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오브라이언의 인기가 놀랍다고?

2016.02.22
유튜브를 오래 들여다본 보람이 있다. 기업도, 정부도 아닌 ‘써니 리’라는 이름의 팬이 성사시킨 코난 오브라이언의 한국 방문은 5일간의 신나는 축제가 되었다. 각종 SNS를 통해 그가 직접 행적을 공개할 때마다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길거리 인형 뽑기부터 공중파 드라마 출연까지, 속성 코스로 한국을 경험한 코난은 19일 많은 팬의 아쉬움 속에서 자신을 꼭 닮은 인형을 안고 출국했다. 부러움과 질시를 한몸에 받았던 애완 낙지 사무엘은 수족관에 맡겨둔 채. 이 모든 일이 TBS [코난]이 한 번도 방영된 적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론상으로는 놀랍지만 먼저 내한했던 켄 정이 이미 코난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았던가. 한국에서는 무명이라는 경고를 단단히 받았지만 역시 큰 환영을 받았던 그의 말처럼 인터넷의 시대에 엔터테인먼트는 국경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미 펄론과 지미 키멜, 스티븐 콜베어 등 다른 토크쇼 호스트들 역시 상당수의 한국 팬을 확보하고 있다. 정식 방영된 적이 없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코난은 약 72%의 미국인들이 알아보는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지만 시청률로만 따진다면 [코난]의 순위는 뒤에서 세는 게 빠르다. 좋아하는 배우의 재미있는 인터뷰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초대 손님과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기는 재간둥이 지미 펄론이나 정교한 장난과 콩트에 능한 지미 키멜을 찾는다. 날카로운 정치 풍자는 다시 돌아온 스티븐 콜베어나 존 스튜어트의 뒤를 이은 존 올리버가 전문가다. 코난은 이 중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유명인들과 사적인 친분을 쌓기에는 너무 어색하고 계몽의 깃발을 들기에는 너무 조심스럽다. 코난이 편안해 하는 소재는 자기 자신뿐이다. 그는 관심 없는 게임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다며 부하 직원을 구박하고 힘없는 인턴들에게 거들먹거리며 프로듀서이자 친구인 조단 슐랜스키를 괴롭히며 즐거워한다. 유명인 초대 손님들 앞에서보다는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려 놀 때 더욱 생기가 넘친다.

화려한 할리우드의 일원이 되기에는 너무 엉성하지만 직원들은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일반인들에게는 어쨌든 TV에 나오는 연예인. 코난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그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늘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가장 지켜보기 편안하다. 날카로운 자기 객관화 능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전 매사추세츠 브루클라인 출신이죠 / 보스턴의 부유한 교외지역입니다 / 자라면서 참 힘들었어요 / 대부분이 상류층인데 우리는… 중상류층이었거든요.” 2010년 충성을 바쳐 온 NBC에게 공개적으로 배신을 당하고 TV 출연이 금지되자 전국 투어에 오른 코난이 첫 무대에서 부른 자작곡의 가사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도 자신은 결국 특권층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IQ 160에 하버드를 졸업한 백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힘을 잘 알기에 그는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되 약자는 절대 비하하지 않는다. 두루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원칙을 버려가면서까지 값싼 웃음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코난은 먼 길을 달려온 어린 팬이 무심코 유대인 비하 발언을 내뱉자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렇듯 외적으로는 부드럽게 그러나 내적으로는 엄격하게 작동하는 필터가 있기에 그의 ‘애정을 갈구하는 나르시시스트 1세계 백인 남성’ 페르소나는 늘 무해한 즐거움을 준다.

‘메타의 왕’ 코난이 수십 년간 많은 업데이트를 거치며 정교하게 갈고 닦아 온 이 무해함은 먼 한국 땅에서도 그의 인기가 꾸준히 치솟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갈수록 코미디 팬들에게 혹독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코디의 실수에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퍼붓고 여성과 장애인을 공개적으로 비하해 온 사람들은 아직도 ‘뼛속까지 개그맨’이고, 약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을 재생산하는데 일조하는 잔인한 농담에 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눈 돌릴 곳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이민 2세대 비서 소나와 함께 아르메니아를 방문해서 아픈 역사에 대해 배우고 그의 가족들에게 약속한 대로 카펫을 사오는 코난을 재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정말로 놀라운 일일까. 한국을 찾은 그에게 쏟아진 환영 인사는 그래서 열렬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도 몰랐겠지만 그것은 수년째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피소를 운영해 온 코난에게 한국의 코미디 난민들이 보내는 감사 인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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