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명 “모든 변화를 몸소 겪고 있다는 게 재밌어요”

2015.10.28
인터뷰 하루 전날, 이건명은 브라질을 출발해 3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인터뷰를 위해 새벽부터 움직였고, 인터뷰 후에는 다음 작품의 연습이 있었다. 20년간 거의 쉬지 않고 뮤지컬을 했을뿐더러,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지방 소도시든 해외든 단발성 행사든 장기 공연이든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소년원 아이들을 후원하는 뮤지컬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지난 9월부터는 매주 토요일 라디오 게스트로도 출연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언제나 열심이다. 그 ‘열심’이 발산하는 캐릭터와 만나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 공연을 시작한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에서의 이건명은 많은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얘기를 하기보다는 남을 관찰하는 캐릭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이건명의 새로운 얼굴을 보았다.

[JSA] 제안을 2013년 워크숍 때부터 받았다고 들었어요.
이건명
: (양)준모랑 워낙 각별한데 준모 와이프 우리 맹 여사(맹성연)가 작곡을 했단 말이에요. 곡 쓰면서 제 생각을 많이 했다 하더라고요. 그때도, 그다음에도 스케줄이 안 돼서 못 하다가 올해 8, 9, 10월에 다른 스케줄이 하나 있었는데 마침 그게 딱 엎어진 거예요. 3개월을 백수로 있기엔 너무 길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구에 [투란도트]를 하러 내려갔죠. 공연 끝나고 고기 먹는 자리에 송광업이라는 배우가 있었거든요. 광업이 형이랑 누가 밖에서 얘기하다 들어오더니 갑자기 “너 나와봐!” 이러더라고요. 때릴 거야? (웃음) 알고 보니 그분이 [JSA] 대표였던 거죠. 전 타이밍, 운명 이런 걸 엄청 믿는데 이번이 딱 그런 케이스였어요. 대본을 고 하겠다고 정한 게 아니고 “할게요”라고 얘기를 한 후에 대본을 달라고 했어요.

대본을 보니 어떻던가요?
이건명
: 워크숍 때 자리가 없어서 2층 발코니에서 공연을 봤는데도 너무 재밌었어요. 이번 대본이 그때 대본과 변했으면 나 발 뺀다고도 했는데 (웃음) 봤더니 오히려 더 깊어졌더라고요. 사실 요즘은 답답한 이 세상에서 뭔가를 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제발 내 일만 할 수 있게 해주는 나라면 좋겠다 싶은데, 이 나라는 점점 더 변해가잖아요. 그래서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많이 받아요. [두 도시 이야기]도, [그날들]도, [삼총사] 할 때도 그랬어요. [JSA]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군비리가 얼마나 많아요. 몇 조 들여서 전투기 사 왔는데 그거 말짱 도루묵 되고.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사랑 이야기만 할 수 있겠어요. 배우로서 이 세상에 대해 뭔가를 얘기할 수 있음이 고맙죠.

원래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이셨나요?
이건명
: 사실 전 정치에 무심했던 사람인데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어. (웃음) [JSA]는 조건반사에 대한 얘기거든요. 72년생인 저는 북한군은 늑대라고 교육받고 자랐어요.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을 매일 외쳤고, 북한에 사람이 산다고 믿지 않았던 세대예요. 근데 그거 사실 아니잖아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보셨어요? 홍이와 효빈이라는 애가 탈북하는 거 봤어요? 그 어린 애들이 그 험한 길을 도망쳐 오는데 왜? 쟤네가 저렇게 살아서, 걔들을 잡으러 다니는 공안들이 저렇게 살아서 누가 행복한데? 누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행복할 사람은 몇 명 정해져 있어요. 그걸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하고 있단 말이죠. 현명해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알아가는 거니까.

