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커넥톰, 뇌의 지도], 뇌라는 압도적 신비감

2016.03.04
1996년 2월, IBM이 만든 인공지능 체스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와 맞붙었다. 여섯 판을 둬서 1승 2무 3패를 기록했다. 승부에서는 진 셈이지만 인공지능이 거둔 저 1승의 충격파는 굉장했다. 다음 해 벌어진 재대결에서 딥블루는 2승 3무 1패로 아예 인간 챔피언을 꺾어 버린다. 마침 세기말도 코앞이겠다, 서양 세계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날이라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바다 건너 극동의 삐딱한 10대였던 나는 이 소식에 퍽 시큰둥했다. ‘체스니까 그렇지.’ 체스와 바둑을 둘 다 둘 줄 아는 한국인에게는 묘한 바둑부심이 있는데, 바둑이 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복잡하고 오묘하고 깊이 있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든 인정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일종의 주책증후군이다. 체스는 주어진 말을 주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제한적인 게임이지만, 바둑은 19*19=361칸 위에 자유롭게 돌을 두어나가며 세상을 창조하는 훨씬 더… 이거 봐 이거 봐 나 또 이러고 있잖아.

2016년 3월, 한 시대를 지배했던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내놓은 인공지능 알파고가 9일부터 다섯 판을 붙는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인공지능이 바둑 챔피언과 마주 앉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제는 다음 주로 다가온 현실이다. 지난해 10월 알파고의 실력은 이세돌의 상대가 아니었지만, 반년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바둑 인공지능은 어떤 고비를 통과해버렸다. 이 친구는 학습을 한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몇 년 안에 인류가 지는 날은 반드시 온다.

인공지능의 ‘딥러닝’은 올해의 트렌드이지만, 내가 이 개념을 이해한다고는 도저히 말 못한다. 다만 취재하면서 떠오른 책을 소개할 수는 있겠다. 뇌과학의 최전선에 있는 MIT 승현준 교수가 쓴 [커넥톰, 뇌의 지도]는 인간의 뇌라는 압도적으로 복잡한 연구대상을 여행하며 읽는 이를 차라리 종교적인 신비감으로 인도한다. 뇌는 신경세포(뉴런)들을 연결(시냅스)한 배선도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연결체를 커넥톰이라 부르는데, 승현준은 뉴런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데다가 사는 내내 변화하기 때문에 커넥톰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의 정신이 서로 다른 것은 각자의 커넥톰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주 비과학적으로 쓰자면 이렇다. 매일 얼굴을 맞대는 ‘가족’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실제로 뉴런 하나가 이런 큰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주위는 연결망이 강화되고, ‘이직한 동료’ 뉴런 주위는 연결이 약해지거나 끊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무언가를 학습하는 방식이 바로 이 ‘연결의 강약조절’과 닮았다. 이를테면 알파고가 어떤 수를 둬서 그 바둑을 졌다. 그러면 알파고는 그 수를 추천한 신경망의 가중치를 낮춰서 다시 그 수를 택할 확률을 떨어뜨린다.

이 책은 쉽지 않다. 승현준은 최전선의 전문가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주제 자체의 진입장벽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 같은 문외한은 생전 쓰지 않던 뉴런과 시냅스를 새로 배선하는 기분으로 허덕거리며 읽어내야 했다. 그래도 이 힘겨운 독서의 경험은 알파고를 취재하며 인공지능의 습격에 우울해지던 나에게 묘한 자존감을 안겨줬다. 이세돌에게 도전하는 알파고라 해도, 구현 원리만 놓고 보면 우리 뇌의 유치한 모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단출하다. 이 책이 탐험하는 우리 뇌의 한 자락만 해도 그에 비하면 우주와 같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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