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업계에서 동성애는 흥행 코드일뿐인가

2016.01.20
연극 [프라이드]와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부터 뮤지컬 [헤드윅]이나 [쓰릴미], [라카지], [렌트]까지 동성애가 내러티브의 중심축이 되는 작품이 국내에서 제법 많이 공연되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게이(gay) 문화는 브로드웨이의 정체성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서다. 창작자는 물론 배우, 제작자,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종사하는 남성의 다수가 게이이며, 관객 분포에서도 게이 관객은 관광객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로드웨이에는 에이즈에 감염된 동료들을 위해 ‘브로드웨이 케어즈/에쿼티 화이츠 에이즈(Broadway Cares/Equity Fights AIDS)’라는 비영리 단체가 운영될 만큼 동성애에 대한 지지는 공연계 전체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2005년 [헤드윅]의 라이선스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공연계에서도 동성애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공연계는 한 사람이 겪어야 했을 혼란과 아픔에 대한 공감보다는 여장을 한 남자배우에 더욱 주목했으며, 배우나 관객들도 극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한 듯했다. 물론 뉴욕에서 일하던 필자가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인지도 모른다. 동성애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국내에서는 무거운 주제보다는 감각적인 코드로 먼저 소비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실제 게이가 아닌 배우들이 동성애자의 낯선 삶을 연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도 짐작은 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국내 공연계에서 동성애는 정서로 이해되기보다는 장치로서 소비되고 있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몇몇 배우나 스태프들의 경솔한 발언이 종종 도마 위에 오른다. 얼마 전에는 모 배우가 출연 중인 공연의 포토북에 이성애자 배우로서 동성애자를 연기하는 어려움을 토로해 논란이 됐다. 쉽지 않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배우다. 그가 밝힌 소회에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존중이 빠져있다. 역할과 작품에 몰입하기는커녕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동성애를 이해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그의 글에서 놀라움을 넘어서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 글을 고스란히 실은 제작사의 생각도 궁금했다. 시장이 채 무르익지 않았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만들고 연기하는 사람들은 더 세심하게 작품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헤드윅]의 국내 초연 당시, 뉴욕의 한 공연 프로듀서는 “한국에도 [헤드윅]을 좋아할 게이 관객이 많이 있냐?”고 질문했다. 이 한 마디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고 수용되는 방식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에서 [헤드윅]은 게이 관객을 타깃으로 기획된 작품이 아니다. 다른 작품들도 비슷하다. 국내 공연시장에서 연극과 뮤지컬은 작품의 성격을 불문하고 20~30대 여성이 주요 소구 대상이며, 배우의 티켓파워에 대한 고민은 고질적이다. 결국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은 정작 가장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의식, 주인공의 혼란과 갈등보다는 ‘이번에 동성애를 연기할 배우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자극적으로 생산되고 감성적으로 소비된다. 철저하게 이성애자의 시각에서. 멀티캐스트 배우들의 페어를 조합하는 것에서부터 동성애 자체를 마케팅의 화두로 삼는 제작사의 기획도 이러한 양상을 부추긴다.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아직 이르다는 것은 안다. 라이선스 작품이기에 국내 시장에 맞춰 적절한 로컬라이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작품의 본질을 흥행을 위한 장치로서 희석시키는 것은 원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욱 다양한 작품이 창작될 국내 시장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공연을 아끼는 이들만이라도 연극과 뮤지컬 속 동성애를 전략적 코드가 아닌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정서이자 삶의 일부로서 더욱 섬세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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