능이 등장한 마당에, 바둑돌을 배치하듯 문장을 배치해 기자를 대신할 인공지능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실제로 AP통신은 분기별 기업실적 기사에 워드스미스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서울대학교 연구팀이 프로야구 단신을 작성하는 알고리즘인 프로야구 뉴스로봇을 선보인 바 있다. 그렇다면 곧 여타 분야의 기사 작성도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않을까. 어차피 최소 단위의 단어 조합으로 여뷰징 기사를 내고 있는 매체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기자들은 집에서 손가락을 빠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너무 과도한 상상 같다면, 현재 나오는 연예 기사들을 지배하는 마법의 키워드인 ‘고구마’와 ‘사이다’, 그리고 ‘is 뭔들’로 이들 기사가 얼마나 쉽게 작성될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사실 ‘사이다’와 ‘고구마’ 이전에도 ‘헉’, ‘충격’ 같은 단어와 연예인 노출 사진을 조합하는 등 쉽게 어뷰징 기사를 작성하는 방법은 존재했다. ‘사이다’와 ‘고구마’가 혁신적인 건,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가치판단 영역까지 키워드 조합으로 가능한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3월 20일 MBC [앵그리맘]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기사에서 드라마의 빠른 전개를 강조하기 위해 연예기사에서 처음 사용된 이 단어는, 절대악에 대한 복수를 다룬 MBC [내 딸, 금사월]과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과 함께 빠르게 확산됐다. 두 작품에 대해 해당 키워드만으로 각 100건 이상의 기사가 작성되었으며 조금이라도 악역이 우세하면 ‘고구마 전개’, 주인공의 반격이 시작되면 ‘사이다 전개’·‘사이다 활약’·‘사이다 복수’ 등의 제목이 붙어 릴리즈됐다. 가령 [OSEN] ‘[내 딸, 금사월] 전인화, 고구마 딸 뒤엔 사이다 엄마’ 기사에선 악역 금혜상(박세영)에게 당하는 금사월(백진희)은 ‘고구마 딸’이, 뒤에서 해결해주는 신득예(전인화)는 ‘사이다 엄마’가 된다. 답답함과 후련함이라는 두 가지 주관적 감정만으로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물론 복수가 중요한 서사에 통쾌함은 중요한 미덕이다. 하지만 서사를 ‘고구마’와 ‘사이다’로 양분하는 프레임은 여타 드라마 기사에도 퍼졌고, [텐아시아]는 KBS [발칙하게 고고] 4회에서 주인공 강연두(정은지)가 권수아(채수빈)에게 욕을 하는 장면에 대해 “한 회에 고구마와 사이다를 동시에 먹여 색다른 재미를 줬다”고 평했다. 학원물로서의 장르적 맥락은 휘발되고 ‘고구마’와 ‘사이다’ 프레임으로 드라마의 퀄리티를 평가할 수 있다. 덕분에 작품에 대한 비평은 놀라울 정도로 쉬워진다. 실제로 검증해보자.

고구마 사이다 기사 실전편
지난해 방영한 KBS [프로듀사]는 김수현, 아이유의 출연과 KBS라는 방송국 내부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하지만 굳이 방송가를 어떻게 재현했는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프로듀사]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신입 PD 백승찬(김수현)이 실수하지만 윤여정이 대범하게 이해해주는 초반 에피소드를 긍정적인 기사로 써보자.

제목: 고구마 주인공, 하지만 사이다 윤여정이 있었다
내용
① 제목 반복
② 해당 장면 요약
③ 고구마 주인공이 답답했지만 바로 윤여정의 사이다로 해소되면서 색다를 재미를 줬다.
④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관련 기사
윤여정 과거 사이다 발언 눈길

부정적인 버전도 가능하다.
제목: 고구마 주인공, 사이다 같은 성장이 필요하다
내용
① 제목 반복
② 해당 장면 요약
③ 주인공이 답답했지만 윤여정이 따끔한 질책 대신 대범하게 이해해주면서 시청자의 가슴에 고구마만 남았다.
④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보겠다.
관련 기사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 다시 보고 싶은 사이다男

