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극장에서 황정민의 얼굴만 봐야 한다는 것

2016.02.17
* 영화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 [검사외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4년 12월 개봉한 [국제시장]부터 2016년 2월의 [검사외전]까지 1년 3개월 동안, 황정민 주연의 영화 네 편은 4천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국제시장]과 [베테랑]이 각각 1420만과 1340만, 그나마 흥행이 저조한 [히말라야]가 760만이다. [검사외전]은 개봉 10일 만에 750만을 넘겼고, 추세대로라면 곧 천만 관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모두 황정민이 연기하는 중장년층 남자의 고난기다. 네 작품의 남자들은 일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다 아내와 갈등을 빚거나, 결혼을 못 한 것처럼 묘사된다. 술은 일반적으로 소주를 마시고, 바쁘게 사느라 세상 물정도, 아내와 자식 마음도 잘 모른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일하며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동료 목숨을 구하거나 [베테랑]의 형사 서도철과 [검사외전]의 검사 변재욱처럼 사회 정의에 기여하며, [히말라야]의 산악인 엄홍길처럼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황정민’이라는 이름의 장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는 1년 3개월 동안 한국의 평범한 중장년층 남자가 작은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2014~2015년, 한국의 영화관에는 2억 1507만(2014)과 2억 1730만(2015) 명이 오고, 그중 1억 770만(2014), 1억 1294만(2015) 명이 한국 영화를 봤다. 한국에서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역사상 17편인데, 그중 7편이 2014~2015년 2년 동안 나왔다. 전 국민이 영화를 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산업에서, 40대 이상의 관객층은 인구 비례와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에서도 점점 더 큰 비중의 관객층이 되고 있다. 황정민은 이 현상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아버지 세대를 위해 만들었다”고 할 만큼 지금의 노년층을 주인공으로 했고, [히말라야]의 소재인 등산은 지금 중장년층 이상이 광범위하게 즐기는 취미다. 홍보가 아닌 제작부터 관객에 대한 마케팅이 철저하게 이뤄지고, 그 결과 대상이 되는 관객들이 영화를 본다.

황정민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관객에게 체감시킨다. [달콤한 인생]부터 [신세계]까지 보여주었듯, 그는 웃는 얼굴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음험함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네 편에서 언제나 순박한 얼굴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착해서 순박하고, 순박해서 잘 모르고, 잘 몰라서 답답하지만 결국 무언가를 이뤄내는 남자의 얼굴. [국제시장]의 덕수는 죽은 아버지를 향해 자신이 잘하지 않았냐며 울먹였고, [베테랑]·[히말라야]·[검사외전]의 남자들이 한 일은 세상의 화젯거리가 된다. 한국의 중년 남자가 자신이 한 일로 가족 또는 세상에게 인정받는 과정. [검사외전]은 영화 초반 변재욱이 모함받는 과정을 통해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듯하다가 중반부터 변재욱과 한치원(강동원)의 경쾌한 사기극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만화가 박인권 등 이른바 ‘극화’로 분류되는 만화가들의 범죄물 서사와 유사하다. [검사외전]은 만화 대여점에서 그것을 읽던 남자들이 영화를 보는 것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요즘 등장했다. 달라진 시장이, 황정민의 얼굴을 바꾸었다.

이 변화는 한국 영화를 과거와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검사외전]은 시작부터 캐릭터를 글로 친절하게 푼다. 각각의 신은 분노, 웃음, 긴박감 등을 따로 나누어 전달한다. 천만 명 중 단 한 명도 어려워하지 않을 만큼 쉽다. 오히려 스토리의 허술함은 쉽게 넘어간다. [검사외전]의 제작자, 사나이 픽쳐스의 한재덕 대표가 “허술한 만듦새를 내가 모르겠나. 스토리가 약했기 때문에 캐릭터 영화로 막판 편집”([뉴스엔])했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쉽게 만드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고, 완성도가 떨어져도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은 늘 있다. 그러나 1년에 천만 영화가 몇 편씩 나오는 시대에 성공의 기준은 2~300만이 아닌 6~700만이 됐고, 이것은 특정 세대나 취향만을 노리는 것으로 불가능하다. [베테랑]은 중년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되 대중이 쉽게 감정이입 가능한 권력형 사회 비리를 소재로, 여자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유아인을 캐스팅했다. [검사외전]도 이와 비슷한 틀에 유아인의 자리에 강동원이 출연했다. 그러나 황정민처럼 유아인과 강동원도 작품이 바라는 중심 시장의 세계에 맞춰야 한다. 유아인은 악랄한 재벌 후계자를, 강동원은 여자들을 유혹하는 사기꾼이 된다. 황정민이 여자와 대화에 서투르지만 마음만은 착하다면, 두 배우는 외모나 화술이 매끈하지만 인성은 좋지 않다. 물론 이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유아인은 [베테랑]을 통해 자신의 연기 폭을 넓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치원의 특기는 ‘생각 없는 여자’를 ‘후리’는 것이고, 영화에서 ‘생각 없는 여자’란 “군대 간 남자친구”가 있지만 한치원의 외모와 사기 친 학력에 넘어가는 여자다. 강동원은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그러나 강동원이 [검사외전] 같은 작품에 출연할수록, 그를 좋아하는 여자 관객층이 바라는 작품에 출연할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검사외전]은 설 연휴였던 지난 6~10일까지 상영 점유율 50%대(영화진흥위원회 기준)로 스크린 독점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스크린당 관객 점유율도 비슷한 비율로 1위였다. 한 영화가 이만큼 상영되는 것은 명백한 문제지만, 단지 스크린이 많아서 많이 봤다고 할 수만은 없다. [검사외전]의 흥행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을 관객들에게 줄 가장 큰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캐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의 인기 배우와 감독이 [캐롤] 같은 영화를 찍을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천만 영화를 노릴 수 있는 시대에 대형 제작 및 배급사들은 여러 편의 영화에서 각각의 취향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한 편의 흥행작에 여러 취향을 포함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인 방향은 그중 가장 많은 수의 취향에 맞춰진다. 그 결과 황정민의 얼굴이 변했다. 강동원도 조금은 달라졌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배우와 감독과 작가는 점점 더 당신이 원하는 작품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당신이 가장 다수의 취향에 속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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