분단이 많은 사회·개인적 비극을 만들어내지만, 과거만큼 이 사안에 대한 논의가 많은 건 아니잖아요.
이건명
: 물론 지금의 관객들이 제 시대 때만큼 북한에 대해 극단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JSA]가 어떤 메시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말하는 작품도 아니에요. 하지만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하거든요. “이 진실은 결국 밝히지 못하고 떠납니다.” 근데 공연 100분 본 사람이면 직접적으로 말 안 해도 알아요. [JSA]를 일본에서 했다면? 좋은 작품 아니에요. 브로드웨이에서? 웨스트엔드에서?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꼭 있어야 하는 공연이에요. 이 나라에는 어떤 이념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게 현재 몇몇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국정교과서 같은 형태라면 그게 사라질 때까지는 꼭 필요해요. 너무 많은 젊음이 희생되고 있으니까 그건 막아야 해요. 한 달에 두어 번은 군사고로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를 듣잖아요. 지뢰에 다리 잘린 장병들이 의족 달고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그들의 속을 생각해봤어요? 지뢰 밟고 다리가 없어졌어요. 내가 마흔넷인데 지금 다리가 없어진다면 인생 포기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20대에 다리가 없어졌어. 그게 말이 돼? 거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졌나요?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는 한 이 작품은 꼭 필요하고 우리 모두가 보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해요. 그래서 더 정이 가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네요. (웃음) 그동안 주로 대극장 공연을 했는데, [JSA]의 지그 베르사미는 관찰자이기도 하고 경계인이기도 해서 이건명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본 계기가 됐어요.
이건명
: 오래간만에 소극장에 와서 그런지 짜릿해요. 대극장에서는 표현을 가미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관객들이 계속 따라와 주니까요. 대극장에서는 내 소리로 그 엄청난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게 또 전율이고. (웃음) 대극장과 소극장을 왔다 갔다 하면 에너지가 상충되기 때문에 대극장 공연을 하면서도 소극장에 서고 싶어서 계속 곁눈질을 해왔죠. 이번 [JSA]가 여러모로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관찰자 역은 2000년 [렌트]의 마크 이후 굉장히 오래간만인데 이런 배역 좋아해요. 할 수 있는 게 좀 더 많아지거든요. 사실 이런 캐릭터들은 극에서 많이 도드라지면 안 돼요. 그래서 단순한 브릿지가 될 수 있지만 잘 이용하면 극이 원하는 지점까지 관객이 가도록 돕는 큰 계단이 돼줄 수 있어요. 그건 배우가 하기 나름이고 그러니 훨씬 더 재밌을 수밖에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뮤지컬이 훨씬 더 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유난히 주변인들이 죽거나 본인이 죽는 작품을 많이 하셨죠.
이건명
: 베르사미도 자신에게 총을 겨누던 아버지와 원수처럼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는 인물이에요. [프랑켄슈타인] 때는 내 부모가 죽었고, 내 누나가 죽었고, 내 집사가 죽었고, 내 와이프가 죽었고, 마지막엔 내가 만든 괴물마저 죽는단 말이죠. 한 작품에서 많은 사람이 죽은 거예요. 그런 작품 할 때는 미쳐버리는 거죠. 예전에 어떤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설경구 씨가 영화 촬영장에서 오열하는 장면을 찍고도 계속 오열하는 걸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제가 11년째 담배를 끊고 있는데 아주 가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을 때는 담배를 펴요. 10년 끊은 담배를 피게 만들 만큼의 상황을 우리도 겪고 있으니까. 근데 우린 영화랑 달라서 그걸 맨날 하잖아.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우린 빨리 죽을 거라고.

왜요?
이건명
: 엉엉 울다가 신이 바뀌면 감정을 확 눌러야 해요. 10년 전 [블러드 브라더스]를 할 때였는데 마지막에 제가 쌍둥이 동생을 쏘고 바로 경찰의 총에 맞아서 죽어요. 죽자마자 엄마가 노래를 시작하고요. 그때 저희가 가만히 있어줘야 방해가 안 돼요. 그런데 어느 날은 감정이 목 끝까지 올라와서 막 이상한 소리를 낸 거예요. 몸이 막 튀어 오르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죠. 아, 흐르는 강물을 이렇게 막고 있으니 난 빨리 죽겠구나. 근데 오래 살면 뭐해, 재밌게 사는 게 낫지. (웃음) 오랜만에 소극장 공연을 했더니 대학로 공연들에서 연락이 많이 와요. 너무 하고 싶은데 그것까지 하면 내가 쌍욕을 먹을 것 같아서 (웃음) 못하겠다고 한 공연이 있거든요. 캐스팅 발표되고 나니까 어찌나 배가 아프던지.

공연만 20년을 해왔는데도 여전히 하고 싶다는 의욕이 많으시네요.
이건명
: 미치겠어요. 그러니까 라디오도 하잖아요. 라디오가 예전만큼 대단한 파급력이 있어요, 대단한 돈을 줘요? 아니에요. 그런데 전 라디오 세대라 라디오에 대한 로망이 한도 끝도 없어요. 2달만 하기로 하고 들어갔는데 한 2회 해보니 재밌더라고요. 문지애 씨랑 죽도 잘 맞고. 그래서 몇 달 더 하기로 했어요.