뭘 해도 다 괜찮을 수밖에 없는 대상을 수식하는 신조어인 ‘is 뭔들’은 최근 걸 그룹 마마무의 신곡 ‘넌 is 뭔들’의 인기와 함께 더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기사를 알고리즘으로 작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선행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드라마의 주인공과 악역을 구분하고, 주인공 입에서 나온 단어 중 ‘사이다’로 분류할 것들과 ‘고구마’로 분류할 것들에 대한 범주화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내용 요약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로봇이 작성하는 야구 기사 역시 오픈된 기록 소스가 필요한 것처럼, 드라마 요약 및 주요 대사를 제작사 혹은 홍보사에서 제공해준다면 해당 자료 하나로 다수의 ‘고구마 사이다’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서사의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또 다른 마법의 키워드인 ‘is 뭔들’을 사용하면 이조차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뭘 해도 다 괜찮을 수밖에 없는 대상을 수식하는 신조어인 ‘is 뭔들’은 최근 걸 그룹 마마무의 신곡 ‘넌 is 뭔들’의 인기와 함께 더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기사에 활용된 적은 있다. 지난해 8월 3일 배우 김유정의 SBS [인기가요] 진행과 관련해 소속사가 보낸 자료를 거의 그대로 릴리즈한 ‘김유정 is 뭔들’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이선균, 알베르토, 강동원, 정우성, 유승호, 한효주 등에게 ‘is 뭔들’이 붙었다. 활용법도 다양하다. 강동원, 이영애 등 압도적인 비주얼을 강조할 때도, 송새벽과 라미란의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에 대해 설명할 때도 ‘is 뭔들’이 붙는다. [OSEN]의 경우 MBC [일밤]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 대한 기획기사 타이틀을 ‘여군 is 뭔들’로, KBS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 송중기 기획기사 타이틀 역시 ‘송중기 is 뭔들’로 잡기도 했다. 갈수록 범위가 넓어진 이 용어는 최근 제품 기사에도 적용돼, 소니 4K 캠코더를 다룬 [이투데이]의 ‘4K is 뭔들’ 같은 기사도 등장했다. 연예인이 인스타그램에 본인 사진만 올려도 ‘is 뭔들’ 기사가 나오는 현재, 연예기사 작성은 획기적으로 쉬워졌다. 이 역시 확인해보자.

‘is 뭔들’ 기사 실전편
최근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태양의 후예]처럼 시청률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확실한 경우 매우 다양한 ‘is 뭔들’ 기사를 만들 수 있다.

제목: [태양의 후예] is 뭔들
내용
① [태양의 후예] 어제 시청률
② 어제 방송 내용
③ 뭘 해도 통하는 [태양의 후예]
관련 기사
송중기 is 뭔들
송혜교 is 뭔들
유시진 is 뭔들
강모연 is 뭔들
김은숙 is 뭔들
제복 is 뭔들 → 이 기사엔 ‘강동원 is 뭔들’을 붙일 수 있다.

이처럼 쉽게 해당 이슈에 대한 가치판단까지 담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인간의 손으로도 빠르게 작성할 수 있지만, 해당 알고리즘만 완성된다면 더더욱 빠른 속도로 포털을 자사의 기사로 가득 도배할 수 있다. 당장 ‘사이다 고구마’, ‘is 뭔들’로 검색하면 엄청난 양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가령 JTBC [욱씨남정기]는 방영되기도 전에 이미 ‘고구마 사이다’라는 키워드로 200개 조금 못 미치는 기사가 나왔다. 정말 ‘사이다 고구마’라면 뭐든 가능한 ‘사이다 고구마 is 뭔들’의 알고리즘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 내가 상상하던 미래는 이미 도래한 것은 아닐까. 저 수많은 익명의 온라인이슈팀의 정체가 꼭 사람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윌리엄 깁슨의 말이 떠오른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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