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닝 망켈과 쿠르트 발란데르에게 작별을 고하며

2015.10.12
ⓒDavid Shankbone

지난 10월 5일, 헨닝 망켈이 67세를 일기로 예테보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스웨덴 국적의 그가 ‘스칸디나비아 느와르의 대부’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쿠르트 발란데르 형사 시리즈 때문이었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매년 한 권씩, 그리고 10년 뒤인 2009년에 마지막 한 권을 더하여(번외 편 같은 중편 소설이 한 권, 발란데르의 딸 린다가 주인공인 소설이 한 권 더 있기는 하다.) 총 10권으로 완성된 발란데르 시리즈는 처음에는 스칸디나비아에서, 다음에는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40개 언어로 번역되어 4,000만 부 이상 팔렸다. 스웨덴에서 두 번, 영국에서 한 번 드라마로도 각색되었는데, 명배우 케네스 브래너가 주인공을 맡은 영국 드라마 때문에 이제는 ‘발란데르’가 아니라 ‘월랜더’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전형적인 경찰 수사물이다. 스웨덴 남부 말뫼 근처의 작은 도시 위스타드에서 일하는 발란데르를 중심으로 대여섯 명의 동료들이 크고 작은 범죄를 해결해가는 이야기들이다. 사건들은 사소하게 시작했다가도 사회성 짙은 문제로 확장될 때가 많고, 그리하여 부유한 복지국가 스웨덴의 배경에 깔린 인종주의, 권력과 자본을 가진 엘리트들의 천박한 카르텔, 이민자와 여성과 아이가 겪는 일상적 폭력, 사민주의의 꿈이 한풀 꺾이고 공동의 이상이 사라져 나아갈 갈피를 잃은 사회를 묘파하게 된다. 일상적 사건으로부터 외국인 혐오, 성범죄, 약물 중독, 경제 비리, 정치적 음모까지 다양한 범죄가 등장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경찰들에게 딱히 천재적 재능이나 최첨단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현장을 관찰하고, 탐문하고, 기록을 뒤지고, 행운의 단서에 의지하며, 팀워크를 발휘하거나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문제를 풀어간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춥고 흐리고 축축한 바닷마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커피를 마셔가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환멸과 싸우면서.

그리고 이 우울함의 주범은 주인공 발란데르다. 딸 하나를 둔 중년의 이혼남, 다른 가족과도 소원하고, 경찰서 동료들을 제외하고는 친구도 없으며, 성격도 무뚝뚝하고 다혈질이다. 당뇨가 있어서 음식을 조절해야 하지만 홀아비 살림에 그게 늘 어렵고, 연애는 족족 흐지부지되며, 취미라야 오페라를 듣는 것. 예리한 직관과 끈질긴 고집이 있어 수사관으로서는 유능하지만, 세상의 고통의 저울을 조금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이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불행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끝없이 회의하는 사람, 그러나 직업인으로서 그저 할 일을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부둣가를 산책하고, 누구의 이해도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인정하건대 실제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전혀 호감을 품지 못할 것 같으나, 시리즈 속에서 발란데르는, 아, 그는 매력적이다.

망켈의 발란데르는 어떤 면에서도 독특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망켈 이전에도 스웨덴은 1960, 1970년대의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 커플의 형사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시작으로 사회성 짙은 추리소설의 전통이 있었고, 망켈 이후에는 2000년대에 스티그 라르손이 이른바 밀레니엄 시리즈로 훨씬 더 대중적인 인기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망켈이야말로, 발란데르야말로 그 전통을 가장 완벽하게 전형화하여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었다. 망켈의 성공 이후 세상은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뛰어난 범죄소설 작가들에게도 주목했고, 그리하여 이제는 ‘노르딕 느와르’가 하나의 장르로 굳어질 만큼 많은 작품이 쏟아졌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는 한 인터뷰에서 망켈의 선례 덕분에 스칸디나비아 작가들은 범죄소설 분야에서 뛰어난 문학성과 재미에 둘 다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쉽게 품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밖에도 아이슬란드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노르웨이의 카린 포숨 등 많은 작가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그들이 만든 주인공들은 언제까지나 발란데르에 비교하여 이야기될 게 분명하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발란데르이건만, 얄궂게도 정작 작가 망켈은 발란데르를 사랑하지 않았다. 망켈은 여러 모로 침울한 발란데르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1948년 스톡홀름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망켈은 16세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선원이 되었다. 조지프 콘래드를 동경한 데다가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파리와 노르웨이에서 좌파 정치운동에 몸담았고, 스웨덴으로 돌아와 극작가와 소설가로 작가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발란데르는 자신의 작가 경력의 25%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곤 했다. 그는 40여 편의 소설과 어린이책, 그리고 40여 편의 희곡을 썼다.

또한 망켈은 정치 활동가였다. 첫 소설로 번 돈으로 무턱대고 아프리카로 간 뒤, 그는 인생의 절반을 모잠비크에서 보냈다. 마푸토에서 극단을 세우고 운영했으며,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교육 사업과 에이즈 퇴치 운동에 나섰다. 2010년에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에 반대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구호선에 탔다가 이스라엘 특공대에게 붙잡혀 죽을 뻔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에게는 소설도 발란데르도 결국 세상에 이런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몇 년 전 망켈을 인터뷰했던 (역시 형사 리버스 시리즈로 망켈 못지않게 유명한 영국 소설가) 이언 랜킨은 무엇보다도 망켈의 삶이 망켈의 소설들만큼 소설적인 데 놀랐다고 말한 바 있다.

망켈은 잘나가는 수사물 시리즈의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서 발란데르를 창조한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경찰소설의 형식에 제일 어울리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현실적인 인물로서 발란데르를 만든 것뿐이었다. 이름조차 위스타드 전화번호부를 펼쳐서 아무거나 골랐다고 한다. 시리즈를 열 권이나 쓰기는 했지만, 한 번도 이번엔 또 어떤 소재가 좋으려나 하면서 억지로 발란데르에게서 플롯을 끌어낸 적은 없었다고 한다. 망켈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결코 발란데르를 도구화하지 않았다. 망켈은 사랑하는 인물보다 싫어하는 인물을 쓰는 게 더 흥미롭고 결과가 좋다고까지 말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은 그 설정이 평범하게까지 보이는 우울한 중년의 형사 발란데르가 다른 누구보다 우리에게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망켈이 발란데르를 어찌 생각하든, 망켈의 삶 또한 발란데르 때문에 달라진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맥베스]를 최고의 범죄소설로 꼽았고 존 르 카레를 가장 존경하는 현대 장르 소설가로 꼽았던 망켈은 (미안하지만) 결국 발란데르 시리즈로 가장 많이 기억될 것이다. 인구 2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 위스타드가 발란데르 팬들의 성지이자 여행지가 되었듯이, 스웨덴 또한 발란데르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 지루하거나 힘들었던 시절의 무수한 밤, 발란데르를 읽으면서 그 울적한 카타르시스에 몰입했던 나 또한 망켈에게 많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그가 작년 초에 암을 진단받았을 때도 어서 회복하기를 기도했지만, 일 년 뒤 나는 이렇게 그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쓰고 있다. 사실은 따지고 싶은 것도 하나 있다. 시리즈 마지막 편 [불안한 남자]에서 망켈이 발란데르에게 알츠하이머병을 부여한 것은, 망켈보다 발란데르를 좀 더 사랑하는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또한 알고 있다. 그런 망켈의 태도 덕분에 발란데르 시리즈가 범작을 넘어서 범죄소설 역사에 오래 기억될 작품들이 되었다는 것을.

글. 김명남(번역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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