에너지의 원천에 대한 질문 많이 받으시죠? (웃음)
이건명
: 저희 집이 아무리 가난했어도 음식점을 계속 했거든요. 태어났을 때는 근사한 고깃집을 했고, 그게 쫄딱 망해서 구멍가게를 하다 슈퍼마켓이 됐고, 그게 쫄딱 망해서 테이블도 없는 전기구이 통닭집을 했다가 그게 맥주집이 됐어요. 그리고 그게 쫄딱 망해서 어머니가 다시 시작하신 게 김밥 마는 거였고, 그게 도시락 공장이 됐어요. 그래서 전 어릴 때부터 삼겹살, 삼계탕 먹고 자랐어요. 도시락에는 불고기가 나가잖아요. 엄청 큰 솥에 음식을 한단 말이에요. 도시락을 다 싸고 난 후 국물을 떠보면 남은 소고기가 같이 올라와요. 우리 집에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국물에 밥을 말아서 줬어요. 개가 잘 먹는 집이었으니 저는 뭐 너무 잘 먹고 컸죠. 어릴 때 먹은 것들이 체력의 기본기가 되나 봐요. 근데 이제는 나이가 드니까 건강 잘 챙겨야 해요. 저 하루에 6즙 하거든요. 연습실이든 극장이든 꺼내놓고 하나씩 뜯어서 먹고 있으면 애들이 “또 즙 한다” 이래요. 혈액순환에 좋은 양파즙, 좀 있다 피로회복에 좋은 포도즙. (웃음)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게 2000년대 초반이란 말이죠. 그 전에 데뷔를 하신 거니 20년간 다양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명
: 가장 많이 변화한 건 상업성이죠. 대자본이 들어온다는 건 시장의 많은 것을 바꾼다는 거거든요. 일부 배우들의 몸값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그만큼 스타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얘기고,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도 소개될 수 있었어요. 젊었을 땐 제 이미지도 ‘젠틀’, ‘왕자’ 이런 걸로 한정되었었는데 점점 나를 봐주는 사람들도 그렇고 내 욕심도 그렇고 표현도 넓어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을 선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요즘엔 뮤지컬배우들이 여러 방면에서 매력을 발산할 수 있잖아요. (조)정석이도 그렇고 SBS [육룡이 나르샤]에도 여기 애들 많이 들어갔더라고요. 노래하는 예능이 많아져서 그런 곳에도 나갈 수 있고. 관객층이 늘어나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생겨난 변화들이죠. 걱정되는 건 예전에는 예술이 51이고 상업이 49였다면, 요즘은 좋은 말로 상업이 51이고 예술이 49지만 상업이 99고 예술이 1인 경우도 있거든요. 이건 위험해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변화는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거든요. 2010년에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했는데 거기서도 조나스 브라더스의 닉 조너스가 마리우스를 했단 말이죠. 카메론 메킨토시가 하는 건데도 그래요. 대한민국은 더할 수밖에 없어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고 어쩌다 보니 그 모든 것을 몸소 겪고 있는데, 재밌어요.

그런 변화 속에서 선배들이 잡아줘야 하는 중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이건명
: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뮤지컬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 부질없더라고요. 선배로서 뭘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냥 같은 배우로서 무대를, 연기를, 배우라는 명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동생들도 그걸 보기 때문에 따라오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뭔가를 하는 건 단 하나도 없어요. 내가 하는 일 100개 중 그들이 보기에 51개 정도가 눈에 차면 나는 좋은 선배가 될 거고, 그렇지 않고 내 일들이 시답지 않으면 그 반대가 되겠죠. 다행스럽게도 좀 열심히 살다 보니까 가끔은 나 때문에 자극받는다는 애들도 있고, “내 40대는 형 같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애들도 있어요. 쉬지 않고 작업하고 있고 에너지를 어디선가 늘 끌어내고 있으니까요. 전 제가 행복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뿐이에요.

많은 인터뷰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아서 행복에 대한 어떤 강박이 있는 줄 알았어요. (웃음)
이건명
: 뮤지컬을 택했던 20년 전에는 가난을 각오하고 이 일을 시작했단 말이죠. 지지리 가난했던 시기도 겪었고, 지지리 가난했던 그 시절에 하필 앙상블을 계속 해서 지지리 가난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주인공 반열에 올라갔고, 더 이상 지지리 가난하지 않아요. 배우는 자존감에 사는 사람들인데, 예전엔 일하고도 돈을 못 받은 적이 많았어요. 돈도 돈이지만 그런 제작자들이 뻔뻔하게 이 시장에 계속 있고, 대가를 못 받았으면서도 저 사람에게 밉보일까 봐 말도 못하는 내가 초라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니까. 배우의 자존감이라는 게 그만큼 높아졌죠. 가난을 무릅쓰고 뮤지컬배우를 선택한 사람이 일본에서 개인 콘서트를 한다? 이게 말이 돼요? 말 안 돼요. 그러니까 행복하죠.

행복의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이건명: 그냥 그건 진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나 연습해서 행복하거든요? 또 무대에 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연습이라는 과정은 되게 치열하고 언제나 편두통을 달고 살아요. 대신 거기서 좀 힘들어야 무대 위에서 커튼콜 때 ‘아싸! 오늘 공연 좋았나 보다’ 이렇게 설 수 있잖아요. 인간의 뇌는 멍청해서 광대가 올라가고 눈이 쳐진다는 것만으로도 엔돌핀을 준대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진리인 거죠. 그래서 운동할 때도 일부러라도 웃으면서 하거든요. 바보 같죠. 근데 그렇게 해야 근육도 멋있게 잡힐 것 같거든. (웃음) 생각해보니까 그거네. 내가 찾아가는 거, 만들어가는 거. 이 뒤의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거였네요.

글. 장경진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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