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넛,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2016.01.25
며칠 전, 한국에서는 ‘Indigo Child’라는 곡이 공개되었다. 저스트 뮤직이라는 레이블 소속 멤버 중 바스코, 블랙넛, 씨잼, 천재노창 네 사람이 함께한 곡이다. 이 곡에서 블랙넛이 쓴 가사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두고 많은 힙합 팬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여성혐오, 세월호 언급 때문에 가사는 더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고 래퍼 제리케이를 비롯한 몇 사람이 직접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가사는 실제로 노골적이며 다분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Pac, Biggie처럼 되고 싶은데 힘들면 말해 대가리에 총 쏴줄게 bitches”,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 보고 딸 쳐봤지 물론 보기 전이지 언프리티”, “김치녀의 젖보다 내가 대단한 게 아냐”, “감추지 마 니 진심 치매 걸린 노인 똥구녕처럼 drop your shit easy”, “니가 진짜 걱정하는 건 추락하는 니 위치지 아니잖아 세월호의 진실이” 등 가사 전체가 보는 이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그런데도 블랙넛을 옹호하거나 그의 표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블랙넛을 정당화하는 이유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찌질함을 드러내기 위한 위악이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쓴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블랙넛의 가사가 ‘의미 전달을 위해 모험을 강행한 것’에 그친다고 볼 수 있을까?

우선 가사를 두고 이야기하며 개인의 도덕적 수준을 비판하기 이전에, 이 가사는 작품 자체로서도 아쉬움이 많다. 무리한 표현을 통해 바닥을 드러내고 자신의 단점을 노출하며 그것을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솔직한 게 아니라 표현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타인의 위선을 지적하고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내고자 할 때 의도든 아니든 그런 표현을 선택한다는 건 랩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다. 이는 도덕적 문제인 동시에 가사를 쓰는 정성의 문제다. 또한, 가진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고 해도 개인이 자신을 드러내는 지점은 컨트롤할 필요가 있고, 그건 최소한의 예의지 자기검열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블랙넛이 말하고자 하는 게 ‘사석에서의 나쁜 농담을 나는 밖으로 꺼낼 수 있기에 너희와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라면, ‘너희는 나쁜 농담을 하고 다닌다’며 지적하는 것이 건설적인 방향이지 ‘난 밖에서도 나빠’라고 하는 건 앞뒤가 다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본질은 나쁘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키디비를 성적으로 모욕해놓고 ‘이게 솔직함이다’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도 문제일 수밖에 없다. 나쁜 생각은 누구나 다 하는데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해선 안 되는 것이며 혼자 생각만 하고 말아야 할 것이다. 하필 국힙 ‘여’초딩일 이유는 또 뭘까? ‘bitch’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랩이 안 되는 걸까? 꼭 여성, 노인을 비유에 써야 하고, 세월호를 이런 식으로 언급해야 하는 걸까?

이는 비단 블랙넛만의 문제는 아니다. 블랙넛은 가사에서 ‘김치녀’라는 단어를 쓰고, 그것은 굉장히 피동적인 선입견으로 여성을 ‘가상의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또한 찌질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가사에 대해서는 위악, 위선 차원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좋지 못한 방식으로 생각을 풀어나가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모두에게 좀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힙합 음악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는 성공 서사가 아닌 실패한 서사, 평범한 서사 등 실제 서사 그 자체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사의 흐름이 이동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 비하의 어조나 센 이야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자기과시의 문법마저도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 래퍼들의 서사는 그런 흐름은커녕 ‘성공’에 관한 기준이나 가치, 정서에 관한 논의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수많은 자기과시의 방법 중에서 유독 ‘재력’에 집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힙합 내에서의 문법 중 하나가 남성성 강한 자기과시라고 생각한다 해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겁하고 못된 태도다. 하지만 래퍼들은 여전히 ‘게이 래퍼’라는 말을 포함해 고민 없이 단어를 선택한다. 한국 힙합에서 발견되는 가사의 문제는 곧 한국 사회가 가진 남성성의 문제와 결부된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남성성’을 추앙하는지와 그들이 자기과시를 하는 방식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힙합은 자유라며, 그래서 자신의 폭력적이고 불편한 가사는 그저 과감하고 솔직한 것이라며 항변하는 이들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는 표현을 제한하고 정치적으로 옳은 것에 집착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명확하지 못한 광역 저격으로 자신이 멋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태도는 그만큼 기억에 남지도 못한다. 적어도 비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에둘러 얘기하지 말고 직접 말하는 게 낫다. 멋을 떠나, 사람이 해선 안 되는 게 있다.

블럭
프리랜서 에디터, 기자, 기고하는 사람. [힙합엘이], 여성주의저널 [일다], [아이돌로지] 등 여러 매체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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