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 레베카의 움직이는 맨덜리 저택

2016.01.20
[레베카]
라이선스 재연│2016.01.05 ~ 03.06.│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작: 미하엘 쿤체│작곡: 실베스터 르베이│연출: 로버트 요한슨│배우: 류정한·민영기·엄기준·송창의(막심), 신영숙·차지연·장은아(댄버스 부인), 김보경·송상은(나)
줄거리: 불의의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막심 드 윈터는 몬테카를로 여행 중 우연히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막심의 저택인 맨덜리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 당신도 모르는 사이 중독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레베카]는 한국에서 성공하는 대극장 뮤지컬의 조건을 모두 갖췄다. 시원하게 질러주는 중독성 강한 음악이 있고, 역경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가 있으며, 화려한 무대 효과도 있다. 여기에 레베카의 죽음, 댄버스 부인의 정체, 막심의 감정기복을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설명한다. 세트와 음향, 조명 등 무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서스펜스를 위해 움직이고, 덕분에 관객은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레베카를 제목으로 내세운 만큼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자체가 중요하고, 이를 탁월하게 구현해낸 것도 틀림없다. 하지만 시간을 압축해 표현하는 뮤지컬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막심과 ‘나’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개연성 빈틈은 이후 전개되는 사건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며 스토리 안에서 종종 길을 잃을 때가 있다.

Stage: 레베카의 움직이는 맨덜리 저택
의문의 존재는 ‘맨덜리 저택’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통해 구체화된다. 저택의 안주인으로서 모든 공간과 인물을 지배해왔던 레베카는 사후에도 그의 사고를 이어받은 댄버스 부인을 통해 보존된다. 레베카의 취향을 반영한 각종 소품은 3중으로 켜켜이 쌓여 공간에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가장 높은 곳을 포함해 곳곳에 새겨진 ‘R’은 저택과 객석을 장악한다. 상황에 따라 감추거나 비추는 조명과 비·스모그·미풍 등은 무대 전반에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에 “Rebecca”로 들리는 파도 소리가 객석 뒤편에서부터 시작되면 관객은 4D 영화 같은 생생함을 경험하게 된다. [레베카]의 정교한 세트는 2013년 초연부터 꾸준히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스케치를 이용한 영상과 세트의 완벽한 전환은 이 뮤지컬이 ‘나’의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작품임을 확실히 하는 한편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Music: 당신의 귀까지 장악할 레베카의 망령
앞서 지적한 스토리의 빈틈을 완벽하게 메우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클래식에 바탕을 둔 실베스터 르베이의 음악은 우아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차르트]의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나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 등은 뮤지컬을 떠나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도 탁월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언더스코어를 포함해 다양한 버전으로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레베카’가 대표적이다. 그중 댄버스 부인과 ‘나’가 부르는 긴 버전의 경우 묵직한 진성 샤우팅 발성과 맑은 소프라노의 성악 발성을 통해 두 여자의 상반된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 곡은 2막 1장에 배치됨으로써 느슨해진 관객을 다시 극으로 끌어들이는 영리함까지 발휘한다. 레베카의 망령은 당신의 귀까지도 점령한다.

Actor: 댄버스 부인, 여배우 제2막을 여는 열쇠
레베카를 향한 광기에 가까운 사랑과 ‘나’를 향한 증오로 빚어진 댄버스 부인은 여기에 넓은 음역대로 연기와 노래 모두에서 섬세함을 요구받는다. ‘공주 아니면 창녀’라는 뼈 있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빈약한 뮤지컬 시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 덕분에 댄버스 부인은 여배우의 잠재된 능력을 캐낸다. 특히 신영숙의 경우 2010년 [모차르트!]의 남작부인으로 다시 주목받은 후 [레베카]로 자신의 위치를 다졌고, 옥주현 역시 [레베카]를 통해 [엘리자벳]에서 보여준 우아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얼굴을 보일 수 있었다. 올해 새롭게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차지연의 경우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보여준 그로테스크함으로 신영숙, 옥주현과는 다른 공포의 존재로 무대에 선다. 막심 역시 ‘칼날 같은 그 미소’를 통해 신사의 여유로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불안함을 노래하며 자신을 어필한다. 서슬 퍼런 댄버스 부인과 감정기복 심한 막심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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