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송], ★★★☆ 모든 외로운 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롤

2015.12.23

[엘리펀트 송]
라이선스 초연│2015.11.13 ~ 2016.01.31│수현재씨어터 
작: 니콜라스 빌런│연출: 김지호│주요 배우: 박은석‧정원영‧이재균(마이클), 김영필‧정원조(그린버그), 정영주‧고수희(피터슨)
줄거리: 크리스마스이브,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그린버그는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료 의사 로렌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마이클을 찾는다. 환자 마이클은 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열쇠지만 알 수 없는 코끼리와 오페라 얘기만 늘어놓는다. 진실을 담보로 자신의 진료기록을 절대 보지 못하게 하는 마이클과 점점 그의 게임에 말려드는 그린버그 박사. 수간호사 피터슨은 그린버그에게 그와의 게임을 조심하라며 여러 차례 경고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이클과 위험한 계약을 하고 마는데…. 

★★★☆ 모든 외로운 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롤 
최근 대학로에서 큰 인기를 얻는 연극들은 주로 외로움과 자존감을 다룬다. [엘리펀트 송]은 [프라이드][스피킹 인 텅스] 등 비슷한 정서를 다룬 작품 가운데서도 극단적이다. 애정결핍이 야기하는 결과는 셋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다양한 복선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스무고개 하듯 이어지는 극의 형식은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높은 집중도를 요구한다. 세 배우의 밀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이 형식에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면 극 안으로 흡수되기 어렵다. 대신 사건과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소년과 중년남성의 대화 끝에 발견되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무겁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Movie or Play?: 같은 듯 다른 영화와 연극 
올해 개봉한 자비에 돌란 주연의 동명 영화는 연극을 베이스로 제작됐다. 하지만 ‘로렌스 박사의 실종’이라는 동일한 소재는 두 영역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였다. 영화는 마이클과 그린버그의 대화 끝에 그린버그와 피터슨이라는 남겨진 어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쪽을 선택한다. 사건과 인물의 사정은 구체적인 얼굴을 띠고, 극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짜여졌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두 남자의 호흡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마이클이 겪는 심리적 고통 역시 희석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반면 연극은 마이클과 그린버그의 충돌에 집중하며 소년이 갖는 애정결핍의 근원을 찾아간다. 구체적인 시각보다는 실루엣과 청각을 이용한 연출적 기법은 상상의 폭을 넓히며, 관객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극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그 결과 ‘모성’에 대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난 어떤 가치를 갖고 있나?”라는 마이클의 질문에 관객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Format: 비애를 담은 한 편의 수사물
연극은 하나의 ‘수사물’처럼 보인다. 로렌스 박사의 실종이라는 사건이 있고, 마이클은 용의자가, 그린버그는 수사관이 된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은 취조실 유리 너머의 또 다른 목격자가 되고, 정신병원은 마음의 감옥과도 같다. 따라서 [엘리펀트 송]이 중요하게 구축해야 하는 정서는 바로 긴장감이다. 이 긴장감의 80%는 두 남자의 연기에 달렸지만, 연극은 안으로 점점 좁아지는 무대와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터치하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로 배우의 연기를 뒷받침한다. 형식적 독특함은 자칫 그 안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엘리펀트 송]은 게임 혹은 취조와도 같은 형식 안에서 마이클의 외로움과 깊은 상처를 천천히 드러내며 비애를 남긴다.

Actor: 배우의 새 얼굴을 발견케 하는 마이클의 힘
이 작품은 결국 마이클의 이야기다. 따라서 관객이 마이클에게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혐오적 발언을 위악적으로 뱉어내며 시선을 끈다. 소년은 때로는 당돌한, 때로는 순진한 얼굴을 보여주고, 관계가 쌓인 이후에서야 가장 여린 속내를 드러낸다. 환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남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 구애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수시로 가면을 쓰고 벗는 마이클 덕분에 관객은 배우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해낸다. 데뷔 후 줄곧 여러 다른 소년을 맡아왔던 이재균이 1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본능적으로 관객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해사한 얼굴에 광기를 담아 새 얼굴을 보여준다. 최근 이재균과 박은석은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관객을 만났지만, 이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진가를 명확하게 선보인다. 그러니 부탁이다. 무대에서 자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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