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쟁], 언제까지 엄마만의 전쟁입니까

2016.01.11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는 현대인, 특히 여성의 시간 활용에 대한 자신의 책 [타임 푸어]에서 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육아휴직이나 단축근무를 얻어내기 위해 싸우는, 또는 집에 머무르며 주 양육자 역할을 맡으려는 남성들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 중이던 그에게 옆에서 듣고 있던 84세의 아버지가 충고한다.
“네가 이해를 잘 못 하는 것 같구나. 남자들의 인생에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의사가 될까? 변호사가 될까?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같은 것들을 결정해야 해.”
“그러면 아빠, 여자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1월 3일 방송된 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 1부 ‘이상한 나라의 엄마들’은 슐트의 반문을 떠올리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맞벌이를 하는 대기업 대리 양정은 씨의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은 직장에서 “굵고 길게 가고 싶다”고 말하고, 간호사로 더 나은 경력을 쌓고 싶어 하는 아내 남궁정아 씨에 대해 그의 남편은 “그냥 가늘고 길게 다니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 남편은 모두 ‘가정을 위해’라는 이유를 든다. 그 결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해 퇴근 직후 다시 가사와 육아에 투입되는 양정은 씨는 평균 밤 11시에 귀가하는 남편이 외국어를 공부하며 자기계발을 하는 동안 밀린 설거지와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고, 남궁정아 씨는 교대 근무 지속이나 대학원 진학 등 자신의 계획에 대한 남편과 시부모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남편들과 달리 끊임없이 선택과 포기를 강요받으며 갈등하는 아내들에게 제작진은 묻는다. “본인은 여자예요, 엄마예요?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여자(일)’와 ‘엄마(육아)’는 공존할 수 없는 정체성인가. 왜 여성은 ‘어느 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가.

“여성의 ‘새로운 자유’와 아이는 서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이제 아이를 갖는 것이 직업적으로나 사회적 경제적으로나 생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아이 문제 – 아이냐 독립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성])고 분석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남성들과 거의 동등하게 교육받고 경쟁하며 ‘이상적인 노동자’가 될 것을 권장받았던 20~30대 여성들은 출산과 동시에 ‘이상적인 엄마’의 역할을 갑작스레 요구받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는 남성의 노동과 달리, 여성의 노동은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니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편견이나 남성에 비해 대체로 낮은 소득은 여성이 일 대신 육아를 선택해야 할 ‘타당한’ 이유로 제시된다. “어릴 때 엄마 사랑을 더 받아야 한다”, “돈보다는 아이가 중요하지 않느냐” 등 죄책감을 자극하는 목소리들은 주 양육자로서의 책임을 여성에게 자연스럽고도 교묘하게 전가한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어린이의 발언 위로 “엄마를 찾습니다. 모든 걸 용서할 테니 제발 내게 돌아오시오”라는 자막을 띄우거나, 출연자에 대해 “병원에서는 ‘프로 간호사’이나 집에서는 ‘아마추어 아내이자 엄마’”라고 소개한 [엄마의 전쟁] 역시 이들을 향한 책망에 은연중에 동조한다. 

그러나 직장이 있는 도시에 집을 구해 유지하는 것이 노동소득만으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자녀의 교육비를 비롯한 미래의 지출 증가에 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가계에 커다란 위험요소다. 고용 불안과 소득 불안정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남성의 외벌이에만 가족의 생계를 맡길 수도 없다. 여성이 일을 놓을 수 없는 데는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들이 작용하고, 결국 노동자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여성들은 극도의 노동 강도와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의 ‘바쁨’에 대해 연구한 [기획된 가족]의 저자 조주은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원에 다녔던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 시간을 다른 사람의 세 시간처럼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그가 인터뷰한, 남편과 비슷한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며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들은 남편을 최소한의 가사노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갈등하고 필요한 전략을 세우며 ‘맹훈련’ 혹은 ‘가르치는’ 시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이상적인 노동자’와 ‘이상적인 엄마’ 사이에서 역할갈등을 겪는 동시에 파트너인 남성을 가사와 육아에 참여시키기 위해 별도로 노력해야 하고, ‘맘충’이라는 혐오 프레임에 자신이 해당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까지 새로 떠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남편에게는 누구도 ‘남자냐, 아빠냐’고 묻지 않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민폐 끼치는 아빠’를 가리키는 신조어는 유행하지 않는다. 양정은 씨와 남편은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의 가사 참여도는 5% 정도에 불과하고 부부의 일상은, 인생의 목표는 지극히 다르게 구성된다. 남궁정아 씨의 남편은 “가족을 위해서 포기한 게 뭐가 있어?”라며 아내를 질책했지만 여성은 이미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상당한 체력적 손실을 겪고, 출산 후에도 한동안 수유를 비롯한 돌봄 노동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과중한 노동시간, 보육정책과 시설의 문제 등 사회 구조의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가정 내에서의 가사와 양육 분담이 공정해지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의 불균형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UN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15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 평균 2.5명의 절반에 그쳤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 출산율이 1.19명(2014년 기준)으로 지속될 경우 2750년이면 한국 인구가 소멸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는 데는 다양하고도 엄청난 양의 자원이 필요하고, 그것은 부부와 국가가 나누어 져야 할 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많은 짐이 ‘엄마’ 한 사람에게 가중되어 있다. [엄마의 전쟁]이 들려준 것은 어떻게든 그 무게를 감당하려다 무너지기 직전에 이른 여성들의 비명과도 같다. 함께 가정을 이룬 파트너도, 노동인구를 계속 필요로 하는 시스템도 이를 나누어지려고 하지 않는 한 혼자 지기엔 버거운 짐을 애초에 지려 하지 않는 여성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명제가 “부부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로 전환되고 이 사회가 계속 지탱되기를 바란다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이제 와서 새삼 바뀌고 싶지 않다면 그냥 서서히 예정된 소멸의 길로 향하는 수밖에. 행복하지 않은 개인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국가가 굳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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