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 장진의 증명

2016.03.02
[얼음] 
창작 초연│2016.02.13. ~ 3.20│수현재씨어터 
작·연출: 장진│배우: 이철민·박호산(형사 1), 김대령·김무열(형사 2) 
줄거리: 여섯 토막으로 살해당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용의자로 열여덟 살 소년이 잡혔다. 그를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가 있다. 소년과 두 형사의 이야기다.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이 등장한다. 

★★★☆ 적중과 반전의 균형감 
‘여섯 토막으로 살해당한 여자의 시신과 용의자’라는 문장에서 많은 관객은 수사물을 떠올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용의자와 피해자가 존재하고, 범죄 과정을 밝히는 형사가 있으니 연극 [얼음]이 수사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장진 작가는 “목적이 분명한 작품 대신 그저 쓰고 싶어서 썼다”는 말처럼 범죄의 추리보다는 ‘허상’을 통한 극장성을 확인하는 데 더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관객의 기대와 작가의 시도가 충돌하지만, 덕분에 관객은 새로운 경험을 얻어가고 장진은 몇 년간의 부침을 일정 부분 털어낸다. 

Playwright: ‘대중’ 작가 장진의 증명 
무대에는 형사 역의 두 배우만이 등장한다. 용의자 소년은 형체가 없고, 형체가 없으니 소리나 대사도 없다. 빈 의자를 어떤 인물로 상정하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상상해 구체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형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진은 독특한 형식을 부각하기 위해 통속적인 서사와 전형적인 인물을 배치한다. 서로 호감을 가졌던 용의자와 피해자, 인자한 듯 보이지만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선배 형사와 거칠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후배 형사, 욕설과 폭력 진압 등 경찰을 향한 대중의 불신. 여기에 전혀 다른 성격의 두 형사가 벌이는 투닥거림이 버디물을 연상시키고,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피식하고 웃게 하는 코미디도 있다. [얼음]은 자극적인 소재로 관객의 시선을 붙들고, 전형적인 내용으로 몰입감을 높여, 끝내 독특한 형식 자체를 납득시킨다. 장진이 왜 대중 작가로 매력적인가를 증명하는 작품. 

Format: 극장에서만 가능한 무언가
그렇다면 작가가 그토록 납득시키고자 했던 형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무대 예술만이 가진 정체성의 확인이다. 현재의 [얼음]은 장르적으로 봤을 때 많은 부분이 헐겁다. 통속적 스토리와 전형적인 캐릭터는 너무 쉽게 다음이 예측되고, 모두 제거된 용의자의 말은 수사물에서 기대하는 명쾌함을 주지 못한다. 특히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4장의 경우, 가장 많은 것이 얘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것이 비어 있어 모호하게 끝난다. 수사물로 이 연극을 따라온 관객들에게 이러한 결말은 마치 작가의 배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극장 예술이 모두의 암묵적 동의 안에서 많은 것이 허용되고 관객의 상상으로 빈틈을 메우는 매체인 만큼, 관객이 80여 분간 구축해놓은 소년의 캐릭터에 따라 범인이 다르게 그려지는 4장이야말로 장진이 구현하고자 한 극장성의 진수다. 작가 역시 이 작업에 대해 “시나리오로 쓰였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것”이라 말한다. 이로써 [얼음]은 ‘연극은 관객으로 완성된다’는 문장을 가장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Actor: 초기 김무열의 부활
비운 곳에 생긴 짐들은 결국 무대 위 배우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용의자는 두 배우의 시선 처리와 리액션·자문자답만으로 구체성을 가져야 하며, 스토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형사와 용의자의 독대는 모놀로그와 다름없다. 3인극 같은 2인극이자 1인극인 [얼음]은 배우의 현재를 점검하는 방식으로도 쓰이는 셈이다. 특히 김무열에게 있어 [얼음]은 다양한 자극제가 됐다. 연극 [미친 키스](2007) 이후 공식적인 연극이자 뮤지컬 [쓰릴 미](2010) 이후 6년 만의 소극장 무대로 돌아온 그는 슈트와 제복 대신 점퍼 차림으로 등장해 날것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친 화법, 능청과 수줍음을 오가는 코미디는 바르고 책임감 있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김무열의 초기 뮤지컬 작업을 떠오르게 한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복